위기의 노동 - 한국 민주주의의 취약한 사회경제적 기반
최장집 편집 / 후마니타스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전두환 때가 훨씬 나았어.그땐 먹고 살만은 했잖아.'

반대편에서 목소리가 커진다.'야야..무식한 소리 좀 하지마.무고한 사람 잡아다 병신 만들고..민간인에게 총질 해대는게 잘 한거냐'  술자리에서 한번 커진 목소리를 줄어들지 않는다. '야...정치는 그렇다쳐도.경제만 두고 보자고.경제만 보면 두환이가 훨씬 잘한거 아니야.지금처럼 실업자가 많았어 노숙자가 많았어.'

누구나 한번쯤 겪어 봤을 경험들이다.IMF이후 한국 경제의 불안은 일반인들로 하여금 퇴행적인 사고를 갖게 만든다.역사적이고 구조적인 담론들의 인과는 술자리에서 끼어들 자리가 없다.오직 눈에 보였던 살림살이의 면만이 부각될 뿐이다.한국 경제의 몰락은 우연치 않게도 민주정부의 출범과 궤를 같이 한다.사람들은 권위주의 군부정권만 몰락 시키면 더 나은 삶이 보장 될 것이라 믿었다.하지만 결과는 그 반대였다.IMF 외환위기를 꼭짓점으로 한국 경제는 단군 이래 최악의 상황을 치달았다.대규모의 구조조정과 실업난,노숙자와 신용불량자,비정규직문제와 빈곤층의 확산...

왜 민주주의 정부 하에서 경제는 더욱 어려워졌을까?  <위기의 노동>은 그에 대한 답을 정치의 부재,민주주의의 부재라고 답을 내린다.이 책은 IMF 이후 한국의 사회,경제적 변화를 '노동'의 입장에서 살펴보는 것을 주목적으로 한다. 대략 16개의 논문이 노동과 관련된 현 시대의 단면들을 분석하고 있다.주로 다루어지는 대상들은 경제 위기 이후의 사회적 약자로 부각된 층에 대한 연구이다.예를 들면 신용불량자,비정규직 노동자,파견 노동자,하도급 중소기업 노동자,빈곤 여성,노동 조합의 불평등 같은 것들이다. 최장집 교수는 첫문을 여는 <한국 민주주의의 취약한 사회경제적 기반>과 책의 마지막 논문인 <사회적 시민권이 없는 한국 민주주의>를 통해 <위기의 노동>에서 증명된 노동과 사회 안전망의 문제를 총제적으로 짚어 낸다.

먼저 <위기의 노동>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 지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를 보자.현재 우리나라의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숫자를 넘는다. 시간당 임금을 비교하면 정규직을 100으로 할 때 비정규직은 49에 해당한다.임금소득의 불평등 정도가 OECD국가 중 최고 수준이다.잘살지만 불평등한 나라라고 여기는 미국보다 우리의 임금소득 불평등율이 높다.김영삼 정부 이후 역대 정권은 '노동 시장의 유연화'를 노동 정책의 기조로 삼고  있다.물론 여기에는 신자유주의의 압력이 크게 작용했다.2003년 미국의 포브스지는 한국의 노동시장 유연성이 OECD국가중 3위라고 밝혔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들과 보수언론은 한국의 노동시장이 아직도 경직돼어 있으며 거기에 가장 큰 악역을 맡고 있는 것이 노조라고 몰아세우고 있다.<노동시장의 구조변화와 비정규직>이란 논문에서는 비정규직의 증가가 단순히 경제환경 또는 노동시장 요인에 기인하는 불가피한 것이 아니라 정부의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기업의 인사관리전략변화,노조의 조직률 하락 등 행위주체의 요인에 기인한다고 밝힌다.좀 더 쉽게 말하면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 처럼 현재 비정규직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  무한경쟁의 세계화때문에 벌어지고 있는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최장집 교수의 개인적 경험에서 나온 일본 고용시장의 상황은 좋은 예가 되고 있다.일본 역시 평생직장의 개념이 신자유주의와 장기 경제불황으로 무너졌다.하지만 여전히 일본은 고용의 가치를 다른 어떤 것보다도 경제적 생산체제의 중심에 둔다는 것이다.즉 단기적 경제성장 지표를 높이기 보다는 10년을 허리띠를 졸라매더라도 고용을 유지하는 저성장을 택하겠다는 것이다.

비정규직이 노동시장에서 주변화는 여러가지 문제를 낳는다.고용의 불안정은 가족 임금에 의존하는 노동자 가족의 삶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사회적 안전망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태에서 이들은 조그마한 외부 영향에도 추락하고 만다.생활보호 대상자가 되거나 국가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인 차상위 계층이 돼는 것은 시간 문제이다.일부에서는 개인의 능력 부재를 문제시 삼는다.하지만 통계는 비정규직 일자리로 부터 벗어난 노동자 중 1%만 정규직으로 진입하고 있다고 말한다.즉 한번 비정규직은 영원히 비정규직의 덫에 빠진다는 것이다.

<위기의 노동>에서 다루어진 많은 이야기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이 가는 부분은 여성 노동자 문제와 노동조합의 문제이다.여성 노동자 문제는 또한 여성의 빈곤과도 연관돼어 있다.여성 노동자들의 다수가 비정규직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이다.현재 노동시장을 설명하는 것 중에 하나는 '이중 노동시장 이론'이다.즉 분명한 경력단계와 직업의 안정성이 있는 구조화된 일차 노동시장과 불안정한 이차 노동시장이다.일차 부문에는 주로 남성 노동력이 이차 노동시장에는 주로 여성 노동력이 거래된다고 설명한다.남자 정규직 노동자를 100으로 했을 때 그 대척점에 있는 여자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 비율은 39 밖에 되지 않는다.여성 단독 세대주거나 가장인 경우 그 세대의 빈곤은 예상되는 일이다.그러한 면에서 국제연합개발기구는 "빈곤이 여성의 얼굴을 가졌다"라고 말한다. 세계 빈민의 70%이상이 여성이기 때문이다.여성 빈곤 문제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임금 문제만 가지고는 해결되지 않는다.<이중의 빈곤,빈곤의 여성화>의 저자는 성차별과 사회적 불평등의 배제를 위한 패러다임 전환,예방적 생애주이적 접근,여성빈곤집단의 차별화된 욕구 반영한 정책개발,빈곤정챙의 성주류화와 빈곤퇴치를 위한 종합적인 시스템 구축을 주장한다.

노동 조합내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문제 역시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다.<노동 양극화와 운동의 연대성 위기>에서는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을 방조하고 있다고 말한다.특히 대기업 노조를 중심으로 소속 조합원들의 협애한 이해관계에 치중하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고 밝힌다.이는 대공장의 노조들이 하청 기업과 비정규 인력의 수탈을 추구하는 소속 대기업의 수익독식 경영을 묵인한 채 그 수익의 공유를 위한 담합관계를 형성하고 있다고 일침을 가한다.<노동조합의 불평등 구조와 여성노동자>라는 논문에서는 00타이어의 촉탁직 여성 노동자들에게 가해진 이중차별을 취재하여 비정규직 여성들이 회사는 물론이고 정규직 남성 중심 노조에 의해 배제되는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준다.남성 중심의 정규직 노조는 촉탁직 여성을 고용할때는 회사측의 노조약화를 위한 노동통제 전략과 비정규직화의도를 비판하면서도 그 해결방법으로 촉탁직 여성노동자들을 남성조합원의 방패막이로 삼아 이들을 쫓아내고자 인식했다.한 노동조합 간부의 인터뷰는 정규직 남성 노조원들의 정서를 그대로 반영한다.

'비정규 여성노동자들이 정규직이 되면 이들이 임시직으로 있을 때는 이 사람들이 먼저 나갈 수 있는데 조합원들이랑 똑같은 고용형태에서 일자리를 차지하게 되니까..조합원이 아니라면 여성노동자들이 먼저 해고될 수 있는데 이들을 조합원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남성조합원들이 먼저 나갈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다.'

노동조합의 분절화와 비정규직 배재 문제에 대해 저자들은 노조 조직의 탈 관료주의화,기업별 노조에서 산별노조로의 전환,연대 의식의 복원을 위한 교욱과 노동연대적 담론의 확산,전투성에서의 탈피를 통한 국민지지등의 전략적 접근을 요구하고 있다.

이 책의 마지막 글인 <사회적 시민권이 없는 한국 민주주의>는 영국의 사회학자 마샬의 사회적 시민권 개념을 도입하여 한국의 사회안전망 부재를 지적한다.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물질적 지지기반으로서의 복지 개념을 넘어서는 것이 사회적 시민권의 개념이다.사회적 시민권이란 사회통합이론으로서 개인의 기본권,정치참여권,사회의 경제 성장과 성과를 분배 받을 권리를 말하는 시민권이다.이는 자본주의에서 필연적으로 배제되는 시민들을 체제 안으로 끌어들이는 개념이며 또한 경제적 성취에 상관없이 무조건적이다.최장집 교수는 우리 사회의 복지 수준을 끌어 올린 것을 김대중 정부의 공을 돌린다.그에 반해 현 노무현 정부는 노동-복지정책이라고 부를 만한 정책이 없어 언급할 필요도 없다고 말한다.노무현 정부는 정서적 급진주의와 보수적 경제 정책 집행이라는 기묘한 결합을 통해 무능함 만을 보여주고 있다고 최장집 교수는 일갈한다.

현재 한국은 세계에서 유래없을 정도로 신자유주의를 수용하고 있는 나라이다.경제 지표와 자본의 수익률이 세상의 모든 가치를 압도하고 있다.정권은 철학의 부재로 인해 지켜야 할 것 마저 내주면서 무리한 신자유주의 받아들이기에 앞장 섰다.또한 보수언론은 신자유주의 만이 이 시대의 방향이며 뒤떨어지면 개인 뿐만이 아니라 국가가 낙오한다고 선전한다.이때문에 많은 일반인-거기에는 배웠다는 사람들도 포함하여-들이 신자유주의의는 어쩔 수 없는 흐름이라고 믿고 뒤쳐지지 말자고 효율성을 높이자고 뛰어다닌다. 그 자본의 수익률과 효율성 뒤에 낙오하는 사회 구성원들은 그저 능력 부재의 낙오자로 취급할 뿐이다.그들이 죽던 살던 그것은 그들의 문제이며 나는 가끔 사회복지 공동모금에 전화 한두번 눌러주며 스스로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위안하고 만다.칸트가 말했다는 자유주의의 안티테제가 '가부장적 온정주의'임을 알지 못한다.관료주의 복지 시스템의 근본정서이기도 한 '온정주의'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개인적으로 온정주의는 철학의 부재가 가장 문제가 된다고 생각한다.지속적일 수 없으며 파편적이기 때문이다.최장집 교수는 한국의 노동 및 복지 정책이 사후 약방문이라고 비판한다.즉 시장경재의 결과에 대해 사후적으로 열패자들을 물질적으로 보상하는 정책에 한정되고,시장경쟁으로 들어가기 이전에 경쟁력을 갖도록 하는 복지정책은 갖지 못했다는 것이다.사회적 시민권의 부여를 위해서는 사후 물질적 보상이라는 권위주의적 복지모델에서 탈피하여 대상자들이 시민권 부역/획득을 위해 참여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신자유주의를 전면 부정하는 것은 이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그렇다고 신자유주의가 가진 문제를 모른척 하거나 이론적인 한계에 대한 탐구를 도외시하겠다는 뜻은 아니다.또 반세계화 운동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마음 역시 추호도 없다.앞으로도 멕시코의 마르코스 부사령관을 지지할 것이며 또한 프랑스 젊은이들과 노조의 최초고용계약법 철회 쟁취에 약간은 흥분된 목소리로 기뻐할 것이다.최장집 교수 역시 이렇게 말한다.'우리가 대면하게 되는 것은 신자유주의라는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사회의 각 부문,계층,수준이 치등적으로 영향받고 있는 분화된 현실이다.즉 그것은 어디까지나 한국 사회의 현실로 부터 발생한 문제인 것이다.' ...담론은 담론의 영역에서 고민할 문제이고 변화는 실천의 영역 몫이다.진실은 늘 구체적이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가 말하는 '시장'에 목숨을 걸었던, 목숨은 모르겠고 별 고민도 안해보고 그냥 '어쩔 수 없다'주의에 빠진 이들에게 칼 폴라니의 말이라도 기억하게끔 하고 싶다.

'시장이란 분산적 결정을 특징으로 하는 교환 및 자원배분 메커니즘의 한 형태라는 점과 그 때문에 이를 제도화하는 국가의 개입 없는 시장이란 존재하기도 작동하기도 어렵다는 사실을 강조한다.또한 중요한 것은 시장은 그보다 큰 사회영역,전체 사회 공동테의 한 하위 영역이라는 사실이다."

사족)이 책은 논문을 모았다.그래서 글쓰기 방식도 딱딱하다.도표과 수치,그래프도 중간 중간 나온다.내용이 중복되는 부분도 있다.하지만 반복을 통한 강화 효과가 있다.또한 이 시대를 살면서 눈감아서는 안돼는 반드시 알아야 할 내용들이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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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nerist 2006-04-16 18:30   좋아요 0 | URL

'큰 꿈을 가져라'라는 교육 모토가 현실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도 곁들여 주목할 만 합니다. 홍세화씨가 '귀족 사회'란 글에서 적나라하게 지적했듯, '개천에서 용 났다'는 이슈가 저런 구조의 안정화 기제로 작용하니까요. 가끔 출신 계급은 보잘것없어도 타고난 재능으로 몇백 대 일의 바늘구멍을 뚫고 성공한 케이스가 대대적으로 홍보되는 건, 그러한 재능을 타고나지 못한 대다수 사람들에게 "너의 노력과 정성이 부족해서다."라는 압박으로 연결됩니다. 100명 중 한명만이 이를 극복하고 귀족의 성채로 진입할 수 있는 사회가 유지되는 기술 중 하나가 아닐까요. 서로 타고난 재능과 능력이 다른 100명에게 '모두의 기회는 평등하다'라는 말로 100명 모두가 '내가 그 1명이겠지'라는 환상을 끊임없이 주입시키는 것, 그 핵심 기제가 '큰 꿈을 가져 성공해라'라는 성공지향의 교육 이념이니까요.

매너네 조직에서 무료로 왠만한 학술논문은 다 긁어볼 수 있어서 저 책은 사지 않고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논문으로 찾아서 읽었는데, 저 성공지향의 교육 이념이 현 노동시장 체제의 안정화 기제로 작용하는 데 대한 글을 찾지 못한 게 조금 아쉽더군요.


글샘 2006-04-17 14:33   좋아요 0 | URL
엊그제 집회 마치고 바닥에 노무현 개%%라고 적힌 낙서가 인터넷에 올랐더군요.
그냥 욕하고 말기엔, 현실이 너무도 냉혹합니다.
철학 없는 정치에 민초는 휘둘릴 뿐이란 것이, 앞날이 더욱 어둡기만 합니다.
왜 우린 생각있는, 철학을 가진, 비전을 보여 주는 정치를 갖지 못하는 걸까요.

후마니타스 2007-06-14 19:46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입니다.
도서에 관한 리뷰를 출판사 홈페이지로 담아갑니다.
미리 허락을 얻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혹시 언짢으시다면 홈페이지에 글을 남겨주세요.
홈페이지 주소는
http://www.humanitasbook.co.kr
입니다.
건강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