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2
오주석 지음 / 솔출판사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사는 동네에 봄 빛이 완연하다.출근길 차창 밖으로 하얀 벚꽃이 가루처럼 흩날린다.자동차가 지나가면 하얀 꽃 가루처럼 벚꽃 물결이 인다.강 옆에 서 있는 버드 나무도 이젠 연둣빛이 선명하다.새순이다.어느 개인 주택 담 너머에는 노란 빛과 푸른 빛이 서로 재잘 거린다.개나리 꽃잎은 아직 들어가기 싫다는 듯 노란 빛 마지막 저항을 한다.아직 작은 잎에 불과한 개나라 잎들은 이제 우리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라는 듯 점점 짙은 빛으로 자기의 시간임을 자랑한다.

세상이 온통 그림이다.

자연은 세상을 화폭 삼아 여기 저기 툭툭 눌러 붓질을 한다.그의 혹은 그녀의 붓이 닿은 곳은  한점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봄 '그 자체다.또한 그 작품은 사람들 가슴 속에도 '봄'을 만든다.역시 최고의 작가다.

새 봄에 너무 빨리 떠난 분의 책을 읽었다.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에 나오는 그림은 익히 알고 있는 것 들이다.하지만 이 책을 접하면서 '안다'는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여기 나오는 김정희,김홍도,윤두서 선생의 그림은 미술 교과서에도 나오는 그림들이다.그래서 친숙하다.하지만 이 책을 읽을 수 록 나는 이 그림들에 대해 하나도 모르고 있었다는 것만 확인하게 돼었다.아마 이 책을 만나지 않았으면 나는 윤두서의 '자화상'을 '안다'라고 생각하고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았을 것이다.김정희가 '세한도'를 그렸다는 것을 ..세한도에 나무 몇 그루와 집 한 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안다'라고 믿고 나머지 인생을 살았을 것이다.하지만 이 책으로 또 다른 세상 하나를 얻을 수 있었다.

물론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을 읽었다 해서 우리 조상들이 남긴 그림들과 작품에 담긴 고결한 정신 세계를 전부 이해했다고 하면 어불성설이요 오만이다.마치 글을 모르는 노인이 한글을 깨우치고 난 것과 유사하다.글자를 배운 이들은 대개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고 기뻐한다.이 처럼 옛 그림을 볼 줄만 알았지 '읽지'못했던 내게 이 책은 '읽는 법'이 있다는-즉 새로운 세계- 것을 알려 준 셈이다.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은 한 가지 그림을 종합적으로 볼 수 있는 시선을 제공한다.오주석 선생은 우선 작품을 그린 화가들의 이야기를 먼저 한다.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모든 예술 작품에는 작가의 정신 세계가 반영된다.오주석 선생은 특히 우리 문인화에는 선비들의 사상과 실천적 삶의 모든 것이 총체적으로 반영된다고 말한다.<세한도>를 바라보면서 드는 그 고적함과 '내유외강'의 힘의 모순적 두 세계는 추사의 맑은 정신 세계가 투영되지 않았다면 결코 나올 수 없는 경지의 것이다.이 책은 그림에 앞서 그림을 그린 사람을 앞 세운다.그림은 그의 정신 세계와 삶의 가치의 한 반영일 뿐이기 때문이다.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옛 그림을 보녀 그동안 이를 별로 생각해 보지 않았다.그리고 이 책 이후에 <세한도>에서 추사 김정희가 슬며시 보이기 시작했다.

오주석 선생은 다음으로 작품 탄생의 배경을 옛 문헌들을 꼼꼼히 따져 객관적으로 보여준다.조선의 대표적인 초상화 작품으로 알려진 <이채>초상의 경우는 마치 탐정 수사를 해나가 듯 <이채>초상과 <이재>초상이 동일한 사람을 그린 작품임을 밝힌다.<세한도>의 경우 추사와 제자 간의 애틋한 마음이 작품 탄생의 배경이 됨을 알고 나니 겨울을 그린 그림에 갑자기 온기가 뿜어져 나온다.정선의 <인왕제색도>는 또 어떠한가 그냥 비온 뒤의 인왕산을 그린 그림인 줄로만 알았다.하지만 <인왕제색도>에는 평생을 함께 시와 그림으로 우정을 쌓아온 한 동무의 죽음을 앞두고 쾌유와 불가항력적인 석별을 준비하는 아쉬움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이 내용을 알고 보니 비 갠 뒤의 산 그림이 이제는 완전히 다른 의미로 보인다.인왕산 그림 안에 그 두 분이 나누었던 긴 시간이 느껴진다. 평생을 이어온 훈훈한 우정과 믿음이 그림에서 보이니 코 끝이 징해진다.

이 책이 그림 책이기 때문에 회화적인 기법들 역시 빠뜨릴 수 없다.옛 그림의 인문학적 배경 다음에는 항상 회화적 관점에서 이 그림들이 우수한 점을 살펴준다.각 작품이 가진 구도의 안정감은 어디서 발생하는지..예를 들면 <고사 관수도>같은 경우다.오주석 선생은 슬쩍 물을 바라보는 노인을 가려볼 것을 권한다.만약 물을 바라보는 노인이 빠져 있으면 어떻게 돼는지 ...실제로 손가락으로 노인을 가려봤다.정말 깜짝 놀랐다.전혀 다른 그림이 돼어 버렸다.구성의 묘미가 어떤 것인지 알게하는 대목이었다.그 외에도 <세한도> 여백의 미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각 봉우리들이 어떠한 기법으로 구성돼어서 <주역>의 음양을 맞추는지...물론 이러한 회화적 기법들이 어떻게 작가의 전체적인 세계관을 표현하는데 쓰여지는 지도 빼놓지 않는다.겸재 정선의 <금강전도>는 주역이 일상화된 작가의 우주관의 집약판이었다.물론 주역의 내용을 모르는 나로써는 그 설명이 부분적으로 밖에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말이다.

오주석 선생은 옛 그림을 처음 대하는 초보자들을 위한 배려도 잊지 않는다.각 장 마다 우리 옛 그림을 읽는 기초적인 방법들에 대해서도 친절하게 설명해준다.우리 그림을 우상에서 좌하로 봐야한다는 것,여백의 미를 읽는 법,.......등등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을 읽는 또 다른 즐거움은 이 그림을 보면서 우리 선조들이 가졌던 인문학적 깊이에 깊이 감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옛 그림 속에 등장하는 '물' 을 예로 들자.그냥 물을 그렸다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오주석 선생은 우리 선조들에게 '물'이 어떤 '인문학적' 위치를 차지했는지 중국 고전과 우리 시가등을 들어서 친절하게 설명한다.그 외에도 책 중간 중간 문인화에 자주 등장하는 매화,난초 등의 의미도 다시금 새겨 볼 수 있는 장이 마련돼어 있다.

내가 이 책을 만난 것은 오주석 선생이 돌아가시고 난 다음이다.이 책을 읽기 전에 많은 이들이 그의 죽음을 안타까와 했다.나는 그저 너무 이른 한 죽음에 대한 아쉬움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이 책의 내용을 보고 또한 그의 인문학적 깊이와 또 우리 문화를 대중에게 쉽게 전달하고자 한 그의 큰 뜻을 생각하니 그의 이른 죽음이 애통하기 그지 없다.그래서인지 그가 직접 집필했던 1권이 2권 보다 더욱 애정이 가며 살아 있는 글이란 느낌이 든다.선입관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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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6-04-05 14:28   좋아요 0 | URL
저도 오주석 선생님 글을 참 좋아합니다.
가르치는 사람은 무릇 저런 글을 쓸 줄 알아야 하겠지요.
쉽고, 쌈박하면서도 친절한 글.
여느 그림책은 조그만 그림 하나 놔두고 주절대지만, 오주석 선생님 책은 부분부분 확대해서 얼마나 자세히 가르쳐 주시는지...

드팀전 2006-04-05 18:21   좋아요 0 | URL
글샘님>맞아요.확대 화면 ..좋았어요.그래도 그림 설명 보랴 그림 보랴 앞뒤로 넘기긴했지만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