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스포라 기행 - 추방당한 자의 시선
서경식 지음, 김혜신 옮김 / 돌베개 / 200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아이슬란드에서 살고 싶었다. 나의 어떤 시절 상상 속의 도피처 같은 곳이다. 왜 하필이면 아이슬란드냐고? 우선 거리상 상당히 멀다. 정서상으로는 더욱 멀다. 그 흔한 외신 뉴스에서도  아이슬란드 이야기는 잘 나오지 않는다. 나는 아직  그 나라 사람들이 어떤 언어를 쓰는지 알지 못한다. 수도가 어디인지도 모른다. 그곳에 한국 사람들이 별로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여하튼 나를 모르는 곳, 어린 아이들의 지도 찾기에서도 소외된 곳에 스스로 유배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뮤직 비디오의 실연당한 남자 주인공 마냥 얼음의 땅에서 외톨이 된 자의 마음으로 천년쯤은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람들은 한번쯤 스스로 추방되기를 원한다. 젊음의 고민이 100층짜리 빌딩만하고 사람 관계가 대륙 횡단한 버스 운전사의 등허리같이 피곤할 때 사람들은 어디론가 증발하고 싶어진다. 스스로를 타인으로 부터 격리시키고 떠다니기를 원한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스스로가 아니라 타자에 의해 추방당하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재일 조선인은 우리 역사가 추방시킨 사람들이다 .최인훈의 <광장>의 주인공처럼 어디에도 머물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재일 조선인 서경식의 <디아스포라 기행>은 떠도는 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떠도는 자들의 이야기이다. 붙박인 사람들과 다른 떠도는 자의 시선을 서경식은 이렇게 말한다.

 

고정되고 안정된 것처럼 보이는 대상도 그것을 보는 편이 불안정하게 움직일 때는 달리 보인다. 다수자들이 고정되고 안정적이라고 믿는 사물이나 관념이 실제로는 유동적이며 불안정한 것이라는 사실이 소수자의 눈에는 보인다.

 

서경식의 <디아스포라 기행>은 4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근대 국가와 배제를 통한 국민 만들기를 이야기하는 <죽음을 생각하는 날>, 광주 망월동과 비엔날레, 재일 조선인 화가들의 이야기를 다룬 <폭력의 기억> 카셀의 도쿠멘타전에서 만난 디아스포라 작가들의 이야기 <거대한 일그러짐>,펠릭스 누스바움, 슈테판 츠바이크, 장 아메리 등 역사의 폭력 속에 살아온 디아스포라들의 삶을 이야기한 <추방당한 자들>

 

이 책을 일관되게 관통하는 것 중에 하나는 '배제'이다. 디아스포라를 뜻하는 '이산' 에서부터 타자의 냄새가 묻어난다. 근대는 결국 '배제'를 통해 이루어진 관념이라는 것에 저자의 생각이 머문다. 서경식 자신이 재일 조선인으로서 차별과 배제의 공간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시선이 동일한 경험을 한 디아스포라들의 작품에 머무는 것은 자연스럽다. 광주 비엔날레에서 만난 니키 리의 작품을 보면 이들 디아스포라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니키 리는 자신의 사진 작품 속에 여러 가지 아이덴티티로 등장한다. 즉 어디에도 속할 수 있지만 어디에서나 뭔가 어색한 존재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한다. 나이지리아인 잉카 쇼 니바레의 작품은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식민 모국과 식민지의 아이덴티티 혼재 속에서 식민 지배가 일궈온 무의식의 거대한 일그러짐에 까지 의식의 지평이 닿는다.

 

서경식이 말하는 재인 조선인의 '배제'는 영토적인 의미와 언어적 의미를 동시에 담고 있다. 우리가 민족이나 국민이란 이름을 묶는 경우는 대개 한반도, 한국어라는 한정된 잣대가 존재한다. 서경식처럼 일본 땅에 있으며 일본문화가 더욱 자연스러운 이들은 그저 듣기 좋은 소리로나 '한민족'일 뿐이다. 월드컵이나 올림픽 할 때 한번 씩 등장하여 해외동포들도 자랑스러워한다며 등장하는 게 그들의 역할이다. 평소에 우리는 그들을 국민에서 배제하며 잊고 있다. 편협한 배제에 대해 실용적인 관점에서 정부는 해외동포법이니 뭐니 하면서 한민족 네트워크를 형성한다고 애를 쓰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도 대개 구미를 중심으로 한 포섭일 뿐 실제 조선족이나 고려인들은 껄끄럽기만 할 뿐이다.한민족 네트워크가 진정으로 형성되려면 통일을 통한 국민국가의 프로젝트의 완결이 선행되어야 한다. 통일의 필요성을 주창하는 정부 홍보물에도 늘 등장하는 말이다.

 

결국 근대의 필수조건인 '배제'를 해결 할 수 있는 것은 디아스포라의 시선임이 확인된다. 그들은 뿌리가 약한 만큼 더 많은 것들을 포용할 수 도 있다. 프레모 레비가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이후 한 인터뷰는 이렇다.

 

디아스포라 상태의 유대인은 이스라엘에 강화되고 있는 공격적 내셔널리즘에 저항할 책임이 있으며 디아스포라가 키워온 관용사상의 전통을 지켜야한다. 유대 문화의 뛰어난 점은 역시 디아스포라라는 상태, 그 다중심성과 관련이 있다.

 

프레모 레비를 인용해서 서경식이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 역시 이 문장에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근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근대가 만들어 놓은 강고하고 촘촘한 사슬을 풀어 헤칠 필요가 있다. 이 사슬에 묶여 있는 사람들은 스스로 묶여 있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한다. 다만 태생적으로 근대의 사슬에서 배제된 이들이 이 문제에 조금 더 보편적으로 접근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본 것이다. 

 

떠도는 자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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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6-02-21 13:55   좋아요 0 | URL
ㅋㅋ 저두 했습니다.어딜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