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첼리스트 카잘스, 나의 기쁨과 슬픔
앨버트 칸 지음, 김병화 옮김, 파블로 카잘스 구술 / 한길아트 / 2003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 ...1938년 6월 파리 녹음....카탈루냐 사람 카잘스가 만들어낸 음악이 그는 본 적도 없었을 은빛 원반에 담겨져 내가 있는 먼 곳의 아침을 연다.겨울 가뭄을 녹였던 단비가 긋고 난 후 만나는 새벽 하늘...아직 창 밖은 흐리다.무명의 하늘을 하나 씩 열어 제끼듯 빛이 스며든다.그리 멀지 않은 곳에 보이는 뭉쳐있는 한 덩어리 산.바흐의 선율과는 상관없다는 듯 자기의 의지에 따라 자신의 모습을 드리운다.아직 어둠이 있던 시절 그저 검은 덩어리의 그림자였던 산들.지금 보니 앞서거니 뒷서거니 경계가 있다.앞에 있는 산은 자신이 더 앞에 있다것을 자랑하려는 듯 더욱 선명한 겨울 빛을 보연준다.앞산 속으로 몸의 절반쯤은 숨긴 뒷녀석은 자신이 모든 걸 감싸고 있다는 듯 은근한 웃음으로 희뿌옇다.카탈루냐 사람 카잘스의 첼로는 이제 주인과 자신도 잊은 듯 스스로 음악이 돼어 간다.
모음곡은 2번 d단조로 넘어 간다.수 많은 인연의 부침을 묵묵히 지켜봐 왔을 오래된 석탑 위로 눈이 내린다.조용한 경내가 눈 때문에 더욱 고즈넉하다.석등 위에서 반쯤 눈이 덮히고 대웅전에 달린 풍경 속 작은 물고기의 등 위에도 하얀 눈이 덮힌다.공양간 굴뚝 아직 남은 온기는 눈의 침범에 저항해 보지만 이도 오래지 않아 하얀 모자를 쓸 터이다.모든 옷을 벗어 버리고 굵은 힘 줄 만을 남겨둔 절집 나무처럼 첼로소리는는 외로우나 비굴하지 않다.카탈루냐 사람 카잘스의 첼로는 시간의 심연과 기억의 회한을 되짚는다.
파블로 카잘스는 이미 두 세대 전의 사람이다.그의 청년시절 아직도 브람스는 활동하고 있었다. 드보르작,라벨,림스키 코르샤코프,말러,라흐마니노프 같은 작곡가들이 전부 그의 시대 사람이다.사라사테,외젠 이자이,자크 티보,알프레드 코르토,크라이슬러...등등. 이 많은 인물들 속에서도 카잘스는 현재와 가장 가깝게 느껴진다.우선 그가 다른 이들에 비해 오래 살았다는 이유도 한 몫하겠다.하지만 오래 살았다는 것만이 카잘스를 동시대인으로 느끼게끔 해주는 것 만은 아니다.
우선 카잘스가 남긴 음악적 자양분부터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다.무반주 첼로 모음곡이 가장 좋은 예일테다.카잘스가 바흐의 악보를 발견한 것이 그의 13살때이다.단순한 연습곡이 아니라 하나의 완결된 음악으로 이를 이해하고 세상에 알린 것이 카잘스의 공로다.마치 멘델스존이 바흐의 마태수난곡을 세상에 알린 것에 비견할 만한 일이다.음악을 연주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에게 이 곡에 대한 카잘스의 39년 녹음은 영원불변의 명연이다.물론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이 곡의 다른 연주 녹음들을 좋아할 수 도 있다.나 역시 5종이 넘는 무반주 첼로모음곡을 가지고 있지만 카잘스의 연주를 가장 즐겨듣는 것은 아니다.하지만 가끔 듣는 그의 녹음은 다른 연주들에서 느끼지 못하는 아우라가 있다.카잘스가 첼로 연주에 있어서 혁신을 불러 일으킨 것 역시 이미 많이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이러한 음악적 발견과 혁신 외에 그가 음악을 대하는 태도 역시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카잘스는 노동자들의 친구였다.그의 음악은 늘 카탈루냐 민중의 이익을 대변하고 그들에게 음악의 깊은 울림을 전하고자 하는데 목적이 있었다.그는 이렇게 말했다 ,
"내가 예술가라는 것은 사실이지만 예술을 실현하는 과장을 보면 나 역시 하나의 육체노동자입니다.나는 일생 내내 그래왔어요"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부의 대부분을 만들어낸 사람들이 그들 아닙니까? 그런데도 왜 그들이 우리나라의 문화적 재산을 향유하지 못하고 지내야 합니까?
카잘스는 스스로 예술가들이 쉽게 빠져 버리는 '자기애적 예술지상주의'와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그는 어린시절 부터 노동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카페나 술집등지에서 연주했다.유년기에 그의 음악을 즐기는 노동자들의 모습이 그에게 육체노동에 대한 긍정적 가치를 심어준 것 같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음악, 아니 어떤 형태의 예술이든 그 자체로는 대답이 될 수 없다고 느꼇습니다.음악은 어떤 목표에 봉사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그것은 그 자체보다 더 큰 어떤 것,즉 인간성의 일부가 되어야한다.......음악가도 인간이잖아요,그의 음악보다는 삶에 대한 그의 태도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또 그 두 가지가 서로 분리될 수도 없고요."
카잘스의 자서전을 보면 크게 두가지 테마가 있다.하나는 위대한 예술가로서의 궤적이고 또 하나는 정치적으로 옮바른 삶을 산 사람의 모습이다.카잘스는 그 두 요소가 분리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그가 젊은 시절 만들었던 '노동자 연주회 협회' 라는 단체는 카잘스의 생각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1928년 최초 노동자 연주회에서 받은 환호를 카잘스는 아주 오래도록 기억하게 된다.그리고 카탈루냐 노동자들에게도 그 기억은 오래도록 소중하게 남는다.1965년 카잘스의 90살 생일,프라드 축제 현장에 두 대의 버스가 산 넘고 물 건너 넘어온다.40여년 전 노동자 연주회 협회에서 함께 연주하던 노동자들과 그들의 자녀들이었다.그들은 카잘스 앞에서 모차르트를 연주했다.음악과 사람에 대한 진정성은 이렇게 시간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카잘스가 살았던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중반부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다사다난 했던 시기로 기억될 것이다.서유럽은 19세기 말 문화와 과학의 전성시대를 달리고 있었다.인류의 이성은 꺼지지 않는 불빛처럼 달아 올랐고 합리적 이성과 과학이 곧 유토피아를 만들것으로 믿었다.풍요로움에 바탕을 둔 예술 역시 백가쟁명의 다채로움을 보여주었다 . 흔히 말하는 '아름다운 시절'이었던 것이다.하지만 그 시기가 지나고 연이은 1,2차 대전과 파시즘,홀로코스트등은 천국과 지옥이 한 마당 안에서 펼쳐진 것에 다름아니다.카잘스는 그 시대의 한 복판을 관통했다.카잘스의 고향 카탈루냐는 스페인에서도 독립적인 문화와 역사를 갖고 있는 지역이다.어린 시절 부터 카잘스가 채득한 저항의 정신은 카탈루냐 역사가 만들어 준 선물이다.카잘스는 카탈루냐 공화국 정부를 전복시킨 파시즘 정권에 저항했다.또한 카잘스는 2차 세계대전 중 수 많은 해외도피 요구에도 불구하고 유럽을 떠나지 않았다.히틀러의 독일에서 연주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은 이미 훨씬 그 전일이다.포로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음악애호가 히틀러의 연주 요청 마저 거부한다.그런 면에서 당시 일자리를 얻기 위해서 나치에 우호적일 수 없었다고 한 지휘계의 황제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변명과 대조적이다.카잘스의 정치적 소신은 승전국 영국에서의 연주거부에서도 드러난다.영국에 우호적이었던 카잘스를 틀어지게 만든 것은 전후 프랑코 정권에 대한 서방국가의 불분명한 태도때문이다.그는 옥스포드나 캠브리지의 학위수여도 모두 거부한다.
카잘스의 삶은 음악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훌륭한 모범이 된다.특히 세상에 대한 그의 적극적인 태도는 인상적이다.물론 그에게도 한계가 있다.케네디 대통령에 대한 그의 믿음은 시대적 한계이기도 하고 정치적 안목의 소박함에 실소가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하지만 그러한 점은 사소한 부분이다.카잘스는 음악과 삶의 진정성이 묻어나오는 인간이었다.하지만 현실의 나는 불행하게도 인간적인 모범까진 안돼더라도 정치적으로 옮바른 음악가들 조차 만나 본 적이 없다.우리 사회에서 음악 한다는 것은 사실 계급적으로 어느 정도 상위층에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물론 전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내가 만난 음악한다는 사람들은 대개 좋은 집안에서 어느 어느 선생에게 사사받고 유럽의 무슨 콘소바토리니 하는데서 잠깐 공부하고 가끔 연주회하고...뭐 이런 사람들이다.그들은 악보를 읽을 줄은 알지만 자신의 음악 왜에는 아는 것이 없다.심한 경우는 자신이 다루는 음악 외에 다른 클래식 음악에 대해서도 무지한 사람들이 많다.예전에 성악 공부하는 음대생이 "라흐마니노프가 프랑스 사람이에요? 윤이상이라고요? 첨들어보는데..." 라고 하더라.즉 성악 공부하니까 그 외 음악은 잘 몰라도 된다는 건 가보다.물론 아직 어린 친구였으니 그럴 수도 있다.하지만 이건 공부 많이 한 음악선생들도 마찬가지다.악보와 연주테크닉,곡 해석 이런 것만 선생이다.도대체 음악이 음악만 갖고 되는 것인가.그들의 음악 외적 수준은 고등학교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듯 해보였다.역사관,세계관,인간관...등등 너무 음악공부가 어려워서 그랬겠지...물론 음악가가 일반인들보다 더 뛰어난 혜안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하지만 자신들이 세상의 어느 부분에 어느 한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좌표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또한 비슷 비슷한 음악소비자들 사이에서 고만고만하게 흡족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다른 계급의 사람들과 사회의 다른 영역이 움직이는 법에도 관심을 가져야하는 것이 아닌가.언제가 봤던 영화<바이올리니스트>가 떠오른다. 주인공은 바흐의 음악이 필요한 곳은 비싼 표사서 고급스러운 옷을 차려입은 관객들이 앉아있는 음악회장이 아니라고 생각했다.정작 필요한 곳은 자본주의 세상 속에서 가난으로 인해 영혼마저 상처입은 낮은 곳이라고 믿었다. 그는 결국 노숙자들이 머무는 지하철 역에 바이올린 하나 달랑 들고 나섰다.카잘스는 말한다.마치 내가 만난 그리고 내가 혐오하는 몇 몇 우리음악가들에게 나를 대신해서 이야기 해주는 듯이...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모욕은 곧 나에 대한 모욕입니다.예술가라고 해서 인권이라는 것의 의미가 일반 사람들 보다 덜 중요할까요? 예술가라는 사실이 인간의 의무로부터 그를 면제시켜줍니까? 오히려 예술가는 특별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습니다.왜냐하면 그는 특별한 감수성과 지각력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때에도 그의 목소리는 전달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자유와 자유로운 탐구,바로 그것이 창조력의 핵심입니다."
...........파블로 카잘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