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을 훔치다 - 김수남이 만난 한국의 예인들
김수남 지음 / 디새집(열림원) / 2004년 2월
평점 :
품절


APEC이라고 차량 2부제를 했다.설령 2부제를 하지 않았어도 차를 가지고 나가지는 않았을 것이다.어제 저녁 내가 사는 동네에는 '경찰 반, 시위 대 반'이었다.1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가 4시간이 걸렸다는 트럭기사의 인터뷰를 보았다.사실이었을 것이다.

오늘 아침은 지하철을 탓다.내심 즐거웠다.내가 사는 곳은 지하철 출발지이기에  언제든 앉아갈 수 있다.그리고 오늘은 학교도 공무원도 주5일제 하는 사람들도 쉬는 토요일이다.나는 지하철에 앉아 <아름다움을 훔치다>를 펼쳤다.지하철이 계속 찌그덩 찌그덩 소리를 냈다.방송으로 어디 역을 지난다고 왕왕 거렸다.하지만 난 하나도 듣지 못했다.내 시선은 사진에 꼽혔으며 내 마음은 내가 직접 이들을 만난 듯 안쓰러워 시큰 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서는 지옥철이라 불리는 지하철이 오늘 아침은 내 감정의 도량이 되어주었다.

이 책이 등장하는 사람들은 전통문화의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분들이다.제주 큰 심방 안사인,동해안 굿의 신석남,판소리의 김소희,밀양 양반춤의 하보경 등등....현재 살아계신 분들도 있고 김수남 작가의 사진 속에서만 사시는 분들도 있다.이들의 약력을 대개 살펴보면 집안이 대대로 무당이었거나 아님 광대들이었던 경우가 많다.멋진 사진과 아름다운 글보다 내 상상력을 자극한 것은 약력으로 만나는 이들 삶의 행적이다. 첫장에 있는 제주 칠머리당굿 예능보유자 였던 안사인 큰 심방이 대표적이다.그의 첫 약력은 이렇다.

1923년 제주도 제주읍 용담리에서 21대 세습무인 임생의 큰아들로 태어났다..... 안씨집안은 본래부터 무가는 아니었다.증조할아버지가 19대째 세습무계 집안의 딸 고시의 미모에 반하여 결혼했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무업을 이어받았다.

무당중에는 크게 강신무와 세습무가 있는데 안사인은 22대쩨 세습무당이다.22대면 도대체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것인가..조선시대,고려시대... 나의 상상력이 닿았던 것은 22대를 내려오는 안사인 조상들의 삶의 모습이었다.전부 무당의 눈으로 역사의 일부를 바라봤을 것이다.왜란이 있었을 때는 어떻게 했을까? 왕이 삼전도로 피난을 갔을 때 그 안사인의 선대 무당은 또 무었을 했을까? 일본이 조선을 합병했을 때 제주도에 살던 바로 윗대 무당들은 어떤 염원을 빌었을까?  도대체 22대가 무당이라면 그 안에 담고 있는 무당들의 이야기와 그 무당들이 염원해준 제주민들의 한은 어느정도의 양이었을까? 나는 안사인의 글을 읽으며 계속 그런 생각을 했다.

 무당은  전근대 시대의 심리치료사이다.무당들이야 다르게 생각하겠으나 인문학적으로 그런 해석이 지배적이다.무당은 영매의 역할을 하여 죽은 이와 산 자들 사이의 소통을 이루어준다.이 소통은 사실 죽은자를 위해서라기 보다는  '안녕'이란 말 한마디 들어보지 못하고 망자를 떠나보낸 이들을 위무해 주기 위한 것이다.내 생각은 그렇다.영매의 입을 통해 망자는 남은 이들에게 '나 걱정하지 말고 잘 살아라'는 이야기를 한다.남은 사람들은 그렇게 죽은이를 보내고 나머지 한많은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 아닌가.. 안사인,김금화,신석남같은 큰 무당들은 그렇게 남은 사람들의 삶을 위무했다.

흔히들 병신춤이라고 하는 공옥진의 삶은 한편의 영화다.레이 찰스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레이>는 공옥진의 삶의 단편에 비추면 세발의 피다.내가 만약 영화 감독이라면 공옥진 선생의 삶을 영화로 꼭 그려보고 싶다.소리와 춤과 삶의 굴곡이 삼위일체를 이루어 해외에서 무지하게 상 받을 것 같다.

1938년 무용가 최승희의 수양딸 겸 심부름꾼으로 일본으로 건너갔다....일본 가정의 식모로 일하던 중 주인집이 비행기의 폭격으로 사라져버리자 홀로 문전걸식하며 고향으로 돌아왔다.

8살 먹은 공옥진이 거렁뱅이가 되어 일본에서 바닷길건너 남도 들녘까지 찾아온다.내 눈앞에 그 거지소녀의 모습이 막 그려졌다.어떻게 알고 그 길을 찾아왔을 것이며 결국 가족을 찾아왔을 때 부모들의 표정은 어떠했을까...그 길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공옥진의 파란만장한 삶이 이어진다.

딸을 낳고 누운 지 사흘 만에 전쟁이 터졌다.붉은 완장을 찬 사람들이 들이닥쳐 헛간 짚더미 속에 숨은 그 의 등을 죽창으로 찔렀다.피를 흘리며 끌려갔다가 우연히 육자배기 한 가락 뽑은 것을 '인정받아' 죽음의 문턱에서 거짓말처럼 살아났다.

예전에 TV에서 가끔 씩 공옥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재미있기도 했지마 사실 좀 무섭기도 했다.기괴한 모습이 실제 무슨 장애가 있어보엿다.장애가 왜 무서운것인지 잘은 모르겠으나 어린 아이들에게는 그렇게 비춰지기도 한다.90년대 들어서면서 공옥진의 모습을 본 적이 없다.90년대도 그녀의 공연을 계속 되었지만 아마 TV출연은 하지 않았나보다.공옥진의 사진 중에 아주 인상적인 것이 있었다.마을 장터로 짐작된다.공옥진이 목을 쭉들이밀고 춤을 춘다.빙둘러싼 마을 사람들의 표정이 전부 살아있다.다음 사진 역시 인상적이며 이 책에서 말하는 광대 본연의 모습을 그린 듯 하다.조금 높은 곳에서 찍은 앵글이다.초가지붕과 양철지붕이 서로 머리를 대고 있다.중앙에 빙둘러선 관객들,뒤늦게 온 아이는 추리닝을 입고 자전거 뒷 안장위에 올라서 그 안을 넘어본다.무대 가운데는 공옥진과 마을 촌로들이 한판 춤을 추고 있다.

광대가 섰던 무대는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 전당이 아니었다.흙냄새와 시장냄새가 나는 장터 한 복판이라야 옳다. 이곳에는 공연관계자와 관객의 구분이 모호하다.관객이 한마디씩 거들기도 하고 필요한게 있으면 자기들이 가져다 주기도 한다.공연이 끝나며 함께 뒤섞여 놀기도 하고 막걸리 한잔 대접할 수 있는 여유도 있다.요즘 공연에서는 예술가는 도도하고 공연관계자들은 위압적이다. 관계자외 출입금지같은게 우리전통문화에는 없었나보다.통제에 통제를 거듭하는 요즘 공연문화가 왠지 치떨리게 싫어진다.

이 책에 나오는 대다수의 인물들은 그래도 국가로부터 그들의 가치를 인정받았던 분들이다.그렇다고 그들의 삶이 풍요로왔던 것은 아니다.밀양양반춤의 하보경 선생이 가족들과 찍은 사진은 삶의 옹색함을 보여준다.하지만 하보경 선생의 가냘프지만 위풍당당한 모습이 누추함을 날려보내고 있다.그들의 삶과 예술은 제대로 대접 받아야만 한다.남대문만 국보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무형문화들이 사실은 더 세심한 관리가 필요한 것 아닌가.이 무형의 문화들은 제대로 전수되지 않는 다면 사라져버린다.국보1호라는 남대문이 사라져버리면 아마 난리가 날 것이다.하지만 도당굿 도살풀이가 사라지면 누가 관심이나 갔겟는가? 눈에 보이는 것들만 중요시하는 풍조가 사회 전반의 정서지만 실제로 중요한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고 전해진다.그 전수가 제대로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책을 다 본 지금.나는 갑자기 CD장을 뒤적인다.김소희 명창의 춘향가가 듣고 싶어졌기 때문이다.꽂아놓고 거의 듣지 않았다.아마 처음부터 다 듣기는 힘들것이다.그래도 <적성가>한 소절이라도 듣고 싶다.

적성의 아침 날은 늦은 안개 띄어 있고 녹수의 저문 봄은 화류동풍 둘렀는데.....

듣는 김에  SP복각으로 남아있는   이화중선의 <육자배기>,임방울의 <쑥대머리>도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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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i 2005-11-20 11:17   좋아요 0 | URL
어제 새벽, 장바구니에 책을 넣으면서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책이 바로 이 책입니다. 아, 리뷰를 하루 일찍 올리셨더라면(이런 억지가^^) 아니면 제가 하루만 더 늦게 장바구니를 채워 구매를 했더라면 주저없이 이 책도 포함되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 아쉬움이 더 커갑니다.
님의 리뷰, 잘 읽었습니다. 일요일인 오늘도 화창하시길-

2005-11-20 11: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05-11-20 12:32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책 읽고는 성금연의 가야금을 들었더랬습니다.
공옥진의 춤사진에서는 계속 바닥이 보이더라구요. 비닐 천막 깔아 놓은 울퉁불퉁한 바닥 말입니다.
글자가 반, 백지가 반인 책이었지만, 사진과 글이 충분히 아름다운 책이죠.^^

2005-11-21 12: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드팀전 2005-11-21 17:43   좋아요 0 | URL
글샘님>국어선생님이 아니셨군요.ㅋㅋ 전 전 진짜루 그렇게 믿고 있었습니다.
ooo님>ㄳ....술도 드시고 좋으시겠어요.제 글이 재미있지는 않은데...곰곰..생각중
재미잇는 것도 가끔은 있겠지...위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