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털 같은 나날
류진운 지음, 김영철 옮김 / 소나무 / 200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중국에서 사업을 시작한 친구가 있다.대학교때 고구마 팔아서 유럽여행 다녀올 정도로 생활력이 강한 친구다.몇달 전에 그 친구를 만났다.오랜만에 맥주 한잔 하며 낯선 곳에서의 생활에 대해 들었다.그 친구는 중국인들의 게으름과 비합리적 사고에 대해 맥주 거품보다 더 큰 거품을 뿜어댔다.워낙 말을 재미있게 하는 친구라 우리들은 깔깔 거리며 또 공감하며 들었다.그 친구가 작은 공장을 지을 때 일이다.

지난 해 초의 일이다.우선 공장을 수주하고 건설업체와 하청업체를 선정했다.최초에 공장은 5월까지 완성이 된다고 했다.그러나 4월이 다 가는 시점에서 공장의 완성도가 60%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그는 여러번 감독관을 채근하고 나무랐지만 중국인 공사담당자는 느긋했다고 한다.가끔은 그의 지나친 채근에 "이거 우리가 가난하다고 무시하는거냐?" 는 식으로 나왔단다.결국 목마른 놈이 우물판다고 친구는 담당자를 살살달래기로 했다.술도 먹이고 밥도 먹이고 하면서 분위기가 누그러들자.' 딱 까놓고 이야기하자'고 했단다.

친구:'진짜...늦어도 괜찮으니까...진짜로 지금부터 열심히 하면 언제까지 다 마칠 수 있나?"

중국공사담당관 :"글쎄...뭐 7월이나 8월쯤"

친구: "아니..그렇게 이야기 하지말고...니네들이 자신있게 할 수 있다고 말하는 넉넉한 시간을 대라."

중국공사담당관: "음....8월 중순"

친구: '좋다.그럼.내가 8월 15일까지 기다린다.대신 계약서 하나쓰자.니네들이 여유있다고 정한 시점인 8월15일까지 다 못끝내면 그날 부터 나도 손해가 있으니까..하루 연기될때 마다 위약금은 00달러 씩 내라"

중국공사담당관: "..... ... . 좋아,그렇게 하지요.8월 15일,그런데 궁금한게 하나 있소이다.우리가 만약 8월 15일 보다 먼저끝내면 빨리 끝낸 날 마다 계산해서 00달러씩 주는거죠?"

친구: "(허걱)..야 그게 말이되냐.니네들 원래 5월까지 하기로 한건데.거기다가.....야 통역. 말도 안된다고 전해"

조선족 통역: "이사님....근데 저 사람 말이 맞는데요.늦으면 벌금내고 빨리하면 보너스주는게 당연한거아니에요. 난 이해가 안되네요 이사님이...."

우리의 기준으로는 답답하고 말이 안통하는 이야기다.하지만 중국에선 당연스러운 일인가보다.류진운의 <닭털같은 나날>에는 중국의 현재와 과거를 읽을 수 있는 세편의 이야기가 있다. 동명소설인 <닭털같은 나날>,그리고 <관리들 만세>는 자본주의 근대화의 길을 걷고 있는 중국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특히 급격한 자본주의화에 따른 소시민들의 의식과 일상의 변화에 작가의 시선은 고정된다. 이 소설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이 내용이 단지 중국의 특수한 상황만이 아님에 공감한다.전통의 가치가 무너지고 '황금만능주의'라는 새로운 가치관이 자리잡는 사회가 가진 보편성을  소설은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중국보다 자본주의 이행이 앞선던 우리의 옛 모습도 이 보편성의 틀 안에 있다.'압축 근대'라는 이름으로 설명되는 한국의 단기간 자본축적 과정은 우리들 일상의 모습도 소설의 그것처럼 바꾸어 놓았던게 사실이다;이 소설이 한국에서 사랑받을 수 있는 이유는 소설의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일상의 고민과 행동들이 우리 과거의 모습이기도 하고 또한 현재의 모습이기도 하기때문이다.즉 독자와의 공감에 일단 성공하기 좋은 요건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 소설<닭털같은 나날들> 장점이다.또한 가지 큰 매력은 소설이 가진 유머이다.소설의 소재들은 충분히 어둡게 그릴 수 도 있고 신세한탄이 사회구조의 모순때문이라고 강력하게 외칠 수 도 있다.하지만 작가는 그 둘을 벗어나서 밝고 경쾌하게 이 문제의 여러가지 단면을 보여준다.문득 학교 다닐때 학과에서 기획하고 공연했던 몇몇 사실주의 연극이 떠오른다.나도 물론 관여했었다.이 소설과 비교해 보게 된다.학생들이 만든 극의 한계도 있었겟지만 내용면에서도 우리가 만들었던 사실주의에 바탕을 둔 극들은 직선적이었다. 가난한 신문배달 청년이 힘겹게 울고 불고.... 어떤 계기로 불끈 일어나...각성하고.... 노동자로서 부활하고..... 이 소설의 유머스러운 접근과 비교하니 왜 그렇게 촌스러웠느지 알 수가 없다.

<닭털같은 나날들>들은 일상의 욕망과 치졸함이 빠른속도로 연쇄충돌한다.주인공은 아내의 직장문제로 촌지도 주고 또 공무원이란 이유로 촌지도 받는다.촌지가 거절 당했을 때의 황망함.또한 촌지란걸 처음 받고 처음엔 어색해하다.하지만 이네 그 달콤함에 즐거워하는 모습들.물고 물리는 얄팍한 일상의 고단함이 그 안에 있다.그 고단함이 삶의 치열함이라고 애써 위로해본다.소설의 끝장면 선생님의 죽음에 대해 주인공의 미안함을 느낀다.그렇게 잘해주신 선생님이었는데......하지만 여기서 또 일상....... 주인공은 잠시 미안함을 느끼다가 다시 즐겁고 지겹기도한 일상으로 금방 복귀한다.나는 이 대목이 가장 마음에들고 또 안쓰럽고 썸뜩하다. 마음의 가책도 서글픔도 오래 간직 하게 하지 못하는 일상의 무거움이 나를 짓누르는 대목이다.너무나도 거대한 힘이지만  무섭고 위험한 모습은 아니다.일상은 평화롭고 또 달콤한 형상을 하고 있다.규칙적인 항상상이 존재하며 나락으로는 떨어지지 않을 안전핀이다.이 보이지 않고 모순적인 존재,일상이란 녀석은 주인공의 삶에 지속적으로 관여하며 '주체'를 잠식해 간다.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주체를 상실해야하는 주객전도.이러한 모순이 무서운 것은 이것이 소설 속에서만 살아있는 모순이 아니라는 것이다.옆집 똘이 엄마네가 판교옆에 땅사서 부자가 되고 있다는데 .... 앞집 순이가 외가쪽 친척덕에 들어가기 힘들다는 강남 00유치원에 들어갔다는데..... 뒷집 철이네는 최근에 큰 차로 업그레이드 해서 뻐기고 다니는데.......너는 뭐냐? 그게 다 좋은거 아니냐? 세상 사는게 뭐 별일 있냐? 적당히 비비고 적당히 뻐기면서 사는게 인생인거 아니냐? 아닌척 해봐라...너만 손해지.약게 살아라 그게 성공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듣는 이 수많은 언어들이 담고 있는 담론이 원하는 것은 무었일까?  행복한 일상이라는 환영이 무섭기까지하다.니체식으로 말하자면 '중력의 영'이다.잡아 끌고 평준화시키고....작은 것에만 분노케하는 힘이다.하지만 누가 일상이라는 거대한 자석이 내뿜는 자기장에서 완전히 자유로울까.지금도 자기장이 우리의 발을 당긴다.

<관리들 만세>는 복지부동 소심증 공무원들의 권력투쟁을 보여준다.회사 생활하면 가끔씩 만나게 되는 인사철의 복잡한 관계와 이야기들이 이 소설 속에서 쟁쟁거린다.평소 대범함을 자랑하던 사람들도 어디 어디서 들은 소식에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해진다.여기저기 몇몇씩 모여서 자신들이 마치 무슨 정치평론가나 제갈공명이 된 듯 판세를 펼쳤다 접었다 한다.그래봐야 공고붙고 며칠지나면 공고에 붙은 대로 줄을 쫙서서 적응하게 될꺼면서 말이다.이 소설에서는 보여지는 관리들의 모습은 자신의 이익에만 머리를 굴리는 소시민들의 얄팍함을 묘사한다.또한 권력의 행배에 따라 정상적 업무까지 영향을 받는 중국시스템의 부재까지 작가는 비웃고 있다.그러한 면에서 우리 사회는 어떨지 모르겠다.소설로 극화된 중국 공직사회처럼 시스템부재상황은 아닐것이다.하지만 작은 부분 부분에서 끝없 권력투쟁이 있고 이의 행배에 좌지우지 되는 불합리한 체계가 상상외로 많을 것이다.마지막 소설<1942년을 돌아보다>는 42년 대기근에 대한 르포타주형식의 소설이다.앞으 두소설과는 형식과 내용면에서 좀 차이가 난다. 300만의 아사자가 발생하는 상황에서도 정치에 얽매여 이를 구제하지 못한 위정자의 모습을 비판한다. 이번에는 작가가 조금더 직접적이고 계몽적인 방법을 사용한다.장개석과 국민당이 정당성을 가질 수 없음에 대한 다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촌로들을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형태로 쓰여져서 영화화한다면 오히려 재미있을 수도 있겠다.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앞의 두 소설이 보여준 블랙유머가 훨씬 매력적이다.

이 소설에서 특별한 상상력이나 구조의 뒤틀림을 기대해서는 안된다.전통적 소설 구조에 혁식을 가하는 소설에 즐거움을 느낀다면 그다지 큰 만족을 주긴 어렵다.구조는 단순하며 서술도 평이하다.신사실주의가 가진 현실의 과육과 블랙 유머의 향신료가 편안하고 즐거운 소설읽기를 도와준다.만만하지만 일상의 무게를 돌아보게 하는 재미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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