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지기의 한옥 짓는 이야기
정민자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3년 11월
평점 :
품절


"집은 집이 아니다."

특히 나처럼 아파트살이를 하고 있는 사람들에겐 딱맞는 말이다.총각시절 원룸(따지고 보면 이것도 아파트다.)생활까지 포함하여 나의 아파트살이 구력도 어언 20년에 이른다.그 시간동안 아파트는 집도 아니고 집이 아닌것도 아닌 모호한 상황의 주거공간이였다. 우리집은 어디어디 아파트 몇동 몇호....이 말이 주는 공허감.그 감정을 따라가면 두고온 '빨강 지붕의 양옥집' 에 대한 아쉬움을 찾을 수 있다.

내가 아이였을 때 우리는 빨강 양옥집에 살았다.6살때 부터 15살까지 였을 것이다.아버지는 그집을 산 첫날 내 집이 생겼다는 설레는 마음에 밤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한다.우리집에는 꽤 큰 화단이 있었다. 목련나무,홍매화 나무,산수유 나무,덩쿨장미,그 외 크고 작은 화초들...봄이 되면 크게 자란 장미꽃들이 담장 너머로 넘어갔다. 인근 공장에 다니던 누나들이 지나가다 가끔 대문까지 들어와서 꽃을 꺽어가기도 했다.그 집에서 꽤 살았다.그러다가 중3때인가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되었다.내가 기억하는 거의 첫번째 이사인듯 하다.짐을 실었던 마지막 트럭과 함께 그 집과 작별을 해야했다.돌아보는 집이 외로와 보였다.뭔가 사랑하는 사람을 배신한 죄책감이 들었다.나는 이미 이사 가기 며칠전 부터 그 집을 이루고 것들과 작별식을 했다.가끔 쥐가 출몰해서 혼비백산하게 했던 부엌,가끔 올라가서 먼지를 뒤적이면 흥미로운 것들이 발견되었던 다락,목련꽃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었던 옥상,겨울철 얼어붙어서 아버지와 뜨거운물 부어대던 옥외수돗가.나는 그 모든 것들에 한번씩 눈길을 주고 인사를 했었다.하지만 마지막 떠나는 길에서 바라본 퇴색한 지붕의 양옥집은 지친 거인처럼 쓸쓸해보였고 내 코끝을 찡하게 만들었다.아파트에 오래 살면서도 나는 집 하면 그 양옥집을 생각한다.아파트처럼 텅빈 공간이 없는 꽉찬 집으로써의 느낌을 주는 것은 그 집이 유일하다.

한옥짓고 사는 이 책의 지은이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집은 우리식구들의 정든 주거공간이요,남편에게는 가장 소중한 애장품이다.'  마지막 말이 인상적이다. 집이 가장 소중한 애장품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게 한옥이든 양옥이든 자신의 의지에 맞게 설계하고 돌 하나하나 쌓아 지은 사람만이 뱉을 수 있는 멋진 말이다.그런 집이 진짜 집이라는 생각이든다.

한옥을 짓는 다는 것이 보통일은 아니다.이 책을 보면 한번더 확인할 수 있다.지은이는 일단 저지르면 다 한다라고 격려한다.하지만 저자도 이미 지어본 사람이라서 할 수 있는 말이다.주변에 좋은 지인들의 도움도 기대하기 어려운 나같은 사람이 마음 먹는다고 쉽게 달려들 수 있는 일은 아니다.지은이가 몸담고 있는 아름지기란 재단은 일반인들의 한옥짓기에 도움을 주기 위한 단체이다.일단 이 책을 통해서 이런 단체가 있다는 것을 안것 만으로도 관심있는 사람들에겐 최고의 수확이 아닐까 한다.항상 모든 일이 그렇지만 맨땅에 해딩하는 것만큼 힘든 일이 어디있겠는가.

이 책은 첫단추부터 하나씩 설명한다.물론 전문적인 수준까지 이야기하진 않는다.'대략 이런 식이면 가능하지 않겠나' 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준다.목재를 구하는 방법,목수를 구하는 방법,도배를 하는 방법,한옥에 어울리는 인테리어방법등등...지은이의 공사보고서가 갖는 강점은 실제 집주인으로서의 삶의 경험이 묻어있다는 것이다.어디에도 어울리지 않는 에어컨을 숨기는 방법이란든지 화장실의 수챗구멍을 없앤다던지 하는 것들은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는 노하우이다.집을 잘 짓는 대목이라 할 지라도 그런 세세한 것까지 다 이야기해줄 수는 없지 않은가.저자는 집이 사람의 성품을 바꾼다고 말한다.지은이는 집 지으며 인내를 배웠다고 한다.또한 한옥이 자연친화적 삶을 사람들에게 요구한다고 한다.한옥에 들어서는 사람들 역시 옷매무새를 다시 한번 만지고 걸음도 신중해진다고 한다.굳이 양옥에 비해 한옥이 좋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한옥을 나름대로 현대화시킨다 하더라도 편의성면에서 양옥이 가진 장점을 넘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수많은 가구들을 전부 벽장에 넣는 것도 쉽진 않은 일이다.결국 어떤 삶의 형태를 선택하는 가의 문제일 것이다.조금의 불편을 감내하더라도 깊이있고 여운있는 삶을 선택하는 것도 무척이나 매력적이다.그런 선택은 또 결과에 서로 영향을 주어 삶과 자연의 일치감을 높여줄 수도 있을 것이다.언제가 한옥을 한 채 짓고 싶다.설마 꿈으로 끝날 수 도 있지만 집에 들어서면서 기둥의 소나무향을 맡고 싶다.

이 책 말미에 함양의 '한옥 문화체험관'이 소개되었다. 작은 사진이었지만 자세히 보니 공사전에 한번 가 본적이 있었던 집 같다.함양 근처에 사는 천연염색하는 분과 함께 였다. 그 집 마당에서 천연염색을 했고 안채에 있는 마당에 바지랑대를 걸고 널었다. 고색창연한 고택에 형형색색의 천들이 바람에 날렸다. 아름다왔다.그곳이 한옥체험관이 되어 한옥살이를 경험해볼 수 있게 해주나보다.언젠가 또 기회가 닿으면 한번 들러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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