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 그린비 크리티컬 컬렉션 15
프란츠 파농 지음, 남경태 옮김 / 그린비 / 200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파농의 책을 읽다가 대학교 역사 수업시간이 떠올랐다.식민지 해방투쟁과 관련된 수업이었다.첫 시간에 강사는 이 수업의 기본 전제에 대해 말했다.일제 식민지 시기 우리 민족의 반제국주의 전선은 크게 두가지이다.하나는 민족개량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폭력혁명론이다.우리 역사는 분단으로 인하여 폭력혁명에 대한 부분은 진지하게 다루어지지 않았다.반면 민족 개량주의는 당시 현실 속에서 어쩔 수 없는 아주 현실적인 선택이었다.하지만 강사왈...그거 다 뻥이다.그리고 한 학기 수업에서 왜 민족개량론이 뻥일 수 밖에 없는지를 설명하고 식민지 현실에서 폭력혁명이 유일한 반제국주의 투쟁방법일 수 밖에 없었음을 이야기하자고 했다.

일제시대 우리민족의 과제는 두가지로 압축된다.반봉건과 반제국주의.반봉건은 유교적 중세성에서 벗어나 개인의 자유와 민권의식을 함양해야하는 내적 과제이다.이와 함께 외세라는 제국주의의 물결에 저항하여 민족의 생존권을 지켜야하는 외적 문제 역시 해결되어야 했다.이러한 이중억압 구조의 혁파는 지상과제였다.많은 지식인들이 그 대안을 사회주의 혁명에서 찾았다.해방 이후 초기에서 중도좌파계열이 대중의 상당한 지지를 얻을 수 있었던 것도 혁명전통의 순수성과 토지분배문제에 대한 민중들의 이익을 반영하고 있었기때문이다.이 책<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의 서문에서도 사르트르는 이렇게 말한다.  "민족혁명이 성공하려면 사회주의 혁명이어야 한다."

사회주의 혁명의 특징중 하나는 프롤레타리아의 폭력혁명이다.개인의 자유와 사적 자본축적을 이룩한 한 역사의 주체 부르주아지가 변증법의 틀에서 안티테제에 이르는 때가 필연적으로 온다.노동력만을 유일한 자본으로 하는 프롤레타리아의 투쟁은 승리하고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거쳐 사회주의 이상이 건설된다.프란츠 파농은 이 책에서 사적 유물론의 단계론적 세계관을 식민현실을 토대로 부정한다.파농은 저개발국에서 부르주아지 존재의 필요성에 대해 부정한다.식민지 사회에서 부르주아지는 식민 모국의 부르주아지와 자신을 동일사하려는 속성을 보인다.거기에 그들은 편협한 민족주의의 이름으로 민족을 대표하는 권력을 얻게 된다.이들은 또한 식민 모국이 심어준 인종주의적 편견을 그대로 답습한다.식민사관을 그대로 답습하여 "조선놈들은 게을러서......" 라는 식의 민족 부르주아지의 정서가 피부색을 달리한 사람들에게 적용되면 그게 인종주의적 편가름이된다.민족 부르주아지는 점차 자신의 민중들에게는 등을 돌리고 식민 모국,외국자본가들을 지향한다.결국 식민 모국으로 부터 독립이 될 지라도 광범위한 압력을 통해 식민모국은 그 영향력을 직접지배때보다 넓히게 된다.더 간단하게 말하면 식민국가는 신신민지의 형태로 바뀌게되는 것이다.

파농은 식민지의 자본축적이 중개업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파악한다.식민지는 경제적으로 이중의 수탈을 받는다.하나는 자원의 공급시장이요 또 하나는 잉여생산물의 수요시장으로서의 역할을 갖는다.민족부루주아지는 이 사이에서 중개라는 형태를 통해 자본을 축적한다.파농은 해방이후 중개업에 대한 국유화로 자원의 분배형평성과 민족부르주아지의 사적 자본 축적의 통제를 주장한다.

파농이 보기엔 혁명의 주체는 사회주의혁명처럼 프롤레타리아가 아니다.파농은 프롤레타리아를 식민지사회에서 나름대로 수혜를 보고 있는 사람들로 본다.이들이 점차적으로 민족 부르주아화 되며 민족정당에 대한 지지를 보이게 된다.식민 모국은 지속적으로 분리정책을 주도한다.결국 프롤레타리아와 식민부르주아가 혼재하는 도시층과 농민과 기타원주민들이 산재한 농촌과의 분리가 이루어진다.파농은 혁명주체로서 후자인 농민을 들고 있다.그는 농민들의 혁명역량과 의식의 건강성에 대해 과하다 할 정도의 믿음을 가지고 있다.농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정치교육의 강화이다.농민을 비롯한 대중들이 자신들의 위치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현재의 억압을 뚫고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농촌으로 잠입한 투사나 지식인들이 그 단초 역할을 한다.하지만 파농은 그들의 역할에 과다한 짐을 싣지는 않는다.그들 역시 민중속에서 그들에게 동화되어 배워야한다고 말한다.

이 책이 탈식민논의의 초석이 된 것은 파농이 심리학자였다는것이 큰 역할을 한 듯하다.식민지의 구조와 경제체제만을 논의한 것이 아니라 식민지 인들이 갖게 되는 내적 식민화의 부분을 파농은 심각하게 우려하고 그 원인의 소재를 밝힌다.우선 식민화된 인간의 공격성에 대해 날카롭게 지적한다.인종주의적 이분법이 내재화된 이주민들은 원주민 통제를 위해 가공한 폭력을 일삼는다.식민지 사람들은 그들에게 이질감을 느끼면서도 원주민처럼 되길 꿈꾼다.하지만 이러한 꿈은 꿈일뿐 지속적으로 좌절을 겪게된다.내적 억압은 같은 억압을 받는 원주민을 향한 폭력으로 발산되는 양상을 보인다.특히 식민지 룸펜 프롤레타이아의 폭력은 주의를 요한다.혁명초기의 룸펜프롤레타리아의 폭력성을 어느방향으로 잡느냐에 따라 양날의 검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파농은 기본적으로 식민지체제의 폭력과 원주민의 대항폭력에 같은 가치를 부여한다.식민체제가 폭력적일 수록 대항하는 힘도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파농은 이 에너지가 혁명투쟁으로 전환되기를 꿈꾼다.각성된 민중의,민중을 위한,민중에 의한 무장혁명이다.폭력투쟁은 게릴라전 양상을 띄게 될 것이며 또 식민모국의 유화정책에 교란될 것이다.파농은 단호히 전체의 변화가 아니라면 타협은 없다라고 말한다.또한 식민모국의 이분법적 사고로 내적 식민화된 사람들의 인식 해방도 병행되어야 한다고 말한다.즉 검은 사람보다 더 검은 하얀피부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 또 그 반대도 항상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 세밀한 관찰을 요구한다.

파농이 궁극적으로 말하는 탈식민화는 식민상태에서 벗어나는 소극적 입장은 아니다.파농은 말한다.탈식민화는 언제나 폭력적인 현상일 수밖에 없다.탈식민화란 쉽게 말해서 어떤 '종의 인간이 다른 종'의 인간으로 바꾸는 것을 말한다.과도기 같은 것은 전혀 없고 오로지 전면적이고 완전하고 절대적인 대체만 가능하다.파농의 이러한 주장은 현체제에 적용하는것은 과격한 주장이란 비난을 받기 십상이다.파농의 60년대 알제리와 현재의 시대는 다른다.하지만 억압받는 소수국이 거대한 제국에 저항하며 생존권을 유지하기 위해 폭력에 의존하는 것 외에 또 다른 길이 쉬이 찾아지지는 않는다.물론 개량주의적 타협을 배제한다면 말이다.

우리 민족은 파농의 이야기에 정서적으로 닿는 부분이 생긴다.식민지를 겪었기때문이다.파농이 지적한 내적 탈식민화가 우리사회 제반 부분에 적용되는 것도 식민지 역사라는 토대가 있기때문이다.우리의 의식적 탈식민화는 일본제국주의의 억압대상자로서만 한정되지 않는다.신식민지상황 속에서 미국과 서구문명에 의존적인 역사 역시 내적 탈식민화의 영토가 된다. 또 등떠밀려나갔던 자의적으로 나갔다 미국의 세계전략 일원으로 참가했던 베트남전, 해외시장,국내등지에서 벌어지는에서의 경제적 착취문제등에도 자성해야만 한다.사르트르와 파농은 이렇게 자성의 목소리를 높인다.

"동포들이여 우리의 이름으로 온갖 범죄가 저질러 지고 있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것에 대해 한마디도 다른 사람에게 내뱉지 않는 것은 옳지 않다.법정에 서는 게 두렵다면 자신의 영혼에게라도 말해야 한다."

 "내 몸이여,나를 언제나 의문을 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오 "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5-06-16 01: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드팀전 2005-06-16 09:26   좋아요 0 | URL
**님께....감솨..감솨....
오타는 찾는데로 수정하겠습니다.제가 서재글을 쓸때 주로 회사에서 눈치봐가며 쓰거든요.아무래도 빨리 치다보니 오타가 있습니다.거기에다가 다시 한번 볼 틈도 없이 바로 등록해버리거든요.이후에 한번씩 보다 오타발견하면 그때 그때 수정하죠.지금도 하나찾았는데...찾아보면 많을거에요.알어서 읽어주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