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피터 : 난 좋아 내 하얀 운동화 마음속 그림책 1
에릭 리트윈 글, 제임스 딘 그림, 이진경 옮김 / 상상의힘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애완 동물은 키워 본 적이 없다.

 

먹이 주는 시간을 어떻게 아는지 정말 궁금한 어항 속  6마리 구피는 제외하자. 구피 녀석들은 말린 새우와 이름 모를 것들을 갈아 깨알같이 만든 먹이를 먹는다. 하얀 먹이통을 들고 오는 소리를 귀신처럼 알아 낸다. 물고기도 귀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눈치?

 

구피가 처음 죽었을 때, 형아 예찬이와 나는 장례식을 치뤄주었다. 물 갈아주다가 세면대로 빠져 버린 구피는 지금쯤  악어가 살지도 모르는 강에서 고래보다 더 커다란 대왕 구피가 되었을 것이다. 요즘 구피가 죽으면 물티슈로...거기까지만.

 

고양이 피터는 우리 집 구피정도는 거들떠 보지도 않을 것같다. 헤밍웨이의 노인이 놓친 청새치정도는 되어야 눈빛이 빛날 듯. 피터는 쿨한 고양이니까 . 내가 아는 고양이 중에서 피터는 가장 도도하고, 쿨하다. 그는 긍정적이며 삶을 즐긴다. 음악도 좋아한다. 기타리스트가 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멋진 화염으로 피니쉬된 일렉 기타를 좋아하며, 가끔은 벤조도 연주한다. 자동차는 물론 빈티지한 스타일의 뚜껑없는 오픈카다.그리고 색깔별 스니커즈를 즐겨신는다.

 

이 정도면 이미 고양이계의 패셔니스타가 아닐 수 없다. 춥다고 동네산책로에 점박이 이불같은 것 둘러싸고 종종 거리는 강아지들하고는 레벨이 다르다.

 

 

 

(출처 :www.petethecat.com)

 

피터는 고양이계의 새로운 아이콘이다. 조그만 생쥐 제리때문에 망신살 뻗친 톰 아저씨는 호적에서 파낸 지 오래다. 에릭 바튀의 <빨간 고양이 마투> 는 착하기는 한데 식은 밥 모아먹어서 허리띠 위로 살이 비져 나올 듯 하다. 좀 둔해보인다. 우르르 몰려다니며 사고 치고 수습하기 바쁜  바바 노보루의 <열한마리 고양이>들은 말 안듣는 고등학생들 같다. 거기에 고양이가 우르르 몰려다닌다니. 무슨 조직도 아니고 말이다. 반면 피터는 독립적이 세련된 고양이다.

 

가끔 피터도 실수를 한다. 아니 실수를 즐기는 것 같다. 딸기도 밟고, 블루베리도 밟고, 흙탕물도 밟는다.그의 운동화가 불게, 푸르게, 갈색으로 물든다. 때로는 흠뻑 젓기도 한다.

 

나 : "피터는 울었을까요?"

재원 : "아니요."

 

함께(노래하면서) : "난 좋아. 내 빨간 운동화"

 

고양이 피터를 만난 건 행운이다. 찾아가기도 함든 -부산 사는 분들도 있는지도 모를- 장기려 박사 기념관에 갔다. 부산 초량에 있다. 부산 여행객들이 블로그 등에 산복도로에서 찍은 사진을 올려 놓고, 나폴리니 산토리니니 하니까 여행 코스를 하나 만들었다. 이름하여 '산복도로 이바구길'이다. 하여간 기념관에 찾아간 그 날도 십 여명의 등산복과 카메라 무리들이 길을 따라 내려오고 있었다. 부산이 낳은-선생의 고향은 북한이고 월남했다- '원조 바보' 가 장기려이다. 기념관에 가면 구구절절 사람을 살리고, 울리는 감동의 '바보짓'들이 설명되어 있다. 거기 가면 동네 주민을 위한 작은 도서관이 있다. 편안하고 안락한 공간이었다. 거기서 피터를 만났다.

 

피터를 처음 읽어 주었을 때, 동생 재원이는 거의 박장대소. 특히 반복되는 후렴구에 대충 입으로 만든 멜로디를 붙여주자 거의 웃다가 넘어 갔다. 도서관에서만 너댓번은 읽은 것 같다. 다른 어린이 도서관에서 <멋진 내 단추>를 보았다. 재원이는 결국 "아빠, 이거 다 사주면 안돼요." 라고 말했다.  그래 ,부산말로 "거 뭐시라고" ...

 

그냥 아무 때나 재원이에게 "피터는 울었을까요?"라고 물으면, 재원이는 자동적으로 "아니요. 난 좋아. 내 흰색운동화." 라고 한다. 우리는 같이 춤도 만들었다. 어제는 클레이로 '기타를 맨 피터'를 만들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완전히 즉흥적인 생각이었지만 재미있을 것 같다. 물론 내가 피터가 좋아서 하는 거다.

 

(출처:www.petethecat.com)

 

나는 결국 그림을 그린 제임스 딘(이름도 멋지다니) 의 피터 홈페이지까지 찾아들어갔다. 국내에 피터 시리즈는 2012년에 처음 소개되었고 현재까지 3권이 번역되어 있다. 그런데 이미 미국에서는 꽤 유명한 고양이인 듯 했다. 책 뿐만이 아니라 판화, 티 셔츠, 핸드폰 캐이스등 다양한 상품까지 나와 있다. 홈페이지에 저자 소개를 좀 읽어 보니, 역시 그는 음악을 좋아했다. 그러니까 피터가 그렇게 기타를 매고 있는 거지. 피터는 그가 실제 키웠으나 지금은 집나간지 10여년 넘은 고양이이다. 그 고양이가 사라졌을 때 몇 날을 망연자실하다가 피터를 그리워하며 그린 것이 이 이야기의 시작인 셈이다. 원래 고양이 피터는 검은색이었지만 사람들은 검은 고양이를 꺼리는 관계로 짙은 푸른 색으로 바뀌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집나간 고양이 피터는 울었을까요? "

 

아니요. 피터는 지금 세계 여행 중이다. 사람들은 고양이 피터와 찍은 인증샷을 홈페이지에 올린다. 펭귄이랑 있는 피터도 있던 걸...

그렇다. 고양이 피터는 자기 본성에 충실하다. 그는 삶을 긍정하며, 유머를 안다. 그리고 자기 삶의 주인이 다른 이가 아니라 자기라는 것을  깨닫고 있다. 그는 자유다.

 

인생은 결국 고양이 피터가 되는가, 갈비집 똥개가 되는 가의 차이이다.

 

(출처:www.petetheca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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