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침부터 빗방울 소리가 들린다. 창문을 열어 보니 고층 건물들 사이로 느린 걸음의 안개가 다가온다. 습관적으로 틀어 놓는 라디오.  젊은 여자는 놀라운 비밀을 공유하겠다는 우월감 넘치는 목소리로 톤을 높여 이야기한다. 마라톤 행사로 인해 도로 통제가 있단다.

 

...

 

 글렌 굴드의 시벨리우스 피아노 소나타의 느린 악장의 멜로디가 머릿 속을 밀물과 썰물처럼 교차한다. 하지만 거품처럼 잡히지 않는다.

 

...

 

커피 한 잔을 올려 놓고 이제는 창 문 밖에 얼굴을 내밀고 있는 안개뭉치들을 바라본다.

 

혼자 물끄러미 바라본다.

...

관성의 법칙은 글쓰기에도 존재한다. 한번 멈춘 펜은 그 자리를 유지하려고 한다. 그리고 주변에 지방이 쌓이면서 점점 더 움직이기 힘들어진다. 글쓰기를 생업으로 하거나, 또는 소통의 중심거점으로 생각하는 이들은 그래서 습관적으로라도 무언가 쓰는 것이 옳은 일이다. 전자나 후자나 효과라는 측면에서는 권할 바는 아니다만. 둘 다 인간관계라는 폭발적 변수들과는 일정정도 거리를 둔다. 그나마 글로 생업을 이어가려면 실물적 흐름을 완전히 외면할 수는 없다. 돈이라는 매개는 싫으나 좋으나 접촉을 요청하기 때문이다. 

 

반면 알라딘같은 곳에 취미로 글을 쓰는 것은 즐거운 일이긴 하다. 동호회에 전 회장 같은 느낌으로 여유를 부리며 글을 쓸 때는 더욱 그렇다. 적당한 스노비즘과 적당한 이해의 폭으로 여유를 부린다.

 

... 그래서 글을 더욱 쓰지 않게 된다.

 

2. 최근 문화예술쪽에 관심이 있다는 사람들을 좀 만났다. 그런데 그저 문화자본을 통해 위세를 도모하는 부류들에 지나지 않는것 처럼 보인다. 사회적 지위도 높아지고, 돈도 좀 있는데,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와인을 한잔 기울이며 예술계에서 활동하는 누군가를 거론하면서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작품에 대한 이해나 미적 관심보다는 예술계의 네트워크에 더 관심이 많다. 지역 내에서 문화적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이나 창작자들, 그들과의 교류 또는 인맥이 예술보다 더 예술적이라고 믿는 것일까?  이들이 '누구 누구 압네' 하며, '그 사람 작품이 아주 좋아' 라고 하면 그보다 사회적 지위도 낮으며, 뭔가 우호적 관계를 맺어야 하는 사람들은 동네방네 다니며 '그 분이 예술적으로 아주 해박하다.' 라고 자발적 스피커가 되어 준다.  그렇게 공생이 이루어지는것 같다. 한 쪽에서는 얄팍한 취미로 자신을 포장하고, 정치경제적 이득을 요하는 사람은- 일단 예술이니 뭐니, 그런건 관심 없으니- 그들의 부족한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데 충성을 다한다.  그리고 이들의 대화는 이런 형식으로 마감된다..

 

  "어...그 작품 아주 훌륭하다구...00씨도 너무 돈버는데만 힘 쏟지 말고, 그런것도 경험해 보라구. 아...그리고 이번 주 공치러 가는거 멤버 다 만들어졌나? 누구 누구 나오신다고 했지."

 

3. 점점 더 조용히.. 가만있어야 하겠구나라는 생각만이 강해진다. 

 

미뤄봐야 곧 샤게 될 몇 몇 책들 CD 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