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비 오는 아침, 무지개 빛 우산이 작은 동심원이 되어 멀어져 간다. 아파트 사이로 붉게 포장된 길은 1학년 예찬이의 학교 가는 길. 지난 일주일 동안 엄마 또는 아빠와 함께 학교를 갔다. 그리고 이번주 부터는 혼자서 씩씩하게 집을 나선다. 오늘 아침은 내가 아이들을 챙겨야만 했다. 아이 엄마가 이른 시간에 울산에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찬이는 여덟시 십분, 재원이는 여덟시 오십분에 등교한다. 부지런히 예찬이를 보내고 나서 아파트 뒷창으로 녀석이 사라지는 모습을 잠시 바라 봤다. 찰방 찰방 잘 걸어간다. '많이 컸네 아들' 하며 기특해하고 있는데, 재원이가 그런다. "아빠, 형아, 숟가락 안가져 갔는데..옹옹" 아뿔싸, 수저통을 넣어 주지 않았다.
순간 이걸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지 몇 가지 생각이 머릿 속에서 타탁거렸다. '에이..남자 답게 지가 알아서 해보라고 그냥 둬. 그것도 다 배우는 거지 뭐?' '아니 아니...어렸을 때 날 생각해봐. 좀 당황스럽겠지. 초반이라 아마 선생님이 본보기로 이렇게 빼놓고 다니면 어쩌구 저쩌구 아이들 앞에서 뭐라 하실지도 모르는데 그럼 창피해서 자존심 상하는데'
'그래 가져다 주자. 그런데 어떻게 넣어주어야 하지?', ' 교실로 가서 수업 중에 넣어주나? 아니면 학교 교무실에서 아무나에게 전달해 달라고 해야 하나?'
재원이를 광속 스피드로 씻겨서 노란 유치원 버스를 태우고 손 키스를 날렸다. 다음은 예찬이 학교. 1층에 있는 1학년 교실. 어떤 반은 선생님이 앞에서 무언가 말씀하고 계셨고, 어떤 반은 우르르 뒤에서 선생님과 사진 찍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예찬이 반 문은 열려 있었다. 아이들이 없었다. 어디 다른 곳에 갔나보다 싶었다. 처음엔 교탁에 수저통을 놓고 가려고 했다. 그런데 어차피 교실까지 간거 예찬이 자리가 어딘지나 보자 싶어졌다. 교실로 들어갔다. 아무도 없으니 뭐라지 않겠지 하며 말이다. 눈에 익은 빨간 코트가 의자에 걸려 있었다. 책상 왼쪽 구석에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예찬이 이름이 적혀있다. 책상 위에 초록색 수저통을 놓아두고 누가 볼새라 후다닥하고 나왔다.
예찬이 녀석 하루 종일 '어...이상하다. 이게 왜 여기 있지?' 할 거다. ㅋㅋㅋ
2. 지난 해 부터 대학원이란 곳에 다닌다. '뒤늦게 공부를 한다.'라고 쑥쓰럽게라고 고백이라도 하고 싶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난 늘 공부해 왔었다. 내가 책보고 알라딘이든 어디든 글을 끄적이고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기웃거리것이 따지고 보면 공부아닌가? 그래서 학위를 주는 곳에 간다고 마치 기독교인이된 사울처럼 새 세상을 선포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대학원 공부가 늦었던 것은 대학에 대한 회의주의적 시선때문이었다. 부분적 적실성이 사실로 입증되기도 하는 그 편견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학문이 학교 바깥에서 이미 만연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오로지 학교에 있는 사람들 뿐이다. 김영민의 <공부론>에서 인상적인 것이 학문의 도와 무사의도를 비교하는 대목이다. 칼을 쓰는 사람들은 칼을 뽑는 순간 생/사를 건다. 생/사를 걸기에 인고의 세월을 무림에서 내공을 쌓는다. 하지만 학문의 도는 그와 같지 않다. 말도 사람을 찌르지만 가볍기 그지 없다. 남의 것을 배껴서 어떤 위치에 오르기도 한다. 생/사를 가르지도 않는다. 하지만 진정한 학문은 무사의 도와도 비슷한 것일게다. 그런면에서 무사의 도를 거는 학문하는 이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지금도 열심히 알아주지 않더라도 무공을 닦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학교라는 거대한 제도의 틈바구니에서 좋은 위치를 차지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세상사가 늘 그처럼 되진 않는다. 다들 알고 있겠지만 말이다. 내 개인적으로도 학문의 길을 갈 재목도 내공도 의지도 없다고 생각한다. 공자가 말씀하셨고, 옆집 순돌이 아빠가 말했듯이. 즐기는 자가 최고고 뭐든 직업이 되면 괴롭다. 나는 즐기는 자가 되는게 좋을 듯 싶다. 공부라는 평생 지루하지 않을 즐거운 놀이감을 직업으로 만들어 좋은 놀잇감 하나를 없앤다면 인생이 너무 심심하지 않을까?
아내는 머리로 싸우는 일에 인생을 낭비하지 말라고 한다.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학원이란데 다니면서 더욱 절실히 느끼고 있다. 그래서 곧 실용음악학원으로 바꿀까 생각중이다.ㅎㅎ 아마 대학원과 실용음악학원을 동등한 교환 층위에 올려 놓는 것에 분개할 사람들이 꽤나 있을 듯 하다. 사교댄스도 배우는 마당에 분개하실 필요까지야.ㅎㅎ
지난 겨울 아침 일찍 창원으로 가고 있었다. 라디오에서 증권사인지 보험사인지 광고가 나왔다. '40대는 또다른 20대다'라는 카피가 귀에 걸렸다. 그 질문을 내부적 환기시켜봤다. '더 늦기 전에 하나 해야 한다면 뭐를 할까? 10년 정도 꾸준히 하면 좋을거' ..그리하여 기타를 다시 치기로 했다.
내가 기타를 처음 배운 것은 중 2때다. 성적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통기타를 사서 기타학원에 몇 달 다녔다. 몇 개의 코드와 스트로크 등등을 배우고 그걸로 대학까지 버팅겼다. 물론 독학자들의 바이블 <이정선 기타교실>이 있었다. 그런데 대학교 초반부까지도 과방에서 기타 좀 치는척했는데 복학 이후에 기타는 완전히 내 손을 떠났다. 취업도 해야겠고 연애도 해야겠구...하여간 나이 40넘어 17-8년 만에 다시 기타를 잡았다. 연습용 일렉기타를 샀다. 데임 세인트 250 디럭스. 썬버스트색이다. ㅋㅋ 용어들이나 코드 등등이 낯설지는 않았다. 그래도 음악이론부터 다시 잘 배우기 위해 밤에 열심히 독학하고 있다. 주요 플랫 중심으로만 알았던(사실 개방현과 7플랫만 알고 있었다) 기타 지판도 모두 외우고 있고, 제대로 하지 않았던 각종 스케일 연습도 .... 인터넷의 각종 동영상 강의들도 참고한다. 뭐가 되려는지 모르지만 하여간 좀 늦어도 제대로 하고 싶어서 TAB보고 곡 카피하는 짓은 앞으로도 꽤나 오랫 동안 하지 않을 셈이다. 물론 유투브 등에 올라와 있는 유명란 곡들 카피한 거 보면 당장 해보고 싶기도 하지만.... 10년 할 거라서 천천히 한다. 왼손 오른손을 조자룡 헌창 쓰듯 하려면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지옥의 트레이닝이 필요하다.
ㅎㅎ 기타의 세계는 아무리 속이려고 해도 삑살이와 뮤트되지 않는 소리들과 부드럽지 못한 프레이징과...드러나는게 수 백 수 천이다. 그럴싸한 자격증 가지고 해결되지 않는다.ㅎㅎ 무림의 세계는 목숨으로 증명하고, 기타의 세계는 녹음기로 증명한다.속일 수가 없다. (진지하게 쓰다가 약간 자기 검열도 하고...뭐가 그리 심각한 것도 없으면서...하면서 웃기는 간지로 빠진다.ㅎㅎ)
사실 내 목표는 나중에 아들 키워서 같이 리듬과 리드 번갈아 가면서 연주해보는 거다. 직장인 밴드같은 건 안한다. 직밴들도 하급무사들처럼 웃기는 구석이 있다. 김과장 이대리님도 왜 이리 아티스트 흉내들을 내시는지 아주 웃긴다. 무대나 강단이나 올라가면 다 비슷한 구석이 있나보다. 올라가지 말아야지 인간되는 건 맞는 것 같다.
하여간 2-3년 뒤에 좀 더 나은 실력이 되면 좋은 기타를 하나 정도는 사고 싶다. 근데 좀 많이 비싸다.ㅜㅜ
깁슨 커스텀 57 레스폴 골든탑....뚜웅. 대략 500만원 정도.
뷰티풀하다.
예전에 스노위 화이트라는 기타리스트가 있었다. 필리뇨트의 그룹 씬리지의 멤버이기도 했고, 핑크 플로이드와도 공연을 자주하는 기타리스트다. 스노위 화이트가 57 레스폴 골든탑의 대표적 유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