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제2복음 1
주제 사라마구 지음 / 문학수첩 / 199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난 지금 신을 믿지 않는다.과거에는 믿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님 믿음을 강요당했던 것 같기도 하다.어려서부터 부모님들은 교회에 다니셨다.그래서 난 유치원도 그 교회의 부설 유치원을 다녔다.유치원 간식 시간에는 먼저 주기도문을 외워야했다.7살 먹은 녀석이 그 뜻을 어떻게 알수 있겠는가.단지  남들도 다 따라하고  나 역시 간식의 유혹에 뿌리치기 어려우니 열심히 따라외웠다.

초등학교때는 만화영화때문에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부모님들의 설득보다 만화의 유혹이 컷다.(아마 만화에 악마가 깃들여 있었나보다.) 하지만 어머니의 쑈(?)에 의해 난 교회에 나가기로 결심했다.우리 어머니의 쑈는 지금 생각하면 좀 귀여운데가 있다.어느 일요일 아침 단단히 작정한 어머니는 내 손목을 끌고 교회로 가셨다.난 대한민국 헌법에 보장된 종교의 자유를 주장하며(진짜 그랬다.) 완강히 저항했다.결국 새로놓인 8차선 도로앞에서 어머니와 나의 전선이 형성되었다.그때 우리 어머니..."니가 교회에 가지 않으면 엄마는 확 찻길로 뛰어들거야" 라며  찻길로 들어가셨다. 초등학교 4학년인 내 눈에는 어머니가 진짜로 길로 뛰어드는 것 처럼 보였다.결국 어머니의 블러핑에 엉엉울면서 "알았어..교회가면 되잖아" 라고 말해버렸다.진짜 애들 데리고 무슨 블러핑을 그리 세게 하셨는지....사실 우리부모님도 날라리 교인이신데. ....그래도 지금 생각하면 귀여운데가 있다.

어쨋든 나의 패배로 종교를 둘러싼 집안내의 갈등은 사라졌다.하지만 중학교 2학년때 난 교회에서 발을 끊었다.이유는 너무 단순하게 교회에 진짜 맘에 안드는 놈이 설치고 다니는 꼴이 보기 싫어서였다.여차여차하다 고등학교를 가게되었는데 또 거기가 미션스쿨이었다.교가보다 '실로암' 이란 가스펠이 더 자주 불려지던 곳이었고 반에서 절반정도는 교회에 나가고 있었다.매주 수요일 예배를 봤는데 그땐 그다지 크게 불편함을 느끼진 않았다. 예배때 가서 영어 단어장보고 그런 친구들이 많았는데 나도 그중 하나였으니까.

야간 자율학습시간은 간간히 종교토론장으로 바뀌곤했다.열성 교인 친구들과 나같은 비기독교인들 사이의 말꼬리잡기 논쟁같은거다. 그때 많이 나왔던 말들이 대략 이런거다. "신이 있다면 어떻게 무고한 사람들을 그렇게 죽게 내버려 둘 수 있느냐? "천국이란거 가본 사람도 없는데 어떻게 있다고 믿느냐?" "하느님을 믿는 거냐 교회를 믿는거냐?"  어차피 짧은 지식에 서로 사이비 논거를 들이대며 티격태격했다.하지만 이러한 질문들은 아직도 유효한 듯하다.

주제 사라마구의 "예수의 제2복음" 은 많은 예수관련 창작물들 처럼 성서에 나온 예수에 대한 인간적인 해석을 보여준다. 기본뼈대는 복음서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작가의 상상에서 나온 장면들이 훨씬 더 많이 자리한다. 1부의 전반부 주요인물인 요셉의 경우만 보더라도 작가의 인간적인 상상은 성서이야기를 무시한다.아이를 잉태하게 되는 장면도 그렇고 요셉이 어리버리하다 십자가에서 죽는 장면들로 그렇다.또 다른 아이들을 살릴수 있었음에도 아이 예수를 살리기 위해 허둥지둥거리다 수많은 아이들 죽음으로 몰고간 죄책감 같은 것도 성서에는 나오지 않는 작가의 상상이다. 주인공인 예수 역시 확고한 신념을 가진 인물로 그려지지 않는다. 하나님이 너는 나의 아들이라고 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과연 그런지 의심하는 인물이다.또 하나님이 만든 역사에 대새 세속적 의문들을 줄기차게 재기한다. 결국엔 하나님은 귀찮은 듯 "거 참 질문 되게 많은 놈이네.말좀 자르지 마라" 라고 면박을 준다.두어차레 등장하는 하나님과 예수의 만남은 기독교에 대한 일반인들 가진 세속적인 질문을 예수의 입을 통해 들려준다. 예수의 똑소리나는 질문에 하나님이 전전긍긍하며 빠져나가기 급급한 모습이다. 주제 사라마구가 기독교의 신 하나님을 파악하는 방식은 그리스 신화의 한 신들과 같다. 예수가 왜 하나님이 직접 하시지 않고 나를 내려보내느냐고 물었을때 하나님은 신들간의 분쟁을 원하지 않는다는 정치적 발언을 한다.예수를 내려보낸 다는 것은 유대지방의 신에서 전 세계의 신으로 인정받겠다는 하나님의 세계패권주의적 포석이있는 것이다. 주제 사라마구는 이미 알려진 기독교의 역사를 미래를 궁금해하는 예수에게 알려준다. 12제자는 어떻게 죽게되고 그 이후 하나님보다 더 많이 불리게 될 아들 예수의 이름으로 순교하게될 성인들의 이름까지 장황하게 설명한다.

성서에서 가장 극적으로 보여지는 십자가판결과 형집행은 오히려 간단하게 처리된다. <패션오브 크라이스트>가 예수의 수난을 가학적으로 그리며 기독교인의 감정적인 단결을 불러일으켰던 것과는 정반대이다.부활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피에타>의 눈물떨어뜨리는 마리아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오히려 예수는 이렇게 말한다. "속았다.원래 이렇게 죽음으로 끝나게 운명지워진것을"  예수의 입에서 속았다라는 말이 나오다니. 단순히 하나님에서 속았다는 뜻만은 아닐 성 싶다.자신의 운명이란 것에 저항하는 주체로서의 인간 예수의 정체성을 포고하는 말처럼 들린다.

이번 크리스마스에서 교황의 메시지를 TV자막에서 봤다." 그리스도에게 고난받는 인류에게 평화를..." 사실 이건 좀 오타다.교황이 그리스도에게 고난받는 인류에게 평화를 기원했다.이런 내용인데 중간을 잘라버리니 다른 뜻 처럼 읽힌다. 근데 사실 이렇게 읽는 것도 재미있다.

개인적으로 개별 기독교인을 탓할 생각은 없다.(아니 사실 한국 기독교에 대해 할 말 많다만 여기선 아닐뿐이다.)  그리스도의 이름하에 쓰러진 영혼이 얼마나 많은가? 물론 예수는 또 뭔 잘못이 있겠는가? 자신들의 종교나 자신들의 종교해석이 유일하고 나머지는 다 이단(이것도 그리스도의 이름을 빌어서 지목된다) 이라는 인간들의 미력함일 뿐이지.

<사족>

교회 열심히 다니시는 분들은 읽지 마시길 바란다. 이분들은 대개 교회에서 배운것 외에 새로운 해석이나 소설적인 창작에 '신성모독'이란 단어를 내세워 거부하고 악마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으므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주제 사라마구에 대한 편견만 심어놓을 것 같다.대신 종교색이 없는 그의 <눈먼자들의 도시>를 권한다.

그나저나  동남아시아의 지진과 해일로 3만명이 죽었다. 다 기독교인들이 아니어서 그런 모진 고난을 겪게하신건가? 아니면 이유가 뭘까 ?  평소에는 성경에 따라 모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다 아는 선택받은 어린양처럼 행동하면서 막히면 "신의 뜻을 어찌 인간이 알겠냐?" 며 회피하는 그런 대답말고....다른것 없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