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위의 남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7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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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올라가 본 것이 언제인가? 가장 가까운 기억은 군대시절이다. 사단장 공관 뒤편 아카시아 나무에 전선 걸치러 올라갔다. 다리가 후들 후들 거렸다.혹시 내 발이 제대로 된 곳에 놓여있는지 계속 발위치를 확인 했던 기억이 난다. 밑에서 고참은 빨리 하라고 재촉하고 인사계는 "거기 말고 그 위에 가지 쪽으로.." 뭐 이러면서 염장을 질렀다. 조금 더 낭만적인 나무 탄 기억은 한참 거슬러 올라가야 된다.초등학교 시절 우리반이 담당했던 청소구역이 교문 옆 수목원이었다.10미터는 족히 넘어보이는 호도나무에 친구들과 함께 올라 갔다. 이유는 지금은 마트에서도 판다는 집게 벌레나 뭐 그런.... 남자 아이들이 좋아하는 뿔달린 벌레를 잡으로 올라갔었다.나는 앞서 올라가는 아이의 호기어림도 나몰라 하고 무서워했었던 기억이 난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 코지모는 나무 위에서 산다. 그가 나무 위로 주소지를 이동한 것은 귀족적인 구체제에 대한 저항이다. 귀족적 세계관의 관습과 허식에 대한 불만은 '거리두기'라는 반항의 양식을 만들어낸다. 그가 몸을 의탁한 곳은 '나무 위의 세상'이다. 나무라는 공간은 이중적인 의미를 가진다. 나무의 존재양식에 기인하는 이중성이다. 나무는 땅이라는 곳에 존재의 근원을 두고 있다.반면 나무가 아름드리 성장을 하게 되면 나무는 땅에 있으면서도 땅을 떠난 공간을 만들어낸다.대기와 땅의 점이지대가 나무와 숲이 할당받고 있는 공간이다. 땅에 바탕을 두면서도 객관적인 여유로 세상을 바라보는 공간으로 나무 위만큼 근사한 곳은 없을 성싶다.칼비노가 주인공 코지모를 옴브로사 숲속의 나무위로 올려보낸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땅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거리를 둔다" 는 코지모의 철학이 탄생하는 곳이다.주인공 코지모는 나무위에서도 땅의 문제에 지속적으로 관여한다.귀족임에도 그 특권을 주저없이 버린 관계로 농민들이나 숯장이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희대의 도둑과도 스스럼 없이 독서교류회를 만든다. 태어난 근원을 벗어나지 못하는 나무처럼 코지모 역시 가상의 공간인 옴브로사에 붙막이 하며 땅의 사람들과 함께 시대적 흐름을 함께  한다. 

칼비노가 환상동화 <나무위의 남작>에서 주인공 코지모에게 부여하는 캐릭터는 독특하다.우선 체제 반항적인 지사의 모습이 있다.평생을 그 신념을 지키기 위한 강인한 모습도 존재한다.또 좀 무모한 신념에 대해 신봉하는 사람들이 갖는 희극적인 자기강박의 모습도 코지모는 가지고 있다.코지모의 캐릭터는 자유로우면서도 민중지향적이다. 또 한편으로 계몽주의의 지식인의 모습을 지향한다. 끊이없는 독서와 편지를 통한 교류를 통해 그의 지적능력과 활동이 유럽인들 사이에 각인된다. 지성적이고 유머러스한 반면 연애문제에 있어서는 나이브한 모습을 보인다. 구세대 유럽의 퇴폐적 낭만주의에 대한 동경이 남아있다. 어린시절 헤어진 비올라에 대한 그의 맹목적인 애정은 촌스러울 정도이다. 시간이 흐른 후 여후작으로 돌아온 비올라의 독선적 사랑에 대한 코지모의 대응 역시 그 선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시간이 흐르고 인류의 지성이 발전해도 사랑문제만큼은 그 궤를 같이 하지 못하나 보다. 오히려 약간은 어설프고 맹목적인 사랑의 양식을 더 순수한 무엇으로 바라보는 마음이 코지모의 시대에도 칼비노의 시대에도 유효했나보다.  

코지모가 살던 시기는 유럽 역사의 대변혁기였다. 코지모는 그 시간들을 '거리두기'방식으로 이해하고 그가 속한 공간에서 그 땅의 사람들과 대응해간다.코지모처럼 조금만 떨어져서 보면 세상은 달리보인다.조금 떨어지기 위해서 어떤 이들은 권력이나 돈을 통해 더 높이 올라가서 그 목적을 이루려고 한다.그들이 올라간 곳에서 아래는 이미 보이지 않는다.전부 딛고 올라온 사람들을 위해 그들이 무언가 한다는 것은 악어의 눈물일 뿐이다. 그들 역시 그것을 알고 있기에 눈물 흘리지 않는 악어로 남고자 한다.일관성이란 측면에서는 정합적이다. 조금 떨어져서 본다는 것은 불교적으로 말하자면 '방하착' -아래로 내려놓는 것이다.코지모가 그의 귀족적 특권이나 엘리트의식을 내려놓고 세상과 존재를 대면하기 위해 나무위로 올라간 것 처럼. 분명 '내려놓기' 또는 '거리두기' 가 결코 쉬운일은 아니다. 조금만 더 위에서 보면 세상사의 많은 일들이 좀더 대범해 질 것임에도.....  

날씨가 차다. 나보다 서너배는 오래도록 세상을 지켜봐 온 감나무 위 올라가보고 싶다. 감이 주렁 주렁 달려있어도 좋을 것이다. 아래 세상에 대한 두려움없이 그 위에서 '오래도록 바라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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