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R 슈트라우스 : 살로메 (한글자막) - 박종호와 함께하는 유럽오페라하우스 3차 명연시리즈 ㅣ 박종호와 함께하는 유럽오페라하우스 명연시리즈 14
나디아 미카엘 (Nadja Michael) 외 / OPUS ARTE(오퍼스 아르떼)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마침 헤롯의 생일을 당하여 헤로디아의 딸이 연석 가운데서 춤을 추어 헤롯을 기쁘게 하니
헤롯이 맹세로 그에게 무엇이든지 달라는 대로 주겠다 허락하거늘
그가 제 어미의 시킴을 듣고 가로되 세레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담아 여기서 내게 주소서 하니" <마태복음 4:6-8>
오스카 와일드의 <살로메>는 세례 요한의 죽음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성경에는 '헤로디아의 딸'로만 기록되어 있을 뿐 '살로메'라는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다. 성경에 등장하는 '살로메'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 그를 따라갔던 세 명의 여인 중 하나이다. 여기서 말하는 주인공과는 동명 이인인 셈이다. 사람들은 신실한 기독교인 살로메가 아니라 후자의 광기 어린 '헤로디아의 딸' 살로메를 기억한다.
성경과 이 내용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도 있을 줄로 생각하고, 짧게 오래된 막장드라마의 줄거리를 적어 보자.
헤롯2세(헤로데)는 로마 제국에서 유대 땅에 임명된 왕이다.(그의 아버지 헤롯1세가 예수 탄생 당시 어린 아기들의 몰살령을 내린 사람이다.) 봉분왕이다. 그리고 그는 동생의 아내인 헤로디아와 결혼한다. 세례 요한(요하난)은 이를 비난한다. 헤롯이 결혼한 헤로디아에게는 살로메라는 매력적인 딸이 있다. 헤롯에게는 딸이자, 조카가 되는 셈이다. 햄릿의 삼촌 클라우디우스 왕의 원형 아닌가? "친척보단 조금 더 친하고,자식보단 조금 덜 친한" 세익스피어<햄릿>중에서. 헤롯은 살로메에게 들이댄다. 주위의 눈총에도 불구하고. 살로메는 막장 가족들과 노인네들과의 회삭이 즐겁지 않다. 우연히 세례 요한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에게 반한 것이다. (대개 가족사에 불만이 많은 회장님집 딸들이 신념과 야성을 겸비한 사람들에게 넘어간다.) 살로메는 요한에게 키스를 해달라고 요구하지만, 도덕의 현자 요한이 이를 받아들일리 없다. 공주님은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받는다. 그리고 사랑과 소유욕, 질투와 선망, 분노와 애욕이 마구 섞여 버린 미증유의 심리상태에 빠져든다. 그것도 모르는 헤롯은 여전히 껄떡거리다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해주고 만다.
이런 식이다.
"살로메...춤 한 번 만 춰줘. 섹쉬한 걸로다가. 나를 흥분 시켜준다면 이 나라의 반이든 뭐든...니가 원하는 거 다 줄 해줄께"
기회를 이용할 줄 아는 영악한 살로메 "좋아요. 한번 해드리지."
이제 오페라에서 가장 유명하며, 늘상 논란이 되기도 하는- 아리아가 아닌- 관현악곡이 등장한다.'일곱 베일의 춤' 실제로 오페라는 보러 오는 사람들이나 영상물로 이 작품을 보는 사람들도 모두 이 장면을 보기 위해 숨죽이며 막장 드라마를 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국지>의 '적벽대전'장면이며, <일리아드>의 아킬레우스와 헥토르 장면이다. <스타워즈>의 다스 베이더와 루크의 대결. 이탈리아 오페라로 말하자면'한방의 하이C'와도 같은 장면이다. (빈체로 빈체로..빈체...로...오....꽈꽝.) 수많은 연출가들이 오페라 관객들이 하나같이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는- 요거 어떻게 하나 보자는 식으로 노려보고 있을- 이 장면을 과거 선배 동료들 다르게 어떻게 요리할까를 두고 전전긍긍하고 있는 셈이다.
헤롯의 약속은 지켜진다. 매우 긴 살로메의 아리아."당신은 나에게 키스해 주지 않았지" 가 이어진다. 살로메의 광기에 놀라 버린 헤롯은 살로메의 죽음을 명한다.
<살로메>(비어즐리 작)
사람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오페라를 처음 접하는 사람이 바그너의 악극<반지>나 리하르트슈트라우스의 <살로메>, 바르톡의 <푸른 수염의 영주>같은 작품들을 택할 확률은 매우 낮다. 설사 있다 하다면, 매우 우연한 기회에, 특정한 음악적 환경 속에서만 이루어질 것이다. 자발적으로 오페라에 관심을 가진 대부분은 모차르트, 푸치니, 베르디를 먼저 만난 확률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오페라가 뭔가 하고 궁금해 하는 사람에게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를 권하는 짓은 순서가 아니다. 인연이 닿으면 만나겠지 하는 정도에서 남겨 두어야 한다.
언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장을 역임한 이강숙 선생이 그런 말을 했다. "17,8세기에 귀족사회에서 음악을 소비할 때는- 하이든,모차르트 등등- 조화로운 화음 가지고 표현이 가능한 것이 많았다. 하지만 19세기를 거쳐 20세기에 들어서는 시점에서도 과연 그런가? 대중속의 고독, 전쟁과 인간성의 파괴 뭐 이런 것들 어떻게 조화로운 화음들로 구성해낼 수 있을까? 불협화음,조성의 파괴 등이 표현의 영역을 확장하는 것이다. " 이강숙 선생의 말은 우리 시대는 우리 시대를 표현하는 음악적 노력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궁극적 요지였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1864-1949)의 시대는 그리 멀지 않다. 동시대라고 하긴 뭣하지만 최소한 현재에 영향을 미치는 전 세대라고는 할 만한다. 빈의 황금기였으며, 구 제국의 몰락과 두 번의 세계 대전이 있었던 시대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관현악이 뿜어내는 위용에는 파괴와 절망, 그리고 영광에 대한 노스탈이지와 그의 잔해가 묻어 있다. 그가 오스카 와일드의 <살로메>를 두고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은 음악을 필요로한다." 라고 했을 때, 그가 매료된 '살로메'의 주제는 에로스와 타노토노스의 항구적 불협화음이었다. 오페라<살로메>는 그렇게 파국적 주제를 음향학적으로도 구축해 낸다. 여기서 한가지 알아야 할 사실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쇤베르크와 신빈악파에 비해 온건한, 즉 음악적으로 보수주의자였다는 사실이다. 그가 만든 <살로메>에서 보여주는 음향학적 파국은 대단히 낭만적이고 퇴폐적이다. 이것은 새로운 설계를 위한 파괴와는 다르다. 구체제의 파국일 뿐이다. 도약과 단절의 진폭은 매우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그의 관현악 전반은 그리하여 음악의 통시적 변동 속에서 반정합을 통합적으로 조율하는 전통적 헤겔식의 바그너와 닮아 있을 뿐이다. 실제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바그너를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이 오페라 <살로메>에서도 보면 바그너식의 '라이트모티브', 일명 '유도동기'가 거의 전편에 사용된다. '유도동기'를 쉽게 말하자면, 극이 진행되면서 인물이나 상황이 등장할 때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멜로디이다. 만약 영화<해리포터>라면, 악당 볼트모어가 등장할 때는, 뭔가 음습한 음악이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것이다. 이 '라이트모티브'는 바그너가 본격적으로 사용한 장치인데, 실제로 바그너의 악극에는 다양한 종류의 모티브가 다양한 조성,화음,속도변화들 통해 쓰이고 있다. 오페라<살로메>에서는 쉽게 들을 수 있는 클라리넷 소리가 '살로메'다. 목관악기의 부유하는 듯한 멜로디는 불안을 조성하고 정서적 동요를 일으키는 데 적격이다. 곡이 시작하면 곧 바로 등장하기 때문에 크게 귀기울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오페라<살로메>의 2008년 런던코벤트가든 공연 실황은 동곡의 영상물로서 최고의 찬사를 받고 있다. 런던 오페라계의 이슈메이커인 데이빗 맥비커의 히트작인 셈이다. 무대의 배경은 1930-40년대 대저택의 지하 음식 창고로 설정했다. 의상사를 잘 알지 못하지만 영화에서 본 기억을 떠올려 본다면, 무대에 등장하는 헤롯의 군사들은 영국 군복을 입고 있다.(이 프로덕션이 영국에 있다는 걸 생각하면 더욱) 무대는 3층 구조이지만, 지하는 세례 요한의 감옥 공간으로 설정만 될 뿐 무대에 가시화되지는 않는다. 2층 역시 실제로 큰 비중을 차지 하지 않는다. 2층에서는 유대 제사장들과 헤롯,헤로디아가 만찬을 열고 있다는 설정 공간으로만 존재한다. 전체적으로 푸른 빛의 일관된 톤은 지하실 창고의 분위기와 적절하다. 영화에서 지하철같은 폐쇄공간에서 쓰이는 조명의 톤을 생각해본다면 쉽게 이해될 것같다. 색채 공간으로 3개의 층위를 구분하자면, 세례 요한의 공간은 죽음과 맞닿아 있는 검은 색의 공간이다.검은 구덩이로만 묘사된다. 그리고 본 무대인 지하층은 갈등이 빚어지는 서늘한 푸른 빛의 공간. 2층은 검고 붉은 계열로 구분된다. 무대는 단막극 형식을 띠고 있기 때문에 전체적 변화나 막에 따른 교체는 없다. 단 한 번 일곱개의 베일춤에서 상징적 이동장면을 연출한다.
: 코벤트 가든 로얄오페라 하우스, 오페라 <살로메>중에서
<살로메>는 전통적으로 외설성때문에 가십거리가 되곤 한 오페라다. '일곱개의 베일춤'의 전통적 해석방식은 춤을 추면서 옷을 한 개 씩 벗는 스트리퍼 살로메로 설정된다. 맥비커는 코벤트가든 프로덕션에서 상징적으로 에로틱한 장면만을 연출할 뿐이다. 공연 막이 오르면 지하창고에서 보이던 나체의 여인이나 멋진 뒷태를 가진 형집행자의 나체는 맥거핀에 가깝다. 일곱개의 춤에서 나디아 미카엘은 속옷정도까지만 노출하면 되는 수위에서 공연한다. 전혀 아쉬워 할 것도 없다. 나디아 미카엘은 비교적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연기력과 놀라운 집중도를 보여준다. 피칠갑을 한 채 요한의 머리통을 들고 마지막 아리아를 부르는 나디아는 작은 동작 하나 하나까지 관객을 집중시킨다. 죽은 요한과의 키스장면은 잠시 숨을 멎게끔 매력적인 연출이다. "이것은 피의 맛인가? 아니 사랑의 맛이다."라며 요한의 잘린 머리통을 부여잡는 나디아의 눈빛과 동작은 네크로필리아의 파국적 에로스를 보여준다. 물론 성량에서 약간의 중량감 부족이 주는 아쉬움은 남는다만 광기와 절망 사이를 오고가는 연기력으로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는다.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운 연기는 헤로디아를 맡은 미하엘 슐스터다. 시니컬한 태도의 일관성은 충분히 훌륭하나 공격적인 어택이 부족한면, 연출이 그 지점을 강조하고 싶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만, 개인적으로 그 지점이 아쉽다. 또한 마지막 명령이 집행되는 장면 역시 앞선 비장한 나디아의 클라이막스 이후 급박하게 정리한다. 개인적으로는 조금 더 사실적인 살해가 이루어졌어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앞서 잠시 이야기한 '일곱개의 베일춤'에 대한 연출이다. 곡은 이국적 춤곡에서 왈츠를 넘나든다. 당시 유럽인들이 가진 동양에 대한 오리엔탈리즘은 문화 전반에 걸쳐 반영되었으며 음악도 예외는 아니었다. 맥커비는 탈의라는 전통적인 방식을 거부하고 영상과 막의 이동을 통해 일곱베일을 벗는 장면을 상징적으로 연출한다. 무대 뒤 스크린을 통해 에로스적인 설정들이 전달된다. 전체적으로 보면 맥키비의 연출 장면을 단순히 옷을 벗으며 춤을 춘다는 시각적 쾌락 이상을 상징한다. 전통적 방식이 시각적 쾌락수준에 대한 욕망 정도로 머무는 것이라면 맥커비의 연출에는 복종과 순종이라는 성의 가학성/피학성의 쾌락이 은연중에 묻혀있다. 상징적으로 표현되었을 뿐 수위가 더 높은 것이다. 헤롯은 멍청히 음흉한 눈빛으로 소파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구를 충족 시키기 위해 살로메를 독촉하고,동의를 구하고, 패티시의 대상들을 제공한다. 살로메는 자신의 1차적 욕망를 위해 이에 수동적으로 움직이지만, 이 행위들은 음악적 진행과 섞이며 능동/수동의 구분이 모호한 상태에 이른다. 헤롯이 제공한 옷을 던지며 세면대에서 물을 뿌리는 행위는 그들의 상징적 교접이 성공적이었으며, 또한 마무리 되었음을 말한다. 그들 둘은 그리고 다시 대중들이 있는 공간으로 '흠흠...' 거리면서 나온다. 몇 개의 옷을 벗어 던지는 것보다 더 깊은 관계가 아닌가?
세간의 평가처럼 2008년 코벤트가든의 <살로메>는 맥커비의 상징적 연출과 탄탄한 연출 그리고 가수진들의 활약으로 매우 좋은 공연물로 평가받을 만하다. 만약 실제 극장에서 이 공연을 봤다면, 마지막 나디아 미하엘의 아리아가 끝나고 암전이 올 때 브라보를 외치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당분간 최고의 레퍼런스로 자리잡지 않을까 싶다.
여담삼아, 극중 등장하는 제사장 중에 동양인이 한 명 보인다. 비중이 큰 역은 아니지만 로얄오페라단의 지원을 받는 촉망받는 한국인 성악가 박지민씨다. 그에 관해 찾아봤는데 재미있는 이력을 갖고 있다. 매우 뒤늦게 성악공부를 했으며, SM기획에서 연습생도 해보았다고 한다. 서울대 성악과 사상 낙제점에 가까운 보기드문 B학점 소유자였다고 한다. 국내의 높은 진입 장벽으로 인해 오히려 국외에서 가능성을 인정받고 이후 국내 주목을 받게된 성악가인 셈이다. 이 공연을 녹화할 당시보다 현재 여기저기서 비중있는 역할을 많이 맡아 세계를 무대로 공연하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