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부터 나는 한국 정치의 개혁은 '정당구조 개편'에 있다고 생각했다. 이 말은 정치를 정당의 활동으로 규정하는 협의의 '정당 민주주의'와는 다른 말이다. 최소한 '정당 정치'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고 있고, 또한 '정당외' 정치- 흔히 참여 또는 직접행동-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강조하는 편에서 하는 말이다. 오히려 참여 정치나 직접 행동의 사후적 출구전략이나 조직화 동력으로 정당이 제 역할을 제대로 해 주길 바라는 편이다. 어쨋거나 현실적인 정치제도 하에서 '정당'의 존재는 무시할 수 없다.또한 정당 정치의 경계 바깥에 너무나도 많은 정치 영역이 존재한다. 그런면에서 이원적 전략이 필요하다. 하나는 정당구조의 내적 개혁과 정당외 정치의 일상화이다. 후자를 나는 '삶의 정치화'라고 말하고 싶다. 설령 정치에 관심 있는 사람들 모두가 정당인이 되거나 정당 정치에 깊이 관여할 수 있는게 아닌 상황에서는 '삶의 정치화'와 실천력이 근본적 힘이 되어야 한다. 

 

'정당구조의 개혁'이라는 것은 내게 대통령 누구로 바꾸는 문제보다 더 긴요하고 중요한 문제였다. 내 경우 조봉암의 '진보당' 이후 종적을 감춘 한국의 진보정당이 대의 민주주의 하에서 강력한 원내 교섭단체로 자리잡는 것을 보는게 1차적 바람이었다. 그래서 과거 민주노동당이 선전했을 때 큰 박수를 보냈으며, 약간의 희망을 보기도 했다. 그와 같은 심정으로 민노당 분당 과정에서 마지막 통합논의의 기대를 모으기도 했다. 당시 탈당을 주도했던 사람들이 다시 '통합진보당'이라는 이름으로 뭉쳤을 때, 떨떠름한 마음이 있긴 했지만 그 변화를 시대적 과제에 유연하게 대처하려는 자세로 읽었다. 이유는 여기서도 하나다. 진보정당이 제1야당이 되는 신나는 상황을 보고 싶어서다. 사실 진보정당이 원내 제 1야당이 된다는 그림에는, 현존하는 수구세력들이 모두 프랑스 극우정당처럼 취급받는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사회 전체가 현재의 좌표에서 좌클릭 되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되기 위해 어느 위치에서, 어느 목표를 가지고 싸우느냐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모든 싸움이 같은 고지에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모든 투쟁이 같은 단위에서 벌어지는 것도 아니다. 소통이 만사라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서 모든게 해결될 거라는 낙관적 믿음도 거짓이라고 생각한다. 알다시피 나는 어느 정도는 '적대주의' (이건 정치학적 용어지만antagonism 적대라는 말이 가끔 배타적으로,또는 어떤 이에게 '죽창'같은 걸 떠올리게 해서 다른 번역어를 쓰고 싶다.)에 정치적 진실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상투적인 절충어로 '어젠가는 만나겠지'라는 말로 자리를 뜨는 행위가대화를 정리하고 싶은 에티켓적인 용어 외엔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잠시 부딪힐 수는 있지만 만나야 할 곳이 다른데 같은 곳에서 만날리는 만무하다.

 

사실 오래 전 부터 많은 이들이 다음번 대선은 '박정희-노무현'의 싸움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결정적인 계기는  노무현의 비극적 죽음이었다. 장례식 이후 수많은 '작은 노무현'과 그의 추종자들을 볼 때 확신은 명확해졌다. 민주통합당에 속속히 다시 등장하고 있는 사람들의 면면을 봐도 그렇다. 오랜만에 강금실도 보이더군. 제다이의 귀환이 아니라 열린우리당의 귀환이다. 그리고 이 흐름은 애석하지만, 진보정당이 결코 피해 갈 수 없다. MB가 대통령이 당선 되던 날 내가 했던 말은 " 다음 번 대선은 어느 때보다 비판적 지지가 유령이 아니라 실체가 되겠군." 이었다. 그리고 여론은 이제 '비판적지지'라는 도덕론적 딜레마를 해결해주는 방향으로 강제되고 있다. 진보 정당들이 열세에 열세를 거듭하며, 또 여론의 추이를 읽어내는데 숙의를 하며, 진보정당의 구성원들에게 '비판적 지지'라는 인지부조화 상황을 겪지 않게 끔 야당통합 후보론 쪽으로 움직이게 만들었다.  최소한 진보통합당은 대선 후보를 내도 당선이 안된다는 것을 아주 오래 전 부터 알고 있었다. 오로지 정당의 명분과 정당의 지속적 정체성 문제가 대선후보를 내는 가장 큰 이유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들은 접으시요." 라고 말하는 것은 진정 폭력적이다. 점잖은 모습을 하고 합리적이라고 불리우는 이유를 대며 다른 정치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을 자기의 정치적 경계 안에 복속시키려는 태도다. 어쨋거나 이번 대선에서는 진보통합당이 어떤 길을 갈지는 아직 미확정인 상태지만, 최소한 단일화 흐름을 가져갈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현재 분위기가 좋다가 느끼는 민주통합당이 "그까잇거 없어도" 라고 버틸 수도 있다. 최소한 민주통합당 내부에 야권단일화파가 강세를 보이곤 있지만, 좀 더 지켜봐야 할 일이다. 어쨋거나 대중의 흐름이 '박정희-노무현'으로 틀지워진 상황에서 진보통합당 지도부는 실리를 택하여 당의 앞길을 여는 방향으로 선택을 했다. 쉽게 말해 '줄껀 주고 받을 껀 받자' 라는 것이다. 줄것은 '대권'이다. 그리고 '받을 것'은 원내 의석이다. 이 방향은 내가 앞서 말한 진보정당의 원내 교섭력 강화를 통한 정당 구조 개편과 같은 방향이다. 현실적으로 이 실천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방향성에는 동의 한다. '주는 것'은 당장 할 문제도 아니고, 이리 저리 카드를 돌리고 눈치를 보다가 천천히 해주어도 되는 문제다. 당장 '받을 것'의 문제가 있는데,4월 총선이다. 현행 선거구제도를 개편하는 것은 급선무가 된 것이다. 진보정당은 오랫동안 독일식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주장해왔다. 지역구로 반정도 뽑고, 나머지는 당에다 투표해서 그 지지율로 비례대표를 뽑는 것이다.그런데 최근에 이에 대한 한나라-민주당의 '석패율제도'가 관심을 받고 있다. 민주당이 이랫다 저랫다 갈팡질팡하면서 통합진보당과 여론의 눈치를 보고 있는 상황이다. 석패율제도는 쉽게 말하면 후보가 지역구와 비례대표에 동시 등록해서 투표결과 당선자와 차이가 가장 근접했던 낙선자를 비례 후보로 구제하는 것이다. 통합진보당과 시민단체들은 강경반대 분위기다. 민주통합당 내에서는 '조건부 찬성론'등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한 논의를 따로 정리할 생각은 없다. 궁금하면 찾아보면 될 것이니까...한가지 재미있는 점은 정치적 관심이 높기로 유명한 알라딘에서도 석패율제도란 것에 대한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정말 미안한 말이긴 한데, 10개의 정치적 글들 중에 2-3개 정도 빼고 나면 지루한 동어반복에 자기 분노의 배설이다. 내가 가장 읽지 않는 글이지만, 알라딘에서는 가장 추천을 많이 받는 글이다.(안심해도 괜찮다. 당신은 2-3개의 글을 쓴 사람이다.)

 

오히려 이상한 것은 정치적 논의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도, 시간 되면 물러갈 반MB에 목청 돋구고 있는 사람들이다. 대개 이런 부류는 이런 흐름을 따른다. '친노->놈현새끼->영원한 우리의 대통령 노무현'  노란 노제에 눈물을 떨구고, 일종의 대속이 이루어진 다음부터 '노무현을 넘는다'는 문제는 급격히 어젠더에서 멀어졌다. 김어준은 그의 책에서 당당히 문재인을 지지하면서-나도 공무원 문재인을 좋아한다만, 자연인으로서 그를 좋아할 지는 의문이다. 그는 경상도 특유의 딱딱함이 있다. 최소한 자연인으로서는 노무현같이 비권위적인 사람이 친근하고 좋다- 노무현을 넘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당당히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바람이자 지지자의 바람일 뿐이다. 과연 문재인이 노무현을 넘을 수 있을까는 아무러 가치증명도 되지 않았다. 그의 원칙에 대한 딱딱함이 권력의 원심력을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만, 노무현의 반복이 될 가능성 역시 크다. 그래도 만족할 지도 모른다. MB에 시달린 사람들은 이제 꿈도 작아져, 노무현의 반복이 어디냐고 말한다. 한미FTA를 반대할 때 내가 우석훈의 책리뷰의 제목으로 쓴 것이 'YA BASTA'였다. 부산말로 하면"제발 쫌"이다. 당시 나는 노무현 대통령님께 송구스럽게도(?) 그 말을 했고-아,그의 진정성을 아직도 모르는 나, 그리고 진정성이 공인인 대통령을 평가하는 기준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나는 악마의 후예인가 보다-아직도 그 말을 할 수 있으며, 날릴 곳도 있는 셈이다. MB가 이 시대에 가져다준 가장 나쁜 현상이 나는 이거라고 생각한다. '당신 수준 만 아니라면...' 이라는 것 말이다. 여기에 보수나 진보가 다 같은 이를 꼽고 있다. 다앙한 이상과 정치적 실천은 캠퍼스 안으로, 몇 몇 공동체 속에서나 이루어지고 있다. 도대체 'MB와 노무현'을 제외하고 머리 속에 남아 있는 정치적 이상과 희망의 개념들은 지금 어느 구천을 떠돌고 있을까?   

 

아...요즘 관심은 '석폐율제'와 '독일식 정당명부제'가 아니라요? 맞다.맞다. 요즘 이슈는 '석궁'이다. 이래 저래 관련기사들을 보고 있는데 "제발 쫌"이라고 내뱉고 싶은 사람은 미안하게도 입빨 '진중권'이 아니다. 진중권은 괜히 안해도 되는 말을 해서 구설에 오르는데, 그건 그의 성품이기 때문에 며느리도 못 말릴꺼다.  정말 웃기는 건 '진중권'이 아니라 '석궁'에 꼽혀서 '정의의 사도'가 되신 분들이다. 뭐 하나 터지면 갑자기 '정의의 십자군 투사'로 돌변하는 이들이 정말 싫다. 조금 더 열린 가능성 또는 의문과 의심의 가능성을 남겨두고 사안을 대해도 되는데, 하나 꼽히면 거기서 끝장이다.'석궁교수=법원비판" 이므로 진보적이다. 이런 프레임에 문제를 제기한다거나, 또는 하나씩 따져보자거나, 이렇게 진행되면 이건 완전히 ' 상식적으로 대한민국 법원이 제대로냐? 그걸 옹호하는거냐? 너는 좌파 변절자야' 라는 식의 흑백 논리로 문제를 발전시켜 나간다는 것이다. 물론 진중권이 트위터에서 그의 인격적 약점을 드러내고, 그때문에  격앙된 사람들도 있겠지만 말이다. 하여간 훅같다 훅온다. 가상적인 상황인데, 만약  K 교수가  여자 조교랑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 하면...앞의 지지 논리따위는 다 없어지고...이 개쉬가 된다. 명백히 앞의 사건과 뒤의 사안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인데도 훅 가고 훅 온다.  극단적 가상인데 늘 사안을 대하는 태도가 이런 식이라는 걸, 그리고 이런 식으로 사안을 대하는 태도에 아주 신물이 난다는 걸 말하고 싶어서 한 이야기다. 오해 없으시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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