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본  마샬 버먼의 <맑스주의의 향연>중 밑줄 쳐진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거리의 신호들을 읽지 못하는 한 그 잘난 <자본>을 읽어 봤자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이 문장을 옮기다 보니 이 말이 자신의 정치적 정당성을 지지해 주는 흐뭇한 의미로 받아들이는,아전인수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현재 정치적 어젠더는 선거에 집중되어 있다. 2012년이 선거의 계절이다. 지난 글로벌 호구 정권의 파행이 불러온 퇴행에 신물이 난 사람들이 선거를 통한 변화열망이 무엇보다 높다는 것도 사실이다. 최소한 제도적 정치를 부정하지 않는다면, 투표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는 변화의 폭과 깊이를 깊고 넓게 만드는 것은 중요한 진보적 과제 중에 하나이다. 그래서 '거리의 신호'를 읽는데 진보는 좀 더 예민해야 하고 능동적이어야 한다.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 세력이 만든 프레임에 갖혀서도 결코 안되지만 개혁적 진보라고 프레임도 거리를 두고 비판적으로 되새겨야 한다. '거리의 신호' 역시 거리를 두고 볼 줄 알아야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나꼼수'현상을 긍정한다. 또한 그들이 칭송받는 것 만큼 탄압에도 노출되어 있다는 것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 하지만 비판은 현재적이어야 현재적 실천성을 갖는다. '그 땐 그런 면도 있었지'는 안타깝게도 회고적 성찰일 뿐 현재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한다. 삶의 충만성을 이루려면 무리에 이끌가면서도, 따라가면서도, 이 생각을 놓치 않아야 한다.  

   

 

나는 아주 오랜 시간 비판적 독서가이길 원했다. 따로 제대로된 학문을 못한 탓이다. '오빠' 이외에 모든 종류의 '-빠'에도 거리를 두었다. 지금도 그렇다.  '열공하는 좌파'도 못되고,'나는 좌파다'라고 당당하게 선언하지도 못하며, 그저 '좌안파'가 되어 왼쪽 강둑에서 기웃거리고 있을 뿐이다. 과거 같으면 이런 태도를 '부르주아적 자유주의'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한 '분파주의'라고 비판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이런 말이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다. 애석하게도 이런 비판보다는 오히려 '그게 당연한거 아니야?' 그게 좋은거야' 라고 품어주는 사람들이 더 많다. 매우 고마운 일이고 힘이 되는 일이다. 하지만 솔직히 뭔가 석연치 않다. 빗방울 같은 다원주의는 개인주의화,또는 개인의 원자화라는 경로를 통해 결국 단절을 강화한다. 마치 많은 것을 나누는 듯 하고 인정하는 듯 하지만 결코 자기를 파괴하거나 자기를 넘어서려 하지 않는다. 또한 자기를 핍진 시키지도 않는다. 방대한 열림이 사실은 방대한 세계와의 단절이며 혁혁한 자기보호의 굴레라는 역설적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얄팍한 지식으로 말해본다면 이 공간은 여러 측면에서 '진화적 안정' 상태이다. 그리하여, 서로 칭찬하고 격려하는 위로의 감성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정치적 이유로 사리진 사람도 있고, 흔한 말로 재미없어서 사라져 버린 사람도 있다. 인식을 뒤틀어 버리는 다크 커피같은 질문은 제공되지 않으며, 에스프레소의 거품 위로 진보라는 한 두 스푼의 설탕이 입맛을 돋게 한다. 

 

그러나 이것이 현실이다. 과거 소규모 마을 같은 알라딘은 이제 사라졌다. 별로 아쉽진 않다. 세상이 그렇게 가는 것이다.   

 

한 해도 지났는데 몇 몇 분께 안부를 건내려 했다. 다들 여기 저기 가버려서 찾기도 쉽지 않다. 바람구두나 파란여우님도 사이트 들어가서 다시 경향 사이트로 찾아 들어가야 한다. 내가 매우 좋아했던 메아쿨파님은 아예 사라졌다. 그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사라져 버려서 인사조차 남기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나는 멀리서 인사를 건넨다. 오래 전 친구들이나 또 나를 지켜봐준 분들께 말이다. (별 상관 없겠지만, 글로 세계와 인간을 배운 듣보잡은 제외다. 올해는 꼭 마당 쓸어라.거기가 로두스다.)

 

 "모두들 건강하시구요. 지금까지 그러셨던 것 처럼, 담담하게, 의연하게,뚜벅 뚜벅 임진년 한 해를 보내세요. 소리없이 오래 가야 하는 것이 배터리만은 아닙니다."

 

 

  민들레 뿌리 (도종환)

날이 가물수록 민들레는 뿌리를 깊이 내린다
때가 되면 햇살 가득 넘치고 빗물 넉넉해
꽃 피고 열매 맺는 일 순탄하기만 한 삶도 많지만
사는 일 누구에게나 그리 만만치 않아
어느해엔 늦도록 추위가 물러가지 않거나
가뭄이 깊어 튼실한 꽃은 커녕
몸을 지키기 어려운 때도 있다
눈치빠른 이들은 들판을 떠나고
남아 있는 것들도 삶의 반경 절반으로 줄이며
떨어져나가는 제 살과 이파리들
어쩌지 못하고 바라보아야 할 때도 있다
겉보기엔 많이 빈약해지고 초췌하여 지쳐 있는 듯하지만
그럴수록 민들레는 뿌리를 깊이 내린다
남들은 제 꽃이 어떤 모양 어떤 빛깔로 비칠까 걱정할 때
곁뿌리 다 데리고 원뿌리를 곧게 곧게 아래로 내린다
꽃 피기 어려운 때일수록 두 배 세 배 깊어져간다
더욱 말없이 더욱 진지하게 낮은 곳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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