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도 되고 하니 JAZZ 한번 들어보는 것도...>

클리포드 브라운은 26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트럼펫 연주자였습니다. 따뜻한 음색을 갖고 있으면서도 파워블로잉도 선보여주었지요.후에 등장하는 많은 하드밥 트럼페터들에게 교본이 될만한 음악인 이었습니다.그의 음반중에 가장 대중적이며 현악반주가 달려 가을에 더 듣기 좋은 음반이 옆에 있는 겁니다.

아래 글은 하루키의 <재즈에세이>중에서 클리포드편을 옮겨왔습니다.             

    Clifford Brown

 
 
  그가 생전에 남긴 레코드로 판단하는 한, 클리포드 브라운만큼 음악적으로 밀도 높은 연주를 하는 재즈 연주가는 달리 없을 것이라고 늘 생각한다. 어떤 앨범을 들어도 실로 질이 높고, 뜨겁고 정서적이고 그리고 가히 혁신적이다. 레코딩을 한 시기는 전부 합쳐야 불과 네 해밖에 되지 않지만, 브라운은 그 사이에 눈에 띠는 모든 기회를 포착하여 몸을 깍아내듯이 한껏 불어제쳤고, 한 점의 좌절도 주저도 없이 그야말로 절정에서 교통사고로 죽었다. 마약에도 전혀 손을 대지 않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희귀한 존재였던 클리포드 브라운이 오히려 그 누구보다 빨리 이 세상을 떠났으니 실로 생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딱히 생이 서두른 것도 아닐텐테, 어떤 유의 생은 그 시작부터 생의 길이를 견디지 못하도록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의 앨범은 "Study in Brown"이다. 나는 학창 시절에 샀던 국산판을 지금까지 소중하게 듣고 있는데, 몇 년 전에 보스톤의 중고 레코드 가게에서 엠아시의 오리지널 판을 3달러 99센트에 샀다. 야, 정말 기뻤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싼값에 팔고 있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지만 가격보다 더 기뻤던 것은 이 레코드의 음질이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훌륭했다는 점이다. 음질이 시원치 않은 국산판조차 감탄해가며 들었는데, 새로 구입한 오리지널 판을 듣고 나는 지금까지 눈앞을 가리고 있던 베일이 싹 걷히는 듯한 신선한 경악감을 느꼈던 것이다. 클리포드 브라운이 두 걸음 정도 앞으로 나와 연주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뭐 그렇다고 내가 오리지널판 지상주의자는 아니지만, 가끔 그런 일이 있는 것만은 분명한 것이다.
  아무튼 클리포드 브라운의 음악에는 재즈라는 음악 형식이 지닌 모든 훌륭한 면이 남김없이 담겨 있다. 훌륭하지 않은 면은 (아마도) 거의 파고들 여지가 없는 것 같다. 이는 실로 기적이랄 수 있는 완성도이다. 이 점은 거의 모든 재즈 팬이 인정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나는 클리포드 브라운의 음악에 탐닉하는 사람을 한번도 만난 적이 없다. 그리고 솔직하게 털어놓으면, 나 자신조차 그의 음악에 탐닉하지 못하고 있다. 전면적인 경의를 표할 수는 있다. 그러나 감정적으로는 몰입할 수 없다. 어째서일까? 아마도 우리들이 그의 음악에서 나약함과 과잉성과 망설임을, 또는 어쩔 수 없는 인간적 모순의 음영(陰影)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들은 어쩐 셈에서인지 좋고 말고에 상관없이 모든 사고력을 뛰어넘어, 무질서하고 파괴적인 나약함을 내포한 예술에 종종 매려되고 만다.
  물론 그것이 클리포드 브라운의 책임이랄 수는 없다. 어떻게 그렇게 말 할 수 있을까? 음악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그의 생에는 한눈을 팔 틈이 없었다. 죽음이 바로 등뒤에서 그의 목덜미에 싸늘한 입김을 내뿜고 있으니까. 클리포드 브라운의 음악이 안이한 탐닉을 넘어선 곳에 우뚝 서 있으니, 우리들은 그 앞에 조용히 고개 숙일 수밖에......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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