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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착해질 때
서정홍 지음 / 나라말 / 200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인연이란 늘 순간이다. 오늘 아침 강변을 걸으며 본 보라빛 작은 제비꽃... 경남 합천에 사는 농부 시인 서정홍을 먼 발치서 보았다. 아이의 유치원에서 마련한 아버지 교실에서였다. 문장의 첫 단어를 한 두번 더듬는 그의 어투와 58년 개띠의 서리 맞은 은빛 머리칼이 생생하다. 리뷰는 결국 그 소소한 인연이 만든 것이다.
몸살 기운이 채 가시지 않았지만 약속은 지켜야했다. 첫째 아이 예찬이는 유치원 교실에서 놀았다. 아내랑 둘째 재원이랑 맨 뒷자리 앉은뱅이 의자에 앉았다. 농부 시인 서정홍은 아버지들이 이렇게 많이 모인 자리는 머리털 나고 처음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의 강의는 예상했던 '바람직한 아버지의 상' 과는 다른, 주로 생태주의적 가치에 대한 것이었다. 때로는 과격한 말로 때로는 웃음 섞인 말로, 땅과 자연, 이웃과 가치로운 삶의 문제를 자신의 귀농 경험과 섞어서 이야기했다. 감동적이지는 않았다. 대단한 각성도 없었다.<녹색평론> 한권만 펼쳐봐도 다 알 수 있는 이야기, 머리로는 수 십번도 더 이해했던 이야기. 인간과 자연이 더불어 사는 삶....
말문이 트여 잠시도 쉬지 않는 둘째 재원이의 이야기를 듣다가 멀리서 온 농부의 이야기를 듣다가 하면서 두어시간이 지나갔다.
농부는 합천 가는 마지막 버스를 타야 한다며 일어섰다. 양복 입은 아버지들도 하나 둘 자리를 떳다. 유치원 교무실에는 나름 유명한 출판사에서 낸 산문집과 처음 들어보는 출판사에서 낸 그의 시집이 조신하게 놓여 있었다. 7000원,5000원의 꼬리표를 달고서. 책 좋아하는 사람의 기본적 습성은 종이 냄새를 맡으면 표지라도 한번 보거나 최소한 한번 쯤 열어보는 시늉이라도 한다는 것이다. 책이라는 것에 대한 예의 같은 것. 개인적 습성에 더하여, 마지막 버스 놓칠까 시계를 훔쳐보던 가난한 농부에 대한 예의까지 겹쳣다.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시집 <내가 가장 착해질 때>를 주머니에 넣고 돌아왔다.
아이들을 재웠다. 새로 들여온 시집을 아무데나 펼쳤다.
'아...' 글자 읽는다는 짐승의 오만함이여... '선생님, 그 정도는 이미 다 아는 내용이라구요' 라는 식의 그 잘난 벽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한 편 두 편 세 편. 시 하나 하나가 가슴에 남는 스냅사진처럼, 또는 펑펑 울리지는 않지만 돌아와서 앉으면 눈물 고이게 하는 영화의 작은 장면들 같았다. 벤야민식의 '충격'인 셈이다. 충격이 반드시 몰고오는 내면의 붕괴 역시도. 미학적으로 거창한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미력한 나머지 책과 글 속에 깊이 허우적 거리고 있던 즈음이어서 강한 '환기'와도 같은 것이었다. 좋은 인연이란 이런 것이리라.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내가 가장 착해질 때>라는 시다.
이랑을 만들고/ 흙을 만지며/ 씨를 뿌릴 때/ 나는 저절로 착해진다.
나는 내가 착해지지 않는 이유를 알게 된다. 언제 흙을 만지며 씨를 뿌려본 적이 있었지? 지난해 마지못해 나가서 흐지부지하다가만 한살림 공동 텃밭? 집에 기르던 작은 물고기의 주검들만해도 그렇다. 처음에는 고운 티슈에 싸서 아들과 함께 아파트 화단에 묻어주었다.'좋은데로 가세요'라고 기도하면서. 그런데 십 여 마리 보내고 나서는 이제 휴지에 싸서 예찬이 모르게 종량제 봉투에 넣는다. 하지만 아이들도 눈치 채고 있을 것이다. 물고기의 죽음에는 관심을 보이지만 그 주검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 더 이상 묻지 않는다. 그런 내가 도대체 '생명'에 대해 뭘 읽고, 뭘 느끼고, 뭘 알고 있다는거지?
<이른 아침>
감자밭 일구느라/괭이질을 하는데/땅속에서 개구리 한 마리/툭 튀어나왔습니다//
날카로운 괭이 날에 한쪽 다리가 끊어진 채 나를 쳐다봅니다.//
하던 일 멈추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하루 내내/ 밥도 먹히지 않았습니다./물도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농부는 마을에서 청년 회장을 한다고 했다. 그 날도 부산까지 강의하러 가면 마을 어르신들이 걱정이 태산이라고 했다. 십여가구 사는 산골에는 이웃이 119이고 응급대원이기 때문이란다. 지난 번에도 강의하러 멀리 간 사이 이웃의 나이 많은 어르신이 위급한 상황이 되서 아내 혼자 마산으로 창원으로 늦은 시간에 헤메었었다고. 농부는 자기에게 예수님과 부처님은 그 산골 마을에 사는 이웃집 할머니들이라고 했다. 평생을 가난과 시름 속에 살았고 온몸에 안아픈 구석이 없지만 또 해마다 봄이 되면 검정고무를 무릎에 대고 기어다니면서 씨를 뿌리는 사람들. 그의 시에는 그가 예수처럼 부처처럼 여기는 시골마을의 할머니들이 할아버지들이 많이 등장한다. '농사는 힙으로 짓는게 아니여 '라는 덕산 할아버지, 겨울 햇살 아래 낡은 포대를 기우는 인동할매, 큰 병이 스무가지나 된다고 겁주는 의사의 말에 찬조출연해준 서른가지의 병을 가지고도 일한다는 수동할매, '낮에 죽더라도 자식들 퇴근하고 나서 알려주라던' 혼자 앉아서 돌아가신 생비량 할머니, 무 열뿌리 훔쳐간 도둑이 누군지 알아도 모른척 해주는 단성 할머니. 다 예수고 부처인데 농부가 어찌 그들의 단잠을 방해할 수 있겠는가.
<완행버스 안에서>
안의 장날, 완행버스 안에서/ 고사리 취나물 들고 이고/ 숨 가쁘게 올라온 샘골 할머니와/나는 같은 자리에 앉았습니다.
할머니는 앉자마자/ 금세 코를 골았습니다./나물 냄새보다 더 진한/ 땀 냄새와 함께/헝클어진 머리가/내 어깨에 닿았습니다.
봄나물 뜯느라/ 해보다 먼저 일어나고/ 언덕으로 무덤 사이로/ 이리저리 헤메고 다녔을/ 할머니를 생각하면/ 내 어깨가 너무 작습니다.
할머니 단잠을 깨울까 봐/ 나는 숨조차 쉴 수 없습니다.
사랑? 연대? 글로 배운 사랑은 '접촉'을 두려워한다. 모든 혐오는 접촉에 대한 혐오라는 말을 내가 이해하는 바는 그렇다. 그럴싸한 변명을 둘러대더라고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나도 역시 '사랑'하지 않는다. 사랑한다면 만질 수 있다. 예수가 문둥병자를 치료한게 사랑이 아니라 예수가 그를 만지신게 사랑이다. 하지만 글로 배운 사랑은 만질 줄을 모른다. 흙을 만지지 않아서 그런것이다. 햇빛을 만지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 농부는 내게 계속 질책한다.
농부의 시집<내가 가장 착해질때>에는 그 외에도 가난 속에 반짝이던 아름다운 순간들, 또 아내와 가족에 대한 감사와 믿음을 일기투의 평범한 문체로 쓴 글들이 여러편 실려있다. 가난한 집에 들어와 애지중지 모았던 상품권을 훔쳐간걸 보다가 모두 도둑의 편이 되어가는 가족들. 외식하기 전에 아이들 밥을 먹이고 나가던 아내, 고열에 생사의 고비를 넘는 순간 통장에 모아놓은 3만 7천원을 양로원에 가져다 주라던 열살 무렵의 아들, 울며 불며 곡을 하다가도 언제그랫냐는 듯 향불과 조문객들 먹을거리를 챙기는 고모, 누가 버린 쌀을 가지고 강정을 만들어온 처제등등..
물론 가난한 날의 아름다운 추억과 살가운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안에는 뼈골빠지게 살아도 힘들기만한 농민들의 모습이, 웃음을 잃지 않으려 하지만 한편으로 씁슬해질 수 밖에 없는 장면들이 들어있다. 더 끌고 올라가면 생태문제나 농정 문제까지도 가지고 갈 수 있는 문제들이다. 하지만 이것은 시다. 농부의 말마따나 쉬운 시이다. 하고싶은 말은 많겠지만 농부는 그저 담담히 자신의 눈에 비친 바를 자기의 언어로 풀어낼 뿐이다. 강의 중에 몇차레에 걸쳐 농부는 자신의 직업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직업이라고 했다.
<농사일지2>
"바쁜 논밭일 다 제쳐 놓고,일당 오만 원 짜리 산성 보수 작업하러 간 우리 신랑, 오늘 품삯 받아 오면 얼마나 좋을까"
지을 사람 없어서 내버려둔 산밭 개간하여, 고추 모종 함께 심던 희연이 엄마가 뜬금없이 던진 그 말에, 나뭇가지에 앉아 놀던 새들은 그 마음 아는 듯 울어댄다.
그렇지, 그렇고 말고. 농촌 살림살이에 돈 오만 원이 뉘집 똥개 이름이 아니지, 그 돈이면 글자 배우고 싶다는 큰 딸 희연이 공책도 사 주고, 안의 장날 고등어라도 몇 마리 사서 고된 일에 지친 신랑 돌아오면 저녁 밥상 구워 올릴 텐데......
희연이 엄마 소박한 꿈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노랑나비 너울너울 춤을 추고
아득한 이야기들도 있지만 시집 <내가 가장 착해질때>가 아름다운 것은 '존재의 골다공증'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도시의 이름난 여류,남류 시인들, 비평가들과 그 친한 친구들이 남발해대는 뼈 숭숭 뚫린 시어들과는 굵기가 다르다. 마치 장기간 입원하고 나온 환자들 같은 시들이 칭송받는 시대가 아니던가? 존재의 심연을 헤메다 익사 직전 건져낸 시어들.그것들 중에도 분명 소의 정수리를 때린 것들이 있을게다. 하지만 농부의 시는 다르다. 마치 니체의 춤을 추는 현자처럼 태양 아래 춤을 춘다. 고추밭 사이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정자 나무 아래 이름도 모르고 먹는 팥빙수를 먹는다. 참꽃을 보다가 괭이자루 던지고 하루 퍼질러 앉아 쉬기도 하며 말이다.
<모심는날>
환갑 진갑 다 지난 밀양아지매/모심다가 흙 묻은 손 씻지도 않고/ 논두렁 가에서 오줌을 눈다
오줌 누는 소리/ 어찌나 시원하게 '들리는지/ 함께 모심던 아지매들/한바탕 웃어 대는데/밀양아지매/당당하게 한마디 내뱉는다.
"이년들아, 너거는 똥구녕도 없나? 웃기는 와 웃어 쌓노. 오줌만큼 좋은 거름이 어디 있다꼬."
논 개구리 한 마리가/ 밀양 아지매 하얀 엉덩이를/ 가만히 바라보는 한낮
산골 마을 다랑논에서 부르는/ 정겨운 노랫소리/ 봄바람에 실려 어디론가 흘러가고....
나는 최근에 이렇게 아름답게 봄풍경을 묘사한 시를 보지 못했다. 봄바람처럼 시원하다.
이렇게 긴 리뷰를 쓰게 된 것도 결국 그 먼발치에서 본 인연때문이다. 그리고 이 정도의 수고로움은 좋은 시를 길러 주신 분에 대한 내 예의이다.
농부는 그의 시<시를 읽다가>에서 이렇게 말한다. '책방에서 사천 원 주고 산 오래된 시집 속에 배우고 깨칠 게 하도 많아 사만 원 주고 사도 아깝지 않겠구나 싶다. 그럴 때는, 문득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찾아온다. 그 마음 그대로 시인에게 전화를 걸어 시인이 쓴 짧은 시 한 편 읽어 드리고 싶다' 라고 말이다. (농부는 김남주 시인의 '옛 마을을 지나며'를 인용한다.)
내가 농부 시인에게 다시 돌려드리고 싶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