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이여, 오라 - 아룬다티 로이 정치평론
아룬다티 로이 지음, 박혜영 옮김 / 녹색평론사 / 200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TO : 아룬다티 로이 씨께

열대야가 이어지고 있는 날입니다. 태양의 따가운 독설이 낮에도 모자라 밤까지 이어집니다.늘 차가워보이는 도시마저 살바토레 달리의 그림 마냥 축축 늘어져 혀를 쭉 빼물었습니다.손부채질을 하며 양심수로 수십년 복역한 신영복 교수의 글을  떠올려 봅니다. 잠시 옮겨보겠습니다.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여름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때문입니다.이것은 옆사람을 단지 삼십칠도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이것은 옆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에서.

 며칠간 이어진 열대야속에서 로이씨의 <9월이여,오라>를 읽었습니다. 당신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주었다는 <작은 것들의 신>은 지금 이곳에서 구하기가 어렵더군요.소설가의 소설보다 에세이를 먼저 읽어서 왠지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만은 좋은 글은 언제나 살아나기 마련이니 조만간 당신의 소설도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 책에는 로이씨께서 쓴 정치평론과 각종 연설문들이 8편 들어 있더군요. 글 전체에서 반세계화 ,반미,반개발정책에 대한 당신의 쟁쟁한 소리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우선 당신이 직접 행동하고 있는 댐건설에 대한 당신의 우려가 인상적이었습니다. 화려한 경제 지표상의 성장이란 미명아래 사라지는 댐아래 사람들의 삶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인도가 세계에서 수력발전에 가장 의존하는 국가란 것도 당신의 글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또 그만큼 댐건설로 삶의 모든 터전을 잃어가는 인도 하층민이 많다는 것도 충격적이었습니다. 제 어린 시절,학교에서는 댐건설에 대한 긍적적인 것들만 배웠습니다.단 한번도 댐건설의 패해에 대해서는 언급된 적이 없었습니다. 나이들어 뉴스에서 수몰민들의 애상적인 모습이 그나마 그 분들의 삶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습니다. 명절 즈음해서 수몰민들이 저수지 한가운데로 배를 타고 나갑니다.그리고 수십길 물 아래 부옇게 남아 있는 마을의 모습을 찾아냅니다. '저기...저기가 우리집 장독대가 있는 곳인데...어..저기가 옛날에 우물자리....' 이렇게 말이죠. 가라앉은 추억은 단지 애상만이 아님에도 우리는 물 아래 있는 마을이란 신비함으로 그들의 삶을 접했습니다. 몇푼 안되는 보상금으로 나머지 수십년의 생활을 이어가야하는 그들의 삶은 뉴스가 끝나면 머리속에서도 지워집니다.

 당신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스위치를 켜서 불을 밝히고 냉방을 하고 목욕을 즐길 수 있도록 누군가가 먼 곳에서 어떤 희생을 치르고 잇는 지를 우리는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보지 못한다면 우리는  착취자이며 착취자인지도 모르고 우리 삶을 마감할 수 있습니다. 나눔,나눔 많이들 입으로 이야기하지만 사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타인들의 삶의 희생속에 또는 착취구조속에 무의식적으로 영입되어 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내 돈 벌어 내 맘대로 한다.'는 식의 사고가 얼마나 소아기적 가치관이고 유아병적인 자본주의 인식인지 다시금 생각합니다.

당신은 책의 많은 부분에서 미국 주도의 세계화와 아프칸,이라크 침공의 부당성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생명은 이윤이다.'라고 당신은 세계화의 본질을 선언합니다.즉 이윤이 되는 것이라면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먹어치우는 세계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시장은 보이지 않는 손과 보이지 않는 주먹'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합니다. 대다수의 정부들은 '보이지 않는 주먹'은 은폐합니다.그리고 그 주먹의 부당성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은 반시장주의자 커뮤니스트라고 비난합니다.가장 좋은 예는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대한민국일 겁니다. 대한민국은 냉전시대 미소의 대리전을 치루었던 곳입니다.그리고 여전히 미군이 주둔하며 주먹을 으르렁거리고 있는 곳입니다.해방이후 60년 가까이 미국을 우리의 구세주로 여기는 사람들이 나라 곳곳에 산재해 있습니다. 지난번 이라크 파병 논란이 빚어졌을때 우리의 안위와 미국의 안위를 동일선상에서 놓고 보는 현명한(?) 학자,정치인,언론계인사들이 수두룩했습니다.마치 미국의 에이전시같은 인상이었습니다. 미국정부는 그렇게 자신들의 제국을 확장시키기 위해 지역 엘리트들을 포섭해 놓았습니다. 미국 정부와 다국적 기업,그리고 주변국들의 엘리트들은 자신들의 상호 이익을 위해 대다수의 민중들을 삶은 안중에도 없습니다.당신도 지적했듯이 한통속이 된 언론을 통해 그럴싸한 현실주의와 냉소주의,패배주의만을 살포하고 있습니다.이들 언론은 파병에 반대하거나 경제정책의 분배를 강조하거나 또 미국의 부당성에 대해 지적하면 이념공세를 하거나 현실성이 없다고 몰아부칩니다.그들은 세계화와 반미,또는 평화주의자들을 철없는 이상주의자로 비춰지게 만듭니다. 당신도 몇번을 강조하였듯이 미국을 정점으로 다국적기업과 정부,미디어 기업이 한 덩어리라는 것을 대한민국의 사람들이 이해하길 바랍니다.

막막한 현실에서도 당신은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는다고 했습니다.유일하게 세계화 되어야 할 것은'저항의 세계화'라고 했습니다. 그 말은 최근에 들어본 세계화 구호중 가장 멋진 것이었습니다.즉 지역적인 반세계화 저항이 국제적인 연대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세계화의 흐름에 중대변화를 가져 올 만큼 커다란 저항의 결과물을 낳지는 못했습니다.하지만 당신이 싫어하는(?) 댐이 작은 구멍 하나에서 붕괴되듯이 작은 꽃들의 저항이 뭉치다 보면 그 속도와 방향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꿈꿔봅니다. 당신이 있는 인도와 제가 있는 한국은 같은 것보다는 다른 것이 더 많은 공간일 겁니다. 하지만 소수가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작은 행복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라는 것은 거기나 여기나 마찬가지 일겁니다. 거대한 제국의 공격에 저항하는 작은 몸부림이 점점 그 물리적 공간의 거리를 좁혀 큰 힘을 얻어내길 기대해봅니다.

제가 있는 이곳은 이제 태양이 중천으로 떠올랐습니다. 인도는 이제 막 아침 햇살이 뜨겠군요. 제가 아침에 본 바로 그 태양을 로이씨가 보고 계신 겁니다.같은 곳을 바라보는 세계의 모든 사람에게 햇빛이 골고루 나뉘어지길....

앞으로도 좋은글 기대합니다.

FROM  ;   동쪽 아시아 끝에 붙은 나라에서 씁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드무비 2004-07-30 19:32   좋아요 0 | URL
아룬다티 로이, 오늘 우연히 들른 서재 세 곳에서 이 이름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리뷰를 보니 책을 다 읽은 듯하네요.
너무 꼼꼼한 리뷰라...^^;;;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