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중요한 모니프다. '전선야곡' 을 전선의 낭만이 아니라 갑돌이의 아들, 철수의 아버지로 해석상 전환 시키면서 자연스럽게 '죽음=전쟁'에 반대하는 '보편적 휴머니즘'으로 승화시킨다. '전선야곡'을 부르는 화자에게 '전쟁터'는 '사지'이며, 정한수 떠놓고 기다리는 어머니가 있는 '고향'은 '생'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극단의 간절함이 있다. '어머니와 고향'으로 상징되는 생의 욕구는 '죽음'을 종용하는 권력과 전쟁에 대척점에 놓이게 된다. 이것은 남과 북 그리고 이념을 초월한다. '전선야곡'은 이 영화에서 '반전'의 주제를 매우 자연스럽게 극중에 융화시키며 또 관객에게 전이시킨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치이자 매체인 것이다
 

 영화는 각종 전쟁영화에서 다루어진 클리세들을 적당히 가지고 있다. <공동경비구역 JSA>도 있고 ,<웰컴투 동막골>, <태극기 휘날리며>도 있으며, <지옥의 묵시록>과 <메리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잠시 휴전한 1차 세계대전 이양기)와 <라이언일병구하기>까지...


 이 영화가 이런 저런 유사한 영화의 데자뷰를 불러일으키면서도 구조적 완결성을 놓치치 않은 것은 감독의 주제의식에 대한 끈을 끝까지 놓치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라는 것 말이다

변성기를 거치지 않은 이다윗이란 배우가 이 곡을 부를 때 이 영화가 다다를 지점이 예견된다. 그리고 이 곡은 일전을 앞두고 거대한 생의 합창으로,반전의 합창으로, 반권력의 합창으로 애록고지를 울린다. 이런 노래를 통해 메시지를 스크린 안과 밖으로 투사하는 방식은 매우 현명하고도 효과적이다 
 
다니엘 J 리버틴의 <호모 무지쿠스>란 책에 보면, 인류는 언어/음악과 공진화한다. 특히 음악은 언어와는 다른 소통 매체로 자리잡는다. 즉 음악은 "정직한 신호를 전달하는 체계, 소통자의 진정한 감정 상태와 동기를 들여다볼 수 있는 창문"이다. 저자는 이어서 감정을 나타내는 신호로 치자면 음악보다 나은게 없다고 말한다. 즉 영화에서 '전선야곡' 이 만드는 남과 북의 병사들의 감정체계는 생의 정직한 신호로 스크린 바깥까지 전이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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