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새벽 3시 30분. 눈을 떳다. 한 잔의 물을 위 속으로 떨어뜨렸다. 컴퓨터 앞에 앉았다. 트위터로 한진중공업 소식이 타전된다. 이정희 의원이 병원에 실려갔다. 정동영 의원의 글도 보인다.  마음 속에 커다란 추 하나가  가라앉는다.  이 늦은 시간에 신발 끈을 묶는다면 이것도 하나의 과잉일게다. 실제 갈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토요일은 9시에 출근을 했다. 7-8월 매주 토요일 출근이 예상된다. 아침부터 하늘을 몇 번 씩 처다봤다. 구름을 봐도 십분 뒤의 날씨를 알 수 없었다. 물기만 잔뜩 머금고 있기만을 바랬다.장마라고 하루 종일 비가 내리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바깥에서 하는 일에 날씨는 가장 큰 복병이었다. 오전 내내 먹구름만 가득했다. 오전 일은 비교적 수월하게 처리했다.   

오후에는 외부 설치해서 일을 꾸려야 했다. 외주 장비 업체팀이 속속 도착했다. 그리고 몇 번을 물어봤다. "바깥에서 하실 겁니까?" "곧 비가 올지도 모르는데"  

점심 식사 전까지 몇 번씩 모여서 회의를 했다. 준비된 외부에서 진행할 것인가 작은 강당으로 들어갈 것인가. 최종 결정은 내가 해야만 했다. 

일단 준비된 대로 야외로 결정했다.  외주 업체팀들은 부랴 부랴 짐을 내리고 장비를 설치했다. 대략 1시간-1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예정된 시간을 1시간 앞두고 비가 슬슬 내리기 시작했다. 5분...10분....일하는 모든 스텝들이 내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스텝 중 하나가 오더니 " 00씨 결정해야 돼. 더 기다릴 껀지 아니면 다 접고 실내로 들어갈 껀지"  현장에 있는 30-40명의 성인 남자들이 군데 군데 천막 안으로 몸을 숨겼다. 몇 몇은 담배를 피우며 하늘 한번 쳐다보고 바닥의 빗방울을 바라봤다. 내 얼굴 한번 쳐다보는 이도 있었을 것이다. 더 늦출 수는 없었다.  

비는 거세졌다. 장비를 모두 뜯고 다시 세팅하는데 얼마쯤 걸릴지 물어봤다. 대략 1시간-1시간 30분. 

 결정해야 했다. 

 " 들어갑시다."  "미안해요.어쩔 수가 없네. 다들 이동 준비해주세요." 군데 군데서 한숨과 불평의 소리가 들려왔다. 

비는 직접 맞으면 아플 정도로 쏟아졌다. 

전기장비를 다루는 친구들은 비를 가릴 수 있는 것은 모두 장비에 뒤집어 씌웠다. 그리고 우의도 없이 2층 강당으로 짐을 옮기기 시작했다. 속옷까지 모두 젖었음에 틀림없다. 신발과 양말이 온전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실내로 들어가니 아무래도 갑갑할 수 밖에 없었다. 실내는 에어컨이 틀어져 있었다. 그러나 매우 더웠다. 그럭 저럭 일을 마쳤다. 돌아가는 길에 외주업체팀 중 오늘 가장 큰 고생을 한 친구 둘을 불렀다.  20대의 젊고 순박한 친구들이다. 뭐 해 줄 건 없고 지갑에서 10만원을 꺼내서 목욕하고 가라고 주머니에 꽂아 주었다. 두 친구 다 손사래를 쳤다."이러시면...괜찮습니다.다음에 맛있는거나 사주세요." 라고 느릿한 사투리로 말했다. "그건 그거구...너네들 지금 옷 다 젖어서 어디 찜질방이라고 갔다가 집에 들어가라.뇌물 주는 것도 아닌데 뭐." 라고 하고 주머니에 넣어주었다. "고맙습니다." 라는 말에 손인사 한번하고 돌아가는 차에 올랐다.  

 7시 넘어서 회사에  돌아올 수 있었다. 몇 몇이 밥이나 먹고 가자고 했다. 중국집에서 고추잡채, 탕수육, 짬뽕, 그리고 소주 시켜 놓고 저녁을 먹었다. 계속 비는 내리고 8시 30분쯤 되어서야 집에 들어왔다. 매우 매우 긴 하루였다. 

한진중공업 '희망버스'가 어찌되었나 궁금했다. 9시 k방송국의 뉴스를 틀었다. 20분 가까이 뉴스를 봤는데 관련 소식은 없었다.   

결국 새벽 3시에 일어나서 트위터로나 그 소식을 듣게 되었다. 호우주의보를  뚫고 내려와서 폭우 속에 앉았던 사람들. 공권력이 그들에게 준 선물은 색칠한 매운 물대포였다. 달리 할 말이 없다.    

 

영도에서 분노 속에 비 맞고 있을 사람들을 생각하며 그곳까지 이어지는 도시고속도로를 바라보았다. 듣고 있던 바흐에 정지 버튼을 눌렀다. 살짝 창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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