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아내는 매실을 담았다. 알이 작고 크기가 들쭉날쭉,그리고 좀 비싸지만 토종 매실을 고른다. 몇 kg을 사는 지 정확히 모르겠다. 양이 꽤 많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차이기 때문에 1년 먹을 분량을 만들어 놓는다. 올해는 아래층 사는 이웃 사촌집에서 5kg 청매실을 가져다 주어서 각 각 두 번을 담게 되었다. 유리병 속, 갈색 설탕 가루 사이로 작고 귀여운 매실들이 옹알거린다. 

재원이는 그 매실병을 보면 "매찔...매찔...차...아뜨.." 라고 하며 작은 두 손을 양볼에 갖다대는 시늉을 한다.  

 梅雨.  

일본에서는 매실이 익을 무렵인 6월부터 내리는 장맛비를 '매실비', 일본말로 '바이우'라고 한다.  고등학교 일어 시험에도 나왔던 단어다. 당시 일어 선생님께서 "이름은 예쁜데 비로 인해 생기는 수해같은 것들을 생각하면 아름다워서 섬뜩한 느낌도 받는다." 라는 이야기를 했던 것이 기억난다. 굽은 강을 쭉펴는 삽질을 하는 요즘,  장마가 어떤 영향을 주게 될런지...  

  

 최치원 선생의 <촉규화>란 시도 이 맘 때쯤 어울린다. 촉규화는 시골집 벽을 따라 늘어선 '접시꽃' 의 한자이름이다. 접시꽃이 피는 계절이다. 

寂寞荒田側[적막황전측]적막하고 황량한 밭 귀퉁이
繁花壓柔枝[번화압유지]탐스런 꽃송이에 약한 가지 휘었네
香經梅雨歇[향경매우헐]장마비 그쳐 향기 흩날리고
影帶麥風의[영대맥풍의]훈훈한 바람에 그림자 흔들리네
車馬誰見賞[거마수견상]수레 탄 사람 그 누가 보아줄까
蜂蝶徒相窺[봉접도상규]그저 벌 나비만 와서 엿볼 뿐
自慙生地賤[자참생지천]천한 땅에 태어난 것 스스로 부끄러워
堪恨人棄遺[감한인기유]소외당하는 한을 삼켜 견디네
 


  

출근길 장마의 시작을 알리는 안개비가 내렸다. 운전에 큰 장애를 주는 양은 아니었다. 번잡스럽게 와이퍼질을 하지 않았다. 작은 물방울들이 앞 유리창에 촘촘이 들어와 박혔다. 가벼운 몸들은 쉽게 서로의 체중을 의지하지 않으며 출근길 내내 함께 했다.  

리히터의 헨델 keyboard suite를 들으며 비를 머금고 있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낮게 드리운 회색빛 하늘은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다. 

 헨델. 고향인 독일보다 영국에서 국민음악가로 대접을 받았던 인물. 낭만적으로 채색된 고뇌하는 예술가상과는 달리 평생 부와 명예의 언저리에 있었다. 그렇다고 단순히 세속적인 성공에만 집착한 인물만은 아니었다. 이탈리아 오페라를 들여와 유럽에서 음악적 반향을 일으켰으며, 대규모 오라토리오 등을 통해 영국 음악의 개혁을 이루어내기도 했다. 매우 영특한 존재였다. 물론 현대에 와서는 심오한 강에 비유되는 바흐에 비해 저평가 되는 설움도 겪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헨델의 곡 중에서 '키보도 모음곡' (정확히는 하프시코드 모음곡이다.) 은 그다지 많이 알려진 곡은 아니다. 아무래도 바흐의 방대한 키보드 작품군들과의 비교때문이 아닌가 싶다. 바흐의 곡들에 비해 무언가 깊이가 얕아보이고 구조적으로 불안정해보이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하지만 또 한 곡 한 곡 듣다보면 한걸음 뒤로 밀려난 자의 애상 같은 것이 들린다.(물론 이건 청자의 심리적 편견이 만든 것이다.)

 

 

   

이 곡은 부분 녹음이 많다. 또한 원곡은 하프시코드곡이겠지만, 하프시코드나 클라브생등의 쟁정거림 보다는 피아노의 울림이 내게는 좋게 들린다. 그래서인지 바로크 시대 건반연주는 대개 피아노곡으로 가지고 있다. 설령 그것이 작곡가가 의도했던 곡의 원형과 다를 지라도 말이다.  

오늘 아침에 들었던 CD .1980년 7월 리히처의 녹음이다.

   

유투브에 있는 음원은 1979년 Tour festival-리히터의 EMI 녹음 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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