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여인 (구) 문지 스펙트럼 4
로베르트 무질 지음, 강명구 옮김 / 문학과지성사 / 199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얇다.그래서 금방 보려니 생각했다.하지만 왠걸.... 마지막 장을 덮는데 열흘도 넘게 걸렸다.책이 어려워서 그랬나? 사실 그건 아닌 듯하다.가끔 이 핑계 저 핑계가 책장 넘기는 속도를 줄일때가 있다.그럴땐 갑갑증이 발동한다.갑갑증이 발동한다고 뭐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다.일상의 번잡한 대소사를 처리하다 보니 잠시도 혼자 있을수 있는 절대시간이 부족했다.오로지 화장실에 갔을때만 자유로왔으니 화장실은 나의 도량이다.그나마 변비도 없는 건강한 상태로 그 시간도 길지 않았다.^^

로베르트 무질에겐 무지하게 미안한 일이지만 책을 너무 쪼개서 본 듯하다.안그래도 나이가 들며 단기기억 장애의 증상이 나오려는 즈음 '쪼개어 읽기'는 책의 감동을 느끼는데 치명적이다.볼때 마다 앞 페이지를 넘겨야만 하기 때문이다.물론 그것도 시간이 지나면 귀찮아지기 마련.알듯 말듯한 상황에서도 그냥 접혀있는 장부터 보고 말았다.그래서 책을 본 느낌은 책의 배경 만큼이나 희끄무리하다.마치 습기 가득한 자동차 앞유리창 같다.^^

로베르트 무질이란 작가가 유명한 사람이라는 걸 안건 남진우의 평론때문이다.남진우가 김영하의 <검은꽃> 서평에 인용한 무질의 <통카> 한 구절때문에 그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프루스트에 비견될 만한 작가라고 한다.푸....웃. 프루스트 안다.이름만.<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작가다.그것 말고 내가 프루스트에 대해 무얼안다는 말인가.그 소설이 유명한 무었이라하여 서점에서 찾아보았다.방대한 량에 질려서 1권도 꺼내보지 못했다.언젠가는 읽기되려나.....  프루스트 만큼 유명하다는데 비교대상도 잘 모르니 그의 진가를 알기는 아직 어려운 듯 하다.거기에 로베르트 무질의 책이 번역된 것도 그다지 많지 않다.독한 마음 먹고 오기로 달려들지 않는 한 무질과 얼마나 가까와 질 수있을지는 의문이다.

이 책<세 여인>은 초기 무질의 단편 세편이 수록되어있다. 소설의 배경은 전부 다 몽환적이다.그렇다고 반지의 제왕 시절은 아니다.과거나 현재에 있는 듯 하면서도 언제인지 알수 없는 시절이다.이 몽환적 배경은 소설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좌우한다.무미건조하게 서술되는 사건의 진행조차 비오느 듯 뿌연 환상을 벗어나지 못한다. 등장인물들 역시 구체성을 갖는 개인들이라 보긴 힘들다.전통적인 내러티브 측면에서 보자면 지루하기 짝이없다.앙겔로풀로스나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 같다.그렇게 연관 지어가다보니 소설의 배경 역시 그 감독들이 만들었던 미장센과 유사하다는 생각이든다.철학적이라고 ...물론 철학적이고 지루하다.

소설은 여성성에 대한 좀 진부한 담론을 답습한다. 첫 소설에 나오는 그라지아나 포르투갈에서온 그 여인그리고 백치미가 넘치는 통카까지 신비화된 여성의 이미지가 존재한다.그나마 상대적으로 외지인들에게 눈길을 흘리는 <그라지아>의 여인들이 좀 덜할 뿐이다.그래도 그들의 감정은 배제되어있고 관음만이 존재할 뿐이다.소설의 대상이자 소설의 구심점이 되고 있는 여인들은 감성과 자연이라는 상대적 이분법에 의해 묘사되어진다.남자들이 합리와 정복,보수적 합리성을 나타내는데 비해 여성은 창조와 상생을 상징한다.그런데 이러한 도식은 사실 지나치게 전통적이다. 언제부터 이러한 도식이 존재했을까? 근대학문은 원시공동체에서 여성이 갖는 다산과 생성의 이미지를 자연의 순화과 병치시켰다. 그러면서 사적인 축적이 이루어지는 투쟁과정에서 여성은 그러한 이미지로 배제되고 이상향의 근원으로 높은 곳에 자리잡는다.하지만 실제 생활 영역에서 여성의 이미지는 이와는 정 반대였을것이다. 굳이 여성이란 말로 정치사회화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여성성'이란 말로 대체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페르시아의 여인은 존재론적 불안과 타인에 대한 안정감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이의 욕망추구역시 흐르는 물이 땅으로 사라지듯 세상의 안정을 위해 녹아 없어진다. 목적론적인 세상에 대한 완충으로 여성성의 유연함에 기대는 것.이건 또 얼마나 진부한가.통카는 이를 더 극단적으로 형상화한다.여기 보이는 신비한 여인 통카는 이성과 합리의 이름으로는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다.지극히 순응적이고 탈이성적이다.북치고 장구치고 도랑치고 가재잡는 일은 남자의 몫일 뿐이다.통카에 대한 불신으로 그녀을 보낸 주인공은 통카의 진정성과 인간의 범주를 뛰어넘는 선의지에 베드로가 예수를 만나듯 눈이 번쩍뜨이는 계기를 갖게된다. 나는 이러한 지독히 관음적인 여성성에 대한 응시가 과연 항구적 변화의 길이 될는지 의문이다.신비주의적 관점이 주는 현실성에 대한 깨우침은 결국 순간의 감동내지는 작심삼일형의 해탈 아닐까 싶다.

로베르트 무질이 대단한 사람이라 내가 그의 속내를 다 읽어내기엔 내공이 부족하다.그의 단편집 하나만으로는 더욱 그렇다.그의 서술방식과 설정이 기존 형식과 차별성을 둔다는 것은 어느 정도 인정한다.하지만 내게 그것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