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터 벤야민과 메트로폴리스
그램 질로크 지음, 노명우 옮김 / 효형출판 / 2005년 3월
평점 :
품절


 "모든 도시는 아름답다"   <파사젠베르크> 

도시는 하나의 거대한 자궁이다. 도시는 욕망하고, 생산하며, 배출한다. 현대 대도시의 구성원들은 너무도 빨리 변하는 도시의 속도와 반복적 리듬에 몸을 싣는다. 모두들 도시의 합리성과 편리성 때문에 도시에 살긴 하지만 모두들 다른 곳을 꿈꾼다.  그곳은 도시가 아닌 곳이다. 대개 도시인들의 소망은 은퇴 후 전원에 작은 집을 짓고 텃밭 키우며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사는 것이다. 그렇데 그런 소박한 꿈마저도 반복적으로 재생산하는 곳이 도시다. 도시는 알고 있다. 실제 탈주의 달콤함을 누릴 수 있는 자는 매우 소수라는 것을 말이다. 벤야민의 지적대로 대도시는 '욕망과 꿈' 마저 기성품처럼 만들어 주고, 또 세련되게 배려해주는 판타스마고리아다.   

그램 질로크의 책 <발터 벤야민과 메트로폴리스>에서 우리는 세심한 눈을 가진 베테랑 산책자 발터 벤야민을 도우미 삼아 세기 초의 거대 도시들을 걷게된다. 단순히 도시의 외관을 보여주는 것은 그 안내자의 역할이 아니다.  노련한 도시의 안내자는 파스러진 낙엽같은 도시의 아케이드를 통과하며 그 근대성의 한 단면을 예리하게 보여준다. 이 책의 저자 그램 질로크는 흥미롭게도 벤야민의 작업에 일련의 일관성을 부여한다. 그는 벤야민 초기 저작부터 최후 저작과 도시와의 계를 마치 소개팅 나온 남녀처럼 일대일 대응관계로 연결시킨다. 벤야민의 생에서 중요하게 거론하는 도시는 '나폴리-베를린-모스크바-파리' 이다. 공교롭게도 이 도시들이 가르키는 지점은 지도상의 사방과 공명한다. 최종 목적지는 어디인가?  벤야민의 최후 대작이자 미완의 역작인 파리와 <파사젠베르크>(아케이드프로젝트)의이다.  

 <파사젠베르크>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유럽 최대의 도시, 아니 인류 문명의 최정예 도시였던 파리를 배경으로 한다. 그램 질로크는 '파사주 프로젝트'가 1927년부터 시작된 도시연구 계획의 연속성을 띤 프로젝트라고 공언한다. 즉 <사유이미지>를 출발점으로 하여 최종적으로 <파사젠베르크>까지 일련의 도시를 둘러싼 사유실험의 연작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각각 독립적 작품들이고 각기 어떤 연속성을 염두에 두고 씌여진 정확한 의미의 연작과는 거리가 멀다. 그램 질로크는 이를 좀 더 원경에서 바라보며 벤야민의 작업을 통해 관통하는 도시에 관련된 어떤 일관된 특징들을 사출하려는 것이다. 

그램 질로크는 벤야민의 도시 독해의 방법론을 몇 가지로 정리한다. 관상학,현상학,신화,역사,정치학, 그리고 텍스트이다. 먼저 벤야민은 사회적 총체의 축소판으로 도시를 읽는다. 일명 '도시 모나드'라고 할 수 있는데 벤야민이 수집가의 비유등을 통해서 들어낸 도시 단편을 통해 도시 전체의 특성을 이해하는 방식을 말한다. 벤야민은 이렇게 주변적인 것들을 말하게 함으로서 도시가 하나의 신화임을 폭로하는 방식을 취한다. 대도시가 판타스마고리아임을 밝히는 것이 벤야민의 궁극적인 목적이었다. 하지만 주의할 것이 하나 있다. 벤야민의 폭로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다. 벤야민 사상의 매력적인 점은 부정의 상태를 그대로 끌어 안는 곳에 있다. 벤야민이 '꿈 깨우기' 위한 자명종의 비유를 든다면 이는 곧 '꿈'이라는 상태의 전제마저 동시에 긍정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벤야민은 도시의 삶을 반복에 바탕을 둔 거대한 환등상이라고 햇다. 이것은 벤야민의 정치철학에도 그대로 연장된다. 벤야민이 보기에 흔히 등장하는 진보라는 것도 결국은 '반복동일성'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역사와 진보의 역사성에 빗금을 치는 것이다. 그는 파괴의 몰락의 지지자다. 결국 하나의 꿈이 무너지는 자리에서 자유로와진 이미지와 구상이 정치 투쟁을 통해 활성화된다고 보는 것이다. 그의 정치철학이 신학적이라는 이유는 여기서 유래한다. 물론 벤야민은 정치투쟁에서 프롤레타리아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 그는 "도시는 생존 투쟁과 계급 투쟁의 경기장이다." 라고 말했을 정도니까. 벤야민은 당시 정통파 마르크스주의자들과는 달리 주변부적 대상에게도 가능성을 읽어낸다. 물론 나치의 등장과 함께 군중에 대한 부정적 견해가 증대하긴 하지만 말이다.  

이 책 전반부에서는 나폴리, 모스크바, 베를린을 경유하며 도시라는 렌즈를 통해 바라본 역사,정치,미학 등에 대해 사유의 만화경을 펼치는 벤야민을 만날 수 있다. 그램 질로크는 각 도시와 관련된 벤야민의 저작 일부와 이에 대한 학자들의 주석을 분석하면서 벤야민의 철학을 이해하게끔 하는 일종의 유연한 홈을 파기 시작한다.나폴리는 수전 벅모스의 입장을 반영한다. 그녀는 "파사젠베르크의 기원은 파리가 아니라 19세기 이탈리아다.' 라고 했다. 도시에 대한 관심의 출발점이 나폴리였다는 것을 부각한것이다. 나폴리에서는 저자는 '다공성'(현상사이의 명확한 경계없음) 이라는 개념을 통해 도시의 혼미성과 그 속에서 방향 상실이 주는 철학적 아이디어를 계진한다. 간략하게 말하자면 대도시는 은유적으로 미로(혼미)이고 폐허(몰락)이며 극장(즉흥성과 연기)인 셈이다. 모스크바의 벤야민은 혁명 이후 러시아의 경험을 통해 현대 기술과 도시와의 관계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는다. 후에 등장하는 변증법적 이미지라는 개념 역시 러시아 영화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기때문이다. 하지만 벤야민은 모스크바에 양가적 감정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그램 질로크는 베를린의 기억을 벤야민의 자전적인 이야기와 현대성의 원사가 중첩된 것으로 보는데, 이는 수전 손택과 아도르노의 입장을 공평하게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벤야민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로 이를 언어로 직조해 내는 과정에 착수한 것이다. 그램 질로크는 이를 통해 벤야민이 망각된 꿈과 유토피아적 충돌을 회복하고 실현시키려고 했다고 평가한다. 

<발터벤야민과 메트로폴리스>는 이제 나폴리-모스크바-베를린을 거쳐 마지막 기착지인 파리에 도착한다. 흔히 <파사젠베르크>로 알려진 이 작품은 완결된 텍스트가 아니며 또한 어떤 일관된 체계를 가진 텍스트도 아니다. 하지만 벤야민은 이 작품을 두고 "나의 모든 투쟁과 이념들의 극장"이라고 말했다. 비극적 최후를 맞은 벤야민이 당시 주변 사람에게 넘겼다는 유실된 원고가 <파사젠베르크>의 미완성 부분이 아닐까 하는 추측은 그래서 사람들은 더 아쉽게 한다. 그램 질로크는 벤야민이 파리의 아케이드 연구를 통해 얻어낸 도시의 상품물신성, 근대성의 신화,판타스마고리아적 속성,반복성등을 중심으로 파리 관련 연구의 전반부를 마무리한다. 그리고 이어서 벤야민에 앞서 파리를 거닐었던 보들레르를 통해 즉 벤야민-보들레르의 인식론적 공통성을 중심으로 파리로 상징되는 현대 대도시의 특성들을 뽑아낸다. 보들레르를 경유한 벤야민은 알레고리로서의 도시 읽기, 새롭게 등장한 군중이라는 양가전 존재의 특성들을 살펴본다. 

이 책<발터 벤야민과 메트로폴리스>는 벤야민에 낯선 독자에게 커다란 지도를 제시한다. 이를 통해 벤야민이 도시연구를 통해 드러내고자 했던 문제 의식과 흐름들에 대해 간파할 수 있다.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도르노나 수잔 벅모스등의 연구자들의 벤야민에 대한 비판적 서술을 통해 간격을 유지하며 벤야민에 접근할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벤야민에 대한 전반적인 안내서로서, <파사젠베르크>읽기의 징검다리로서  괜찮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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