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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클리드의 창 - 기하학 이야기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지음, 전대호 옮김 / 까치 / 2002년 6월
평점 :
수학을 좋아했으나 그리 수학을 잘하지는 못했다. 상식적으로 통용되는 인과 법칙을 적용하면 이건 좀 어색한가? '좋아함'과 '잘함'이 인과적으로 연결된다는 것은 도대체 누구의 생각인가? 이건 낭설이다. 전자는 기호나 취향 또는 욕망일 수 있으며, 후자는 결과다. 굳이 결과가 아니더라도 '결과'라는 이름으로 반영된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이제는 그런 결과에 연연해 하지 않는 '좋아함'이 지복임을 알게 된다. 즐거운 일들은 언제나 어떤 과정 자체에 대한 만족이다. 결과는 부수적인 보상이지 지속적인 동력이 되진 못한다. 늘 상기 되어 있어 모종의 불안감 마저 느끼게 하는 -어떤 이는 이를 에너지가 충만한으로 표현한다만- 긴급 구호 봉사자는 '가슴이 시킨다' 라는 말로 '과정'이 주는 행복을 이야기한다. 가슴이 좋아해서 다시 수학을 즐길 수 있을까? ㅎㅎ 가끔 몇 몇 수학 기호들을 끄적여보기도 하지만, 수학을 놓은지 20년이 넘어가는 시점이다 보니 인수분해도 헷갈린다. 미적분은 말해 무엇하랴?
또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수학을 잘하지 못하기때문에' -하지만 현실은 '수학을 잘해야하기 때문에'-'수학을 좋아한다' 라는 생각을 어려서부터 의식적으로 내면화시킨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요즘은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대개 인문계 고등학교의 문과를 선택하는 학생들은 수학에 자신이 없어서 그런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내 경우는 좀 다르다. 나는 문과적 내용들이 좋아서 이걸 선택한 셈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문과생이었다. 잘 모르면서도 어려서 부터 나는 사회,역사,세계문화 같은 것들이 개미,,공룡,별,인체 같은 것 보다 좋았다.
어린 시절 수학을 좋아했던 그렇지 않았던, 수학은 최근에 관심을 가진 영역 중에 하나이다. 정작 수학적 계산보다는 철학적 측면에서의 수학이라는 것이 더 맞는 말일게다. 그 관심의 기원은 물리학 또는 이와 깊은 관계가 있는 우주론에 대한 호기심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수학도 들춰보게 되는 셈이다. 도랑치다가 가제 잡는 것 정도로 해두자. 수학에 대한 내 기억의 잔여가 그다지 많지 않고,또한 이 관심의 지속성 조차 의심스럽기 때문에 작금의 수학에 대한 이해정도에 대해 사실 큰 기대하지는 않는다. 오지랖 넓은 속류 교양인들이 취하는 일반적 특징 중에 하나로 취급한다. 아마 대략 교양 수준으로 됐다 싶을때면- 어디가서 나보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잘난 척 약간 뻥치고 나올 정도 된다면- 다음으로 버뮤다 삼각지나 크리켓의 역사와 경기 원리를 뒤쫓고 있을지도 모른다.(ㅋㅋㅋ) 하여간 나같은 얄팍한 교양 수준 독자는 출판사에는 미세먼지만큼 도움이 될 지언정 인류 발전엔 그닥 큰 영향력을 끼치긴 힘들것이다. 그나마 위안은 이 사실을 알고 즐기니 '즐겁지 아니한가' 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의 <유클리드의 창: 기하학 이야기>는 나같은 얄팍한 수준의 독자를 대상으로 쓴 인류 발전에 기여한 수학자와 물리학자들의 이야기이다. 앞서 말했듯이 내관심은 이들이 열어 놓은 인식론적 지평의 확장이다.( 수학적 증명은 내 범위를 넘어서고, 이 책의 저자도 따로 설명해 주지 않는다.) 결국 과학이 추상적 차원에서 인류에게 도움을 준다면 그것은 인식론의 확장 아닌가? 모르는 것을 알게 되는 것. 그리하여 자연을 구성하는 원리들을 이해하게 되는 것. 어차피 인수분해도 헷갈려 하는 내가 고난도 수학식을 이해할 수도, 그리고 이해하려고 노력할 리도 만무하다. 또한 그것이 어떤 발견이 연쇄적으로 몰고 올 과학사적 위대함의 규모도 내가 모두 파악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발견이 어떤 성질의 것인지, 그것이 어떤 뜻을 함의하고 있는지 조금 향유할 수는 있다. 비유클리계를 알게 되었을때 사람들은 인식론적인 충격을 받게 된다. 애인이 바람났다는 것을 알 때도 인식론적 충격이 만만치 않다. 나 이외의 다른 사람의 세상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니까. 물론 서너번 그런 경험을 하다보면 이젠 뭐 11차원도 이해하게 되는 법이다. 사는게 다 그렇지 뭐라고 하면서..ㅎㅎ 하여간 비유클리드는 오래된 토대를 흔들기 때문에 충격적이다. 이것은 인식의 세계를 굉장한 차원에서 전환시켜준다는 것이다. (또한 먹고사는 경험적 문제에서 점점 멀어지게도 만든다.ㅎㅎ) 중세 교회가 지동설에 대해 화형이란 방식으로 협박을 가한 것은 그들이 가진 신 중심의 인식론적 토대를 거침없이 흔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지난 100년 인간의 위대한 발견 중 하나가 된 것도 따지고 보면 휘어지며 수축하기도 하는 시공간에 대한 개념을 새롭게 도입시켰기 때문이다.이런 발견에는 항상 저항과 몰이해가 따르기 마련이다. 반대는 당대 사회에서 나오기도 하고, 또 전문가 집단에서 나오기도 한다. 때로는 천재라고 하는 사람들 조차 어떤 인식론적 가설에 대해 저항한다.(물론 나름대로 그 이론이 가진 문제점들을 고찰하기 때문이다.) 이 책 <유클리드의의 창>에도 그런 도전과 응전의 역사들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이미 눈치챗다시피 이 책은 기학학과 물리학의 역사에 대한 흥겨운 에세이다. 시기적으로 보면 고대 그리스 즉 BC 500 년대 부터 초끈이론,M-이론이 등장하는 1990년대까지 다룬다. 저자는 이 장구한(?) 역사에서 기하학 혁명을 불러일으킨 다섯명의 주인공을 불러 세운다. 유클리드, 데카르트, 가우스, 아인슈타인, 위튼이다. 하지만 이 다섯명의 간략한 약사로 책이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들은 저자가 이 책을 서술해가기 위한 거대한 다섯 봉우리일 뿐이다. 다섯명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한 이야기가 오고 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이 위대한 업적을 이루기 위해 필요했던 전후 학자들의 연구와 관계들, 그리고 이것이 어떻게 다음 작업으로 이어졌는지까지 설명하는 것이다. 피타고라스 무리도 나오고 알렉산드리아의 히파티아도 등장한다. 리만이나 프레게도 등장하고, 힐베르트, 마이켈-몰리, 로렌츠 등도 등장한다. 가깝게는 '으으으' 하는 스티브 호킹도 나온다. 결국 앞서 말한 기하학 혁명의 다섯 주역들만의 독립된 선분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 선분의 최고점을 잇는 연속선의 궤적을 따라 이 책은 서술 되어 있다. 이 곡선은 좌표 상에서 우상승곡선으로 향하고 그 끝은 막혀있지 않다. 아마 이 책에서 저자가 어떤 단절을 상정한 곳이 있다면 그것은 역사적으로 알렉산드리아의 몰락, 즉 히파티아의 죽음 이후 (영화<아고라>에서 매력적인 레이첼 와이즈가 역을 맡았다.정말 그렇게 예뻣을까?ㅎㅎ) 데카르트가 등장하기 전까지의 대략의 시간들-흔히 중세의 암흑기라고 불리는 시대- 일 것이다. 중세의 과학기술의 퇴보가 있지 않았다면, 지금 쯤 인류는 태양계 바깥의 행성을 탐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투로 말한다. <코스모스>의저자 칼 세이건도 어디선가 그와 유사한 말을 했던 걸로 기억한다. 거의 천년 가까운 과학적 정체였으니 현재 인류의 발전 속도를 소급해서 생각하면 지끔 쯤 안드로메다 외계인과 커뮤니케이션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 선정한 기하학의 독수리 5형제의 면면은 이렇다. 맏형 유클리드는 향후 거의 2천년간 지배하게될 유클리드 기하학의 정리자이다. 고대 그리스와 이집트,메소포타미아의 수학을 집대성한 셈이다. 데카르트는 유명한 '코키토'의 철학자이자 기하학과 대수학을 결합시킨 장본인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그래프와 좌표라는 개념이 데카르트때 도입된다. 그리고 천재 가우스는 당대 발표되지 못하지만 비유클리드의 싹을 발견한 사람이다. 캐릭터 셔츠로도 유명한 아인슈타인은 특수상대성이론과 일반상대성이론으로 시간과 공간의 절대성을 부정한 이다. 그리고 마지막- 이 사람 이야기하려고 이걸 다 쓴 것 같다- 위튼. 이 사람은 뭐하는 사람이가? 이 분은 다섯명의 멤버중 유일하게 중력에 영향을 경험하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이다. 현대 우주론을 살짝이라도 열어본 사람이라면 그를 1세대 초끈 이론을 정리하고 2세대 초끈 이론을 이끈 M-이론의 창시자로 알고 있을 것이다. 저자를 포함한 세간의 평가는 아인슈타인에 맞먹는 천재 중에 천재인 셈이다. 저자는 <유클리드의 창>에서 위튼을 비롯한 초끈 이론의 과제와 성과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면서 이 책을 정리한다. 결국 다섯 명과 주변의 영향력 있는 인사들을 통해서 인류가 세계와 자연을 어떻게 인식하고 또 시간과 공간을 -기하학의 전쟁터이니까- 어떻게 대했는지 대략적으로 파악하게 된 셈이다.
책의 구성을 보면 책 전반부는 대수학과 기하학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아무래도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이 그것에 바탕을 두니 경험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부분이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을 다루는 책 후반부 부터는 이론 물리학이 중심이 된다. 결국 이론 물리학의 증명은 수학을 통해서만 가능하기때문에 수학이 팽을 당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에 의존해야하는 더 중요한 대목이 된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전문적 수학용어나 수식이 거의 없다. (있어도 그 수학적 증명에 관심이 있거나 이해할 수 있는 독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그래서 수학이 아니라 역학만 한참 이야기하는 것 처럼 느껴진다. 저자는 나름 쉬운 방식으로- 그의 아들 두 명이 매우 여러번 찬조 출연한다- 물리학의 주요 아이디어들을 설명한다. 하지만 기본적인 지식이 없으면 이것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많이들 아는 상대성 이론-그런데 정말 상대성 이론에 대해 많이들 아나?- 역시 수학적 증명으로 설명하는 것은 물리학과 대학원이상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한다. 애초부터 거기는 포기하고 교양수준의 상대성 이론과 관련된 책들을 작심하고 좀 살펴본 적이 있다. 이유는 가장 유명한 이론인 상대성이론이 뭔지 잘 몰라서. 하여간 오고 가는 기차와 날아가는 우주선등을 통해-이 책에서도 기차 예를 쓰고 있다. 아인슈타인이 기차 예를 많이 들었다고 한다- 대략 그림은 좀 그려졌다. 그런데 맥스웰의 방정식이나 로렌츠의 변환등등 알려고 덤비면 알아야 할 매우 전문적인 것들이 너무 많다. 또 그 이후 등장하는 양자론이나 파인만의 QED, 초끈이론은 아직 대략적 스케치 밖에 그려지지가 않는다. 이 책에는 이 부분에 대한 도해 같은 것도 전혀 없다.(사실 그림으로 된 설명을 봐도 이해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다.) 한편으로 저자 역시 자신의 설명으로 이 세계를 이해시키려는 의도도 없는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복잡한 극미시 세계에 작동하는 힘들을 몇 장으로 정리할 수 있다면 그것도 이상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의 장점은 잠시 후에 말할 것지만 단점 부터 말하자면, 이 책으로 알수 없는 것이 태산이니 더 많은 공부를 하라고 다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유클리드의 창: 기하학 이야기>의 장점을 말해보자. 먼저 이 책은 기하학을 중심으로 물리학사의 흐름들과 전체적인 조망도를 그린다. 그중 돋보이는 장점은 일상적인 용어를 사용하며 유머러스한 문장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의 희희낙낙한 표현들은 압권이다. 하나 하나 소개하지 못함이 아쉬울 정도이다. 가우스의 일탈, 즉 유클리드 공리계를 일탈하고 싶은 욕구를 저자는 혀에 귀고리 꽂은 아이들이나 쫒아다니는 10대의 남자아이들의 일탈 욕구와 빗대면서 표현한다. 가우스는 그런 아이들하고 다르긴 했다는 것이 그 일탈의 변별성이다. 이런 식의 재밌는 비유와 표현의 일상성은 삐꺽거리는 거대한 기계를 떠올리게 하는 기하학이란 뉘앙스에 살짝씩 달콤한 꿀을 발라주는 셈이다. 그렇지만 한가지 명싱해야 할 것은 다루는 분야 자체가 워낙 전문적이고 어려운 분야이다 보니 그 유머러스함으로도 다가설 수 없는 부분도 있다는 것이다.. 유머러스하다는 것이 꼭 쉽다는 뜻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앞서 한번 말했지만, 이 책에는 저자의 아들, 알렉세이와 니콜라이가 때로는 별로,때로는 관측자로, 때로는 이론적 대립자로 빈번하게 등장한다. 저자가 매우 자상한 아빠였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도 이 책에 등장한 자기들의 모습에 매우 즐거워 했을 것 같다. 기하학이니 물리학이니 하는 비인간적인 내용들에 자기 방의 엔트로피를 높이는 아이들이 등장하니 훨씬 인간적인 향기가 난다. 책은 그래서 좀 더 인간적인 온기를 품게 되고 아이들은 자기 존재가 오래도록 활자로 남아있을 테니 좋고. 이런 걸 두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도랑 치고 가제잡고 라고 하는 것이다. 이제 결론만 남았다.
"제 점수는 요..(두구둥 두구둥)... <유클리드의 창:기하학 이야기> 이 분야의 대중적인 에세이로 추천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입니다. 통과...축하드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