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
김영현 지음 / 창비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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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쯤 김영현의 소설을 보았다.책 제목이 무척 맘에 들었기때문이다.단편집 <깊은강은 멀리 흐른다>였다.당시 지배적 분위기였던 민중적 리얼리즘에 바탕을 둔 소설집이었다.당시의 리얼리즘 소설들과 비교해 충분히 비교우위를 가진 소설이었다.같은 소재를 다루고 주제의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섬세한 문체와 소설적 서정이 살아있다는 느낌이 아직도 남아있다.그 이유때문이었을까? 당시 선후배들 생일 선물로 김영현의 소설집을 몇권 사준 기억이 난다.

김영현의 <폭설>은 지극히 전형적인 후일담소설이다. 개인적으로는 후일담 소설에 큰 점수를 주지않는 편이다.이 책 역시 지난 시절에 대한 향수로 고개를 끄덕이기 보단 조금은 삐딱하고 아쉬운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한 시대를 함께 고민했던 사람들이 시린눈으로 지나온 길을 돌아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문학이란 것 역시 시대의 고민과 작가 개인의 경험으로부터 크게 유리될 수 없다면  후일담류의 문학작품이 쏟아진 것 또한 당연하다. 90년대 중반 한치를 알 수 없던 시대적 분위기가 어느사이 갑자기 안정을 되찾은 듯 했다. 사회과학 서점들은 경영난으로 문을 닫고 거리의 투사들은 하나둘 제갈길로 흩어져 자기 살길을 찾는 데 급급했다. 아직 갈길이 먼데도 불구하고 눈앞에 보이는 작은 변화는 침소봉대되어 사회의 우경화를 이끌었다. 사람들은 많이 실망하고 많이들 절망했다.하지만 이미 시작된 흐름을 돌릴길 없어 강건너편 멀어져가는 연인을 바라보듯 그 시대를 보내고 말았다. <폭설>은 작가도 밝혔듯이 지나온 그 시절에 대한 추억이다.작가가 그렇게 밝히고 있으니 아직도 후일담이냐고 나서서 따지기도 뭣한것이 사실이다. 그에게도 나름대로 지나온 시절을 자신의 작품을 통해 정리해야 할 권리는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후일담도 지겨워질 무렵 또 다른 후일담을 들고 나오니 진부하다고 해야할지 작가의 개인적 기록으로 애정을 가지고 바라봐야 할 지 난감하다.

이 소설에는 후일담류의 소설에 나오는 전형적인 인물들이 등장한다.시국관련 수감자였던 형섭과 그를 기다리던 연희,그리고 주변에 비슷한 성향을 가지며 이들을 도와주는 조연들.또 극좌모험주의라고 할수있는 성유다와 그 주변인물들. 성유다의 캐릭터는 소설중에서 거의 종교지도자의 수준으로 그려진다.이 부분이 자못 어색하기도 하지만 한때 지하조직의 지도부들이 신비화된 것에 비교해보면 아주 현실과 이반된 것은 아니다.한가지 아쉬운점은 이 소설에 등장하는 여자들의 몫이다.이 소설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주체적인 듯 하면서도 늘 사랑과 외로움에 힘겨워하는 사람들이다.물론 20대라는 나이가 남과 여를 불문하고 사랑과 그리움의 정서가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 부분일 것이다.하지만 형섭과 유다등에 비해 연희,미경,애림은 나름대로 주체성을 지니면서도 사랑에 목말라하는 무언가로 그려진다.마치 누군가의 보호를 필요로 하는 대상으로서 말이다. 결혼을 앞둔 미경이 마지막으로 형섭을 만나러 온다거나 만난지 몇번 안돤 형섭에게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으며 의지하는 애림...그리고 형섭을 기다리다 유다를 만나 그의 아기를 가진 연희조차 끝까지 사랑하던 남자에 대한 의리를 저버리지 않는다. 여자는 순정으로 기다리고 남자는 그들이 남겨 놓은 슬픔에 마음이 짠하다.이것은 좀 진부한 스토리아닌가 한다.

과거를 돌아본다는 것이 과거의 이야기를 멜로로 풀어낸다는 것은 아니다.물론 작가는 그 공간에 있었던 사람들의 열정과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었을 것이다.하지만 그 과정을 너무 드라마틱하게 형상화하고 싶은 열정에서 였을까 ...베스트셀러극장 대본 공모 당선작처럼 되어 버리고 말았다. 나름대로 이 소설을 각색하여 잔잔한 베스트셀로 극장으로 만든다면  괜찮은 작품이 될 듯하다.수미일관되게 폭설도 내리고 폭우가 내리는 날 공사장 사고도 나고...연희의 유골은 강가에 흘러보내고 ....유다는 법정에서 안중근의사처럼 당당하게 자신의 최후변론을 마치고......눈내리고 모두 가버린 교도소 앞에서 새로운 만남.....딱 그림이 나온다.

 작가에겐 분명히 그가 한복판에 있었던 시간들을 되새김질하고 싶은 욕망이 있었을 것이다.독자를 위해서라기 보다는 자신을 위해서라도 말이다.그렇다며 김영현은 <폭설>로 그 일을 마쳤다.이 작품이 독자에게 큰 감동을 줄지 또는 작가 자신의 씻김굿이 될지  알 수는 없지만 이제 그 작업은 끝났다. 그렇다면 이제 독자는 그에게 새롭고 신선한 무언가를 요청해도 무리가 되지 않을 성 싶다.그의 새로운 작품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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