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를 쓰지 않다보니 리뷰 쓰는 법을 잊어 버렸다. 리뷰를 쓰기 위해 일정 시간을 고민하고 정해진 시간 동안 한 장소에 앉아 있기가 쉽지 않다. 가끔 필기도구를 들고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노트에 끼적거릴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로지코믹스>는 오랜만에 '리뷰 본능'을 불러 일으킨 재미있는 책이다. 

만화책 제목을 직역하면 <논리만화>가 될까? 

1. 첫번째 매듭, 버트런드 러셀과 20세기 초반의 수리논리학의 과제.  

책의 주인공이  버트런드 러셀이란 것은 이미 말한 셈이다. 여전히 서점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세계철학사>의 저자인 그 사람말이다.  하지만 조연진도 만만치 않다. 김유신이 나오는 곳엔 계백도 나와야 하는 법. 20세기의 대표적인 수학자와 논리학자들이 대거 조연으로 등장한다. 칸토르,프레게,힐베르트, 푸엥카레,화이트헤드,비트겐슈타인, 괴델 등등...세계를 이해하는 하나의 토대를 만들기 위해 각축하는 이들은 광기 어린 수의 사제들이다. 실제 러셀을 비롯해 많은 이들인 가우어가 말한 '무한을 보려는 죗값'을 치루기도 한다. 이 책의 기획 아이디어이기도 한 '광기와 논리학'을 염두해두고 하는 말이다.  

이들은 무엇을 찾고 있었는가?  이것이 사실 이들을 광기에 빠뜨리기도하고 위대하게 만들기도 하는 이 책의 중심 주제이다. 그것은 '토대'이다. 러셀의 무한한 거북이 위의 세계라는 거북이 비유가 바로 대표적인 예이다. 세계는 어떤 존재 이며 그 끝은 무엇인가? 그 세계를 가장 합리적인 언어로 이해할 수 있는 표현할 수 있는 방식은 무엇인가?  아인슈타인이 대통일장 이론을 구축하려고 무단히 애썻던 것이나 우주론에서 최종이론을 도출하려는 분파와 그것을 부정하는 분파사이의 논쟁이나 형식은 다르지만 지향점은 유사하다.

물론 언급한 이들이 각기 증명해내고 반박해낸 수학적 과정들을 하나 하나 이해하기란 전문가가 아니라면 결코 쉽지 않다. (1 곱하기 0은 다시 0 인 공리를 수학적으로 이해하는데도 한참 걸린 나로서는 말이다. 가끔 심심할 때 이런 공리들을 쫓아가보는 것도 요즘 즐거움중 하나다) 하지만 전체적인 흐름 정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2. 두번째 매듭은-특히 이 책이 뛰어난 점이기도 한데- 러셀의 '자기언급'을 책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긍정적으로 재현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구성 방식의 탁월함을 말하는 것이다. 단순히 러셀과 그의 동료들의 이야기를 나열했다면 이 책은 평범하게 끝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마치 한편의 메이킹 필름을 보는 것 같다.  책의 기획과정과 논의 과정을 다큐멘터리처럼 구성하여 책의 실마리와 이 책이 가고자 하는 방향,또는 질문등을 만들어 낸다. 이 책의 저자와 그린이들이 실제로 만화의 주인공의 등장하여 러셀과 동료들의 질문에 토론하고 반박하며 균형을 잡아간다. 예를 들어 괴델의 '불완전성정리'에서 책이 끝난 것에 대해 공저자중 한명은 '폰 노이만'과 '튜링'을 말하지 못했다며 광기의 수학자들이 만든 알고이즘과 컴퓨터(인터넷)의 변혁적 가치에 대해 언급하지 못한 것을 툴툴거린다. 그러니까 독자는 이들 기획자의 작업실 토론과정을 보면서 이 책의 기획의도와 방향성 그리고 미처 다하지 못한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는 것이다. 

3. 마지막 매듭 역시 두번째 매듭과 관련이 있다. 이 책의 저자 역시 단행본으로서 일종의 결론을 도출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들은 20세기 수리논리학의 전반적 행보를 읽어낸 이후 마지막 결론을 고대 그리스 비극에서 도출한다. 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이아>에서 말이다. 아테네와 복수의 여신이 화해하는 방식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결론이기도 하다.  

만화는 모두 컬러 인쇄되어 있으며, 종이 재질도 매끈하다. 하지만 가장 뛰어난 것은 역시 기획력이다. 이런 철학적 내용들을 이런 형식에 이런 구성으로 담을 수 있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수많은 언론의 무수한 별 표는 우리가 평소에 접할 수 없었던 주제와 텍스트의 충실함, 그리고 새로움 때문이다. 

수학책들 몇 권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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