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가면의 제국 - 오리엔탈리즘, 서구 중심의 역사를 넘어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며칠전 동네 비디오가게에 갔다. 한쪽 구석에 박혀 있는 영화<여섯개의 시선>을 건져왔다.영화는 6개의 옴니버스식으로 구성되어 있었다.박광수,박찬욱,임순례등 이름이 적당히 알려진 감독들도 메가폰을 잡았다.영화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다.영화는 사회적 소수자들과 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다루고 있었다. 그중에 한 편은 영어교육에 대한 강박증을 영상화하고 있었다.영어 발음을 좋게한다고 혀의 뒷부분을 자르는 -그 부분에 대한 명칭이 있는데 잘 모르겠다.-수술장면을 보여주었다. 이미 신문보도를 통해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영상으로 만나니  잔혹하다는 느낌이 먼저 들었다.도대체 무슨 영광을 보려고 저런 짓을 하는지...도대체 좋은 영어발음을 위해 수술대위에 아이를 앉힌 부모들은 어떤 생각으로 세상의 한 켠을 지키고 있는 사람인지...

 우리는 하루 하루 서구 선진국이 되기 위해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고 있다.60년대 가난하던 시절에는 서구가 보여준 물질적 풍요가 그 목표였다.어느 정도 먹고 살만한 이젠 그들의 경제뿐만이 아니라 사회문화 전반이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대학다니며 심리학시간때 배웠던 '욕망의 발전 피라미드' 하위 단계에서 상위단계로 옮겨가고 있다.이제 서구화를 통해 자아를 실현하려는 단계까지 이른것 같다. 인터넷에는 대한민국을 미국의 52번째 주로...뭐 이런 사이트도 있다. 한국이 답답하니 비판하고 씹는 것은 충분히 이해된다.나 역시 그러니까.그런데 이젠 미국의 한 주로 편입하는게 낫지 않느냐는 농담같은 이야기가 괴상한 논리로 온라인 안에서는 목소리를 높인다. 서구화된 의식자체로 만족하지 못하나 보다.그래서 아예 그들의 일원으로 편입되고 싶은가보다.

박노자는 서구인으로 우리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서구화 가면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우선 우리의 세계 인식이 서구 근대론의 틀 안에 공고화 되어 있음을 지적한다. 우리가 너무 당연히 여기는 자유나 자본주의 세계란 것이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지나가는 한 시기 중에 하나임을 밝힌다.서구의 근대패러다임을 불변의 진리로 여기는 사람들에게 중심과 주변이라는 타자화는 너무나 당연한 결과로 파악한다.서구 패권국가의 중심-주변부 가치관 속에 우리는 서구의 근대프로젝트를 맹목적으로 쫓으며 중심부적 가치를 교육받고 믿어버리게 된 것이다. 지난 이라크 파병에서 우리는 서구-특히 미국-의 에이전시가 되어 버린 많은 한국인들을 보았다. 그들의 주장중 하나는 미국의 이익이 곧 한국의 이익이다라는 류의 생각이었다. 이미 의식이 미국에 종속되어 버린 이들에게 우리가 서있는 좌표가 어디인지 물어보는 것은 의미가 없을 성 싶다.그들에게 우리의 좌표는 미국이라는 국왕밑에 봉사하고 특권을 챙기는 봉건 영주의 장원일 듯 싶다. 미국이 최고의 우방이라고 칭찬해주면 그저 감사하고 자부심을 얻겠지...우리에겐 든든한 백이 있다는 식으로 말이다.

 물론 박노자가 미국만을 서구화의 주체로 보는 것은 아니다.그는 근대가 만들어 놓은 서구적 패권 자체를 문제 삼는다.그의 글을 첫장은 도스토에프스키와 러시아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우리가 복지국가라고 일컽는 북유럽의 원조문제에 대해서도 애정어린 비판을 가한다.자발적 원조라고 하더라도 결국에는 대상국을 원조국에 경제적으로 귀속시키는 결과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박노자의 문제 의식은 개인의 인권과 인간성에 대한 존중이라는 모토로 적이나 아군에 상관없이 집단의 폭력성과 가학성 그리고 이에 대한 은폐를 폭로한다.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부각하며 반대로 연합군 측의 독일포로에 대한 폭력은 숨겨져왔다. 적의 잔혹함은 그들의 조직의 반역사성,그들의 인간성 결여로 그려진다.반면 연합국의 반인륜적 행태들은 전쟁의 상황논리속에 자연스럽게 잊혀진다. 악마와 싸우기 위해 어쩔 수 없었던 위악이었다는 식의 아주 편리하고 대중설득력이 높은 논리로 위장하는 것이다.

 박노자는 서구에 대한 왜곡된 시각에서 시작해서 우리 내부의 가면을 벗기기 위한 작업으로 들어간다. 한참 논란이 많았던 동학의 혁명성에 대한 논쟁부터 한국의 진보논쟁 속에 지식인들의 학연주의등에 칼날을 대한다.물론 그의 한국사회에 대한 분석을 그대로 수용할 필요는 없다. 이미 그의 탈근대적 한국사회 분석이 많은 논쟁거리가 되어서 학계에 비판과 반비판의 토론을 만들고 있다. 개인적으로 박노자의 생각이 많은 부분 동의하면서 또한 그가 촉발하고 있는 토론의 건강성에 대해 높이 평가한다.

 세상에는 객관적이고 중립적이라고 위장하는  가치들이 많다. 대부분은 우리가 언제부터인가 그 연유를 알지도 못하고 당연히 믿고 있던 가치들이 그런 과잉대접을 받는다. 우리가 믿고 있는 서구화된 가치들,근대적 가치들 역시 위의 것들중에 하나 일 것이다. 이를 극복하고 우리가 우리의 좌표를 잡는 일, 무엇보다 우리에게 중요한 철학적 과제이고 우리 교육의 과제가 아닐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