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퇴근길에는 라디오나 CD를 듣는다. 오늘 내 차 안에는 안드라스 쉬프가 연주한 '스카를라티 소나타'와 게오르그 솔티가 시카고 심포니를 지휘한 '말러 교향곡3번'이 있다. 만약 라디오를 듣는다면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들을게다. 거의 늘 그렇기 때문에. 

어제 저녁 청취자 사연중에 고3수헙생의 부모가 보낸 사연이 있었다. 전국의 고3수험생과 학부모님들 수고하셨다는 사연이었다. 배철수씨 왈 "저도 사실 고3수험생 아버진데요...전 한게 없어서 빼주십시오" 라고 예의 겸손을 표했다. 사실 공부는 아이가 하는 거지 부모가 하는 것이 아니다. 부모는 공부하는 아이들에게 물질적 안정과 약간의 배려,그리고 힘겨움을 뚫고 나갈 애정을 주는 것 뿐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건 뭘 모르는 일이 되었다. '아이가 고3이면 엄마도 고3이다' 이런 경향은 요즘은 아예 유치원때부터 시작된다. 이제 부모들은 최근 책을 낸 엄기호씨의 표현을 빌자면 어린시절부터 '학습 매니지먼트 전문가'가 되어서 함께 수능일을 위해 달린다. 그러니까 어떤 의미에서 '교육'은 사라지고 '교육 산업'만 남은 것이 한국의 교육현실인셈이다.       

오늘은 고3 수험생이 왕이다. 어제 받은 백화점 브로슈어에는 이 예비 소비자들을 위한 다양한 유인전략들이 빽빽했다. 수능 수험표를 가져오는 고객께 할인, 고3 수험생만을 위한 콘서트 등등 모두 "그래 그동안 지루한 학교에서 사육 당하느라 고생했다. 그러니 부모 지갑 털어서 이리로 와라. 이제 부모들에게 그 정도 요구해도 된다. 여기가 너를 위한 판타스틱 월드란다" 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또 기억해야 한다. 대학 입학률이 80%이상이라지만 당해년도 수능을 보지 않는 고3친구들은 훨씬 많다. 오늘 시험 보지 않는 고3 아이들은 하루 동안 투명인간이 된다. 그리고 그 부모들은 어제처럼 오늘도 투명인간으로 산다.  정말 먹고 살기 힘들어서-세상에는 정말 먹고 살기 힘든, 그래서 아이를 제대로 봐줄 시간도 정성도, 힘도 없는 서민들이 꼽을 수 없을 만큼 많다. -고3이 된 아이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부모들. 수능이라는 한국 사회의 위계 질서를 반영구적으로 결정짓는 이 비합리적이며 야만적인 행위 속에 끼이지 못한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들을 위한 자리도 오늘 어디에도 없다.  

세상은 오늘 하루 그렇게 선명한 구분을 통해 그 속살을 보여준다. 오늘 하루 보게될 '수능/비수능'이라 구획선, 그 안에는 학벌의 문제, 빈곤의 문제,분배의 문제,계급의 문제가 물밑에서 눈만 살짝 표면으로 올린 개구리처럼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어제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듣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별로 해준 것이 없다'는 배철수가 좋다. 그리고 '별로 해준 것이 없다'는 배철수가 '해주고 싶어도 해줄 수 없었던 부모들'에 대해서도 한마디 더 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간만에 배철수 아저씨의 노래가 듣고 싶어졌다. 시인 최영미는 소월의 이 시에서 "돌아서면 무심타" 라는 말을 이해하기 시작하면 비로소 나이가 든 것이라고 평했다. 난 나이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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