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울한 어젯밤 문득 듣고 싶어졌다. 음반장을 뒤졌다.하지만 찾지 못했다. M라인에 두었는지 R라인에 두었는지 조차 생각이 나지 않았다. 작은 불빛에 행여 예찬이가 깰까봐 불을 켤 생각은 아예 떠오르지도 않았다. 손전등을 어디에 두었을까? 하나를 찾기 위해 또 다른 하나를 먼저 찾아야 하는 건 무척이나 귀찮은 일이었다. 결국 듣겠다는 마음을 접었다.
영국 작곡가 로빈 밀포드의 "Fishing by moonlight" 라는 곡이다. 왜 어젯밤 생각이 났을까? 가끔 플래쉬 커트처럼 떠오르는 영상이나 이미지, 또는 그와 관련된 욕구는 미스테리다. 가끔은 개연성을 갖기도 하지만.마치 공포 영화 속에 일상적인 장소에 홀연 등장하는 유령처럼 그렇게 어떤 욕망들이 지나가는지.
제목이 낭만적이다. 앨범 자켓은 나사렛 호수같다. 앨범 자킷에 그렇게 나왔던가? 하여간 우울함이 뭔가 감상적인 상태를 만든다. 이 상태는 분명 좋지 않다. 그런데 모래 구멍처럼 자꾸 이리로 미끌어져 가는 것 같다. 하여간 감상적인 건 설사 밖에 못만드는데 지금 내가 하고 있는게 결국 감상주의가 만든 감정의 설사같은 건 아닌가 반문해본다.
2. 테리 이글턴의 근작 <반대자의 초상>에는 감상주의와 감성을 구분하는 글이 한 줄 나온다. '감상주의를 감성과 착각하는 것은 예술가를 보헤미안이라고 착각하는 것과 진배없다.' 혼자 씨익하고 웃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예술 관련된 글 중 얼마나 많이'감성'과 '감상주의'를 혼동하면서 보게 되는지. 쉽게 말하자면 '감상주의자'를 툭하면 '감성주의자'로 착각한다는 것이다.
로쟈님은 테리 이글턴이 마르크스주의자보다 유머리스트가 되기로 한 것 같다고 말씀하셨는데, 유머러스한 마르크수주의자가 아마 정답일게다. <현대성의 경험>의 저자인 마샬 버먼의 책,<맑스주의의 향연>을 보면 세상에는 유머러스한 마르크스주의자가 한명 만은 아닌게 확실하다.
3.음악 이야기하다가 잠깐 딴데로 갔다. 뭔가 두서가 없는게 지금의 특징이기도 하다. 잠시도 오래 집중하지 못한다.
몇 년전에 나는 하이페리온에서 나오는 영국 작곡가들의 음반을 좀 많이 듣고 있었고 로빈 밀포드도 그렇게 알게 되었다. 당시 이 음반을 국내에 소개하고 팔아치운건 음반가게 <풍월당>이다. 내게는 이중적인 감정을 느끼게 만드는 곳이다만 아이 둘 낳은 실장하고 오랜 인연이 있어서 서울가면 한번 씩 꼭 들르곤 한다.
오늘 유투브에서 다시 듣다보니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23번의 2악장과 첫 도입부의 분위기가 매우 유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4.깊은 슬럼프다. 한 달 이상 이어지고 있다. 현실적인 탈출구가 별로 없어보인다. 원래 그런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탈주선이란건 누가 만들어주는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지만... 하여간 회사 옮기고 싶은게 요즘 1순위 고민이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일이긴하지만 이번엔 좀더 강도가 세다. 당장 때려치고 싶지만 그게 그렇게 쉬운일만도 아니고. 배를 바꾸어 타려고 해도 일단 오는 배가 있어야 하는거고 오는 배가 있다손치더라도 이런 상황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잘 골라 타야 하는거다 보니.
우울하네.
5. 신학철 선생의 예전 작품이 생각난다. <중산층 연작, 따봉>
사실 내 이럴 줄 알았다. 이것의 무서움을 그만큼 몰랐을 뿐이다. '따봉'을 외치는 위치에 가기 위해 이것 저것 반쓰까지 내리고 자처해서 물구나무를 서던지,-그 뒤에는 또 뭐가 없겠나?- 지젝이 언급한 <파이트클럽>의 노튼 처럼 자기구타라는 단절을 통한 해방으로 가던지... 그런데 그냥 '이건 아니다'하면서 물구나무만 100년째 서고 있다.
대략 300년쯤 앉은뱅이 의자에서 기다리면 성 베드로가 성문이라도 열어줄지 알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