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들은 우주가 4원소로 구성되어 있다는 믿음을 가졌다. 물, 불, 공기, 흙이다. 이런 주장을 최초로 꺼낸 이는 화산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다고 알려진 엠페도클레스이다. 그는 고대 그리스 7현인 중 한명이다. 그는 과거의 각각의 개별 원소가 중심이라는 -예를 들자면 탈레스의 물- 단원론을 통합하여 4개 원소가 우주를 구성한다고 믿었다.  뤽베송의 영화<제5원소>에서는 4원소에 이를 활성화하는 마지막 원소로 '사랑'을 추가한다. 하지만 원래 엠페도클레스에게는 '사랑'의 짝패인 '미움'이 포함된다. 그러니까 '물,불,공기,흙'이 '사랑'과 '미움'을 만나야 변화를 포함한 어떤 상태가 생기는 것이다. 

고대인들의 생각에 4라는 숫자는 일종의 신의 완전성,전능성,조화였다. 이는 시공간을 횡단하는 우주적 보편성이라는 의미이다.  

클래식 음악에서 4하면 '콰르텟'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중 가장 일반적인 형태는 '현악 4중주'. 현악사중주란 무엇인가?  

 위키피디아에 아주 명쾌하게 정의해 놓았다. 

"In Western art music, which is often referred to as "Classical music," string quartets are considered to be an important type of chamber music. String quartets consist of two violins, a viola, and a cello playing a multi-movement musical composition written in sonata form. The particular choice and number of instruments derives from the registers of the human voice: soprano, alto, tenor and bass."  

그다지 어려운 단어는 없지만 쉽게 요약하면, 2대의 바이올린, 1대의 비올라, 1대의 첼로로 연주하는 실내악이란 말이다. 락 밴드로 치자면 1st 기타, 2nd기타, 베이스, 드럼. 가장 친숙하게는 이런식으로 비유될 수도 있겠다.   

레코딩의 역사가 시작된 이후 우리의 기억에 남아 있는 훌륭한 지휘자들이 무척 많다. 니키쉬,멩겔베르트, 푸르트뱅글러, 발터, 클렘페르,토스카니니,카라얀 등등... 4중주단의 역사에도 여름밤 하늘에 유독 빛차는 그런 별들이 있다. 모노시절의 부다페스트 사중주단, 부쉬 사중주단. 스트레오시대의 아마데우스, 이탈리아, 과르네리, 줄리아드, 보로딘 사중주단. 그리고 몇 년전 해산한 알반베르크 사중주단까지. 좀 과장하자면, 각 사중주단의 4개의 개별 원소들이 조화와 투쟁을 통해 빚어낸 음악은 각각 그들만의 사운드를 뽐내며 자신들의 작은 성운을 만들어내었다. 

빈 출신의 알반베르크 사중주단이 팬들의 아쉬움을 남긴 채 해산을 한 이후 가장 눈에 띄는 단체는 역시 최근에 내한한 에머슨 사중주단과 데카에서 하이페리온으로 소속을 옮기고 브람스 시리즈를 내고 있는 타카시 사중주단이다. 이들은 사중주단의 실력을 가늠한다는 사각의 링과도 같은 베토벤과 바르톡 현악사중주에서 각기 자타가 공인하는 명성을 얻었다. 최소한 현재 세계적인 현악사중주단이 되려면 이 둘을 정복해야만 하는게 공식인 듯 하다. 에머슨과 타카시 사중주단 모두 이 두 작곡가의 음반으로 각종 음반상을 수상했다. 개인적으로 타카시의 연주를 커피 한 스푼만큼 더 좋아하는 편이지만 에머슨의 독특한 매력을 뿌리치지 못한다. 타카시가 유럽적 전통에서 시작하여 현재는 콜로라도를 중심으로 활약하는데 반해 에머슨은 너무나도 미국적인 팀이다. 그들은 전형적인 양키, 뉴요커다. 두 팀 사이에는 그들의 음악이 성장한 지역적 차이도 느껴진다.  

 

  에머슨사중주단은 멤버 교체 없이 30년가까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서로의 음악적 발전을 위해 서로간의 거리를 둔다고 말한다. 일종의 '음악적인 자유주의'태도이다. 이들에 대한 첫 인상은 천상 뉴욕의 '여피'다. 실제로 이들은 함께 공연을 가더라도 각자 다른 호텔을 이용한다는 소문도 있다. 각자 서로의 취향과 공간을 존중해준다는 것이겠다. 이것이 무슨 분열의 소지가 되거나 하는 일은 아직은 없는 듯 하다. 흔히 정치학에서 말하는 권리중심주의편에서의 평등은 이와같은 형식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에머슨사중주단의 특징 중에 하나는 두 명의 바이올린 주자 필립 세처와 유진 드러커가 각각 제1 바이올린과 제2 바이올린을 번갈아 맡는 다는 점이다. 이건 이 단체가 설립되었을때 부터 줄곧 유지되고 있는 특징이다. 1바이올린과 2바이올린의 일종의 위계를 정치적으로 말하자면 자유 민주적 평등의 방식으로 돌파하고 있다. 물론 어떤 곡에서 누가 1바이올린을 맡을 것인가는 두 연주자들의 음악적 결정에 따른 것이다. 에머슨 사중주단의 멤버들은 하여간 무언가 빈틈없는 느낌을 준다. 이러한 각 멤버간의 사적,음악적 긴장감이 그들의 음악에 텐션을 부과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마치 독립전쟁 이후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조화를 통한 견제'라는  방식을 취한 것 처럼 말이다. 베토벤 사중주는 워낙 쟁쟁한 음반들이 많아서 국내에서 많이 사랑받고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89년 바르톡 음반이나 2000년 쇼스타코비치 음반은 상값을 하는 듯 하다. 특히 바르톡 음반은 에머슨의 능력을 부각시키기 위해 좀 과장하자면 '에머슨 이후와 에머슨 이전'으로 나뉜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에머슨 사중주단을 싫어하는 이들 조차 이들의 연주력은 공히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단지 이지적이고 열정을 억제하는 듯 모던한 해석에 취향의 호불이 갈릴 뿐이다. 마치 하이페츠나 폴리니의 초기음반에 대한 평가가 그러하듯이 말이다. 어느 누구도 하이페츠를 보고 '내 취향은 아니야'라고 할 수는 있어도 '그의 연주는 수준 이하'라고 할 수는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 의미에서 에머슨 사중주단이 최근에 낸 그리그,시벨리우스 사중주 음반은 정녕 에머슨답다. 북구의 민족적 정서보다는 북구의 차가움을 선택했다고 보면 적절할 듯 하다. 그들은 마치 얼음의 표면처럼 차가운 열정으로 그리그,시벨리우스의 민족적 속성을 걷어내고 음표의 순혈성을 드러낸다.(아래 4번째 음반이 그리스,시벨리우스 사중주단 음반이다.)   

뭐 익히 알려진 이야기이지만, 에머슨이란 이름은 미국의 바로 그 사람이다.

  

  

 

  

 

 

쇼스타코비치 현악사중주 3번이다. 화면왼쪽부터 필립세처, 유진드러커, 데이빗 핀켈,로렌스듀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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