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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후회는 없다 - 에베레스트에서 사라진 맬러리를 찾아서
피터 퍼스트브룩 지음, 정영목 옮김 / 지호 / 2004년 1월
평점 :
품절
극지대에 대한 모험은 언제나 휴먼다큐멘터리의 주요소재였다.거기에는 환경과의 사투속에 인간 일반이 보여줄 수 있는 선과 악,용기와 무능이 동시에 들어있다.모험기는 한편의 잘짜여진 드라마보다 더 극적인 이야기들로 가득한 드라마 창고이다. 이 책 역시 에베레스트 산에 도전하고 실패했던 사람들에 대한 다큐멘터리이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는 영국 BBC 방송의 의미있는 기획으로 시작되었다.그들은 1920년대 최초로 세계 최고의 산 에베레스트에 도전했다 실종된 멜러리와 어빈을 찾는 프로젝트를 추진한다.그 래서 이 책은 두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책의 전반부는 주인공인 멜러리의 에베레스트 등정과 그에 부수된 이야기들로 이루어진다.그리고 멜러리의 실종과 함께 시작되는 후반부는 방송제작팀이 전설을 역사로 만들기 위한 여정으로 그려진다.
책의 전반부는 영국의 에베레스트 도전 약사이다.이부분에는 개인적으로 불만이 좀 있다.모든 것이 지극히 영국인의 시각에 입각하여 그려지고 있다는 것이다.다시말해 제국주의 역사관 그대로이다.이 책은 영국인들이 20세기 초 지리학적 이유(?)로 인도와 네팔,티벳등의 지도를 그려나가는 과정을 길게 보여준다.이 작업이 마치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지적열망때문인 듯 그려진다.하지만 이는 지극히 정치적인 작업이었다.어느 나라가 식민국을 건설하고 침략하려는데 지도도 없이 시작하겠는가? 이 지도 제작 과정에 물론 현지인들이 이용된다.지은이는 이들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는 어설픈 휴머니즘적 입장을 취한다.하지만 목숨을 버려가며 간첩활동을 하며 지도를 만든 현지인들은 사실 제국주의 영국에 이용당한 것 뿐이다.어쨋거나 이러한 지도 제작 과정에 세계 최고봉이 발견된다.영국인들은 여기에 인도에서 지도제작을 담당했던 에베레스트의 이름을 붙인다.그래서 지금도 에베레스트라 불린다.하지만 이미 그 봉우리는 각 인접국 마다 나름대로 부르는 이름이 있었다.백두산을 마운튼 화이트헤드 라고 부르면 좋을까?
어찌되었건 1920년을 넘어서며 영국은 에베레스트에 대한 도전을 시작한다.그리고 이 팀에 좌충우돌형 산악인 멜러리가 있었다.이 책에 나오는 멜러리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사람이다.주변 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쳐가면서도 직관적 산행을 감행하는 무모함,툭하면 잊고 다니는 덜렁거림,정리정돈과는 거리가 먼 사람.우유부단함.바로 멜러리의 특징이다.그는 이론이나 경험보다 직관을 존중하는 사람이었다.산을 오르는 방법을 비롯해서 교사로서의 교육관 역시 그러했다.이런 사람은 사실 조직적으로 움직여야하는 산악팀에서는 골치아픈 존재이다.하지만 그의 직관이 가져다 주는 노련함과 열정은 에베레스트 팀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였을 것이다.
1924년 에베레스트 등정에서 마지막 정상정복조로 멜러리가 뽑힌다.지독한 추위와 강한 바람,인간의 의지를 꺽는 고산환경이 모든 대원을 낙오시킨 것이다.멜러리 역시 편안한 상태는 아니었으나 그 밖에 없었다.그리고 젊은 공학도 어빈과 함께 산에 오른다.그리고 실종된다.그가 과연 정상에 올랐을까? 이 책은 다시 책의 시발점이었던 문제제기로 돌아간다.
1999년 멜러리-어빈 촬영팀은 눈속에서 발견한 멜러리를 보고 이를 확신한 듯 하다.지은이는 퍼즐을 맞추 듯 유추해간다.그리고 멜러리의 정상 정복에 대해 긍정적인 결론을 낸다.같은 영국인이었기 때문일까?아니면 에베레스트와 하나된 멜러리가 보여준 강한 인상때문이었을까?
저자가 제시한 객관적 추론 역시 추론일 뿐이다.하지만 책을 읽는 동안 왠지 멜러리가 정상을 정복했을 것이라고 믿고 싶어졌다.전설을 역사로 확인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속성때문인지 아니면 비극적 죽음에 영웅성을 부각하고 싶어하는 속성때문인지는 모르겠다.하지만 때론 인간적 한계에서 나오는 무모함이 성공을 거두는 것이 세상일이다.그런 이변 또는 예측불허가 없다면 세상은 훨씬 지루한 무언가가 될 것이다.언젠가는 퍼즐의 나머지 조각이 될 젊은 어빈의 시신도 발견될 것이다.그러면 좀 더 많이 알려지겠지만 그때까지는 에베레스트의 돈키호테의 성공을 믿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