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평전 - 갈등의 삶, 초월의 예술
박홍규 지음 / 가산출판사 / 2003년 3월
평점 :
절판


아주 오래전 어느 봄.나른한 봄날이었다.콧물이 소매와 옷자락 끝에 덕지 덕지 묻어있는 아이들의 무리가 좁은 운동장에서 흙놀이를 하고 있었다.그 중 한 아이가 일제시대 지어진 듯한 붉은 벽돌 강당 벽에 기대어 책을 보고 있었다.위인전이다.자식을 위인반열에 올리고 싶은 부모의 가능성 없는 기대와 위인전외엔 딱히 권할만한 책이 없는 시대적 한계가 절묘하게 화학반응했던 것이다.아이가 보고 있던 책은 금성출판사판 베토벤 전기였다.아이가 아는 베토벤음악은 피아노 학원 안에서 가끔 들여오던 '엘리제를 위하여'가 전부였다. 그때까지 그 아이는 '엘리지를 위하여'만 치면 피아노를 최고로 잘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아이는 베토벤이란 사람이 참 불쌍하다고 생각했다.아버지가 너무 무섭고 강압적이었기 때문이다.그리고 귀머거리가 어떻게 음악을 만들고 세계적 음악가가 되었지하는 의구심과 감탄의 감정이 동시에 들었다.나른한 봄날,오후 수업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언제 함께 놀았냐는 듯 먼저 교실로 들어가려고 한때의 아이들이 교사의 정문으로 달려들어갔다.욕실 배수구에 물이 빠지듯 운동장은 비어가고 있었다.강당벽에 붙어있던 아이도 비로소 책을 덮고 일어섰다.문앞은 실내화를 갈아 신는 아이들로 장사진을 치고있었다.이미 늦었으니 급할 것 없다는 마음으로 아이는 운동장을 천천히 가로질러 걸어들어갔다.

최루탄이 간간히 터지던 90년대 초반,문화의 거리 대학로에서 한편의 영화가 개봉되었다.베토벤의 <불멸의 연인>,함께 간여자친구에게 하나라도 더 아는척 하기 위해 아이는 베토벤에 대한 모든 상식을 떠올리고 있었다.영화의 스토리는 평이했다.베토벤의 괴팍한 성격과 아름다운 음악 사이에 왠지 모순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게리올드만의 연기는 좋았다. 아버지에게 두들겨 맞고 달려가 누운 연못가에 떨어지던 은하수 그리고 베토벤의 <합창>교향곡, 마차가 엇갈려 맺어지지 못한 베토벤의 불멸의 사랑.뭐 이런 정도가 인상적이었다.당시 아이는 음악매니아였다.팝음악이나 메틀,프러그레시브 락등 한다면 하는 음악광이었다.그러나 클래식은 그의 분야가 아니었다.그래서 그 영화의 음악이 헝가리출신 거장 게오르그 솔티와 그의 수족 시카고 심포니가 음악을 담당했는지 알 턱도 없고 알 필요도 없었다.

시간이 흘러 그 아이는 직장인이 되었다.밤늦은 퇴근길 차안에서 브루크너의 아다지오 악장을 즐겨듣는 30대가 된 것이다.

베토벤에 대한 박홍규 교수의 글은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이 있었다.베토벤을 고난을 뚫고 승리한 위인으로 영웅화하는 것만으론 그의 진가를 파악할 수 없다는 지적엔 전적으로 동의한다.박교수의 글처럼 베토벤은 태생적 반항아요 진보의 상징이다.동시대 사람들로 부터 사랑을 받기도 했지만 그만큼의 비난도 감당해야했다.오히려 시대적 조류가 그의 음악을 조금이나마 받아들일 수 있었다는 것이 다행이다.고호나 브루크너,니체 같은 이들은 동시대에 아무도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오죽하면 말러같은 인물은 '100년후에야 내 시대가 올것이다'라는 오만을 가장한 몰이해에 대한 한탄을 내뱉었겠는가.베토벤이라는 인물이 만약 내 곁에 있다면 난 아마 친구로 삼지 않으려했을 것이다.인간 베토벤을 감당하기란.

박교수는 베토벤을 문제적 인간으로 하지만 가장 인간적인 인간으로 묘사하고 있다.그가 귀족에게 적대적이었다거나 순결한 영혼의 정수였다는 식의 신화를 과감히 반박한다.그 텍스트는 롤랑의 베토벤 전기이다.박교수는 낭만화되고 신화화된 베토벤을 땅으로 내려보내고 음악노동자로서 우리와 함께 숨쉬는 부족하지만 노력했던 인간으로 자리매김한다.이러한 작업이 의미있고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는 반가운 일이다.하지만 아쉬운점도 있다.평전형식으로 실제 읽는 재미는 그다지 뛰어나지 않다는 것,그래서 선뜻 친구에게 추천해주기 어렵다는 점 또 짧고 깔끔한 문장의 맛보다는 노동법의 이해를 듣는 듯한 건조한 문장등은 비전문 작가의 한계로 보인다. 베토벤에 대한 가장 큰 이해는 역시'읽기'보단 '듣기'이다.

흐린 토요일 오후 텅빈 사무실.아이는 제르킨이 연주하는 피아노소나타 32번이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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