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는 남미 태평양 연안 남북으로 길게 뻗은 나라.수도는 산티아고.이게 대학 입학전 까지 칠레에 대해 알고 있던 전부다. 대학을 입학하고 우리 역사를 익히며 우리와 비슷한 제3세계의 존재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그 한복판에 칠레가 있었다. 이사벨 아엔데의 첫소설<영혼의 집>에는 칠레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이 소설은 델 바에 가문의 4대에 걸친 여인의 역사이자 칠레 사람들의 역사이다.특히 이 소설은 73년 아엔데 대통령의 인민연합이 군부쿠데타로 전복되는 역사적 사건을 중심 모티프로 하고 있다.물론 이 내용은 책의 후반부에 집중되어 있지만 칠레의 지식인치고 이 사건에 빚을 지고 있지 않은 자는 없었을 것이다.마치 80년대 우리작가들이 광주의 부채를 떨칠 수 없었던 것처럼. 칠레는 남미 국가중 노조가 일찍 형성되었던 나라이다.다른 국가들에 비해 구리광산이 발달하여 외국자본의 침탈과 그에 대한 자각이 비교적 일찍 형성되었던 곳이다.하지만 대부분의 남미국가처럼 대농장은 일부 지주와 교회가 90%이상을 점유하고 있었다.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에스테반 가문 역시 그런 대지주중에 하나이다. 에스테반은 보수적 지주의 전형으로 괴팍한 성격과 델 바예가문의 여자-로사와 클라라-에 끊없는 사랑을 갈구하는 다층적인 캐릭터로 그려진다.사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클라라-블랑카-알바로 이어지는 3대의 여성들이다.하지만 그 세 명의 여성과 함께 역사를 헤쳐가는 역할은 에스테반이 맡는다.그는 이 주체적이고 개성적인 여인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했다.그리고 역사적으로도 반동적인 인물이었다.하지만 칠레의 질곡의 역사를 헤쳐온 그는 소설적으로 충분히 매력적이다.남미의 환상적 리얼리즘의 전통은 클라라를 통해 이루어진다.영혼과 소통하고 미래를 예언하는 능력을 가진 클라라는 이 소설에 생기를 부여하고 긍정적 역사의 희망을 가능케한다.알바가 군부의 모진 고문을 극복하고 화해와 관용의 힘을 얻게 된 것도 바로 할머니 클라라의 힘이었다.블랑카는 세명의 여인중 젊은날의 연애행각을 제외하면 그다지 큰 감응을 불러일으키지는 않는다.오히려 그의 애인인 페드로 테르세르가 한 역사적 인물을 연상시킨다.그는 바로 칠레 누에바 깐시온의 대표적 인물.민중가수 빅토르 하라이다.페드로는 소작농의 아들에서 민중가수로 변신하여 민중적 신임을 얻는다.후에 그는 아엔데 정권에서 각료를 하고 쿠데타 이후 블랑카와 망명한다.이에 비해 현실의 페드로 테르세르,빅토르 하라의 죽음은 훨씬 충격적이다.쿠데타 후 잔혹한 고문끝에 대형스타디움에서 살해당한다.인민연합정권이후 전성기를 이루었던 남미의 민중음악-누에바 깐시온도 물론 피노체트 정권하에서 철저히 탄압받는다.이 소설의 인물들은 마치 살아있는 사람들처럼 역사의 강물속에서 꿈틀거린다.페드로 테르세르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준 신부는 남미해방신학의 전통을 일깨워 준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교회는 언제나 우익이었지만 예수는 좌익이었다'는 ....평자가 서평뒤에 논했듯이 살아있는 부수인물들은 이 소설이 역사소설임을 느끼게 한다.극좌모험주의자에 가까운 알바의 애인 미겔,미천한 신분에서 포주로 정계까지 움직이는 여인,클라라에게 인간적 애정을 느끼는 페드로의 아버지,미겔의 모험주의에 반대하는 외삼촌등..주인공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수많은 민중들의 모습은 역사가 단지 몇몇만이 모인 강물이 아님을 은유한다.남미는 지리상의 발견 이후 수탈의 앞마당이었다.유럽의 수탈이 끝나고 어렵게 독립을 쟁취했다.하지만 머리 위엔 미국이란 잡식성 거대괴물이 있었다.그들은 남미 민중의 안위는 관심이 없었다.매판자본과 군부를 지원하며 제국의 보급창고로 이용하였다.시에라 마에스트라는 혁명전설을 남긴 쿠바는 고군분투하며 미국에 맞섰으나 선거를 통한 민주적 절차를 거친 칠레의 사회주의 정권은 73년 처참한 최후를 맞는다.그 후 피노체트의 10여년에 걸친 장기집권과 실권.영국망명으로 부터의 소환.칠레의 역사도 우리의 역사처럼 피와 살육의 역사였다.그래서 우리에게 그들의 심정이 그들의 눈물이 그들의 희망이 형재의 그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