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퇘지 - 양장본
마리 다리외세크 지음, 정장진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나의 외갓집은 농사를 짓는다.그곳에는 돼지 우리가 있었다.어느 더운 여름날 외갓깁을 찾았을때 그 안에 누워있던 암퇘지는 내게 실로 충격이었다. 내가 동화책이나 아기동물원에서 본 돼지들과는 규모가 달랐다. 임신을 한 상태여서 더 비대해보였겠지만 우리 한 켠에 누워있는 암퇘지는 안방에 있는 장롱만했다.그리고 냄새는 어찌나 지독하던지 그동안 아기돼지 3형제에 대해 갖고 있던 애정이 썰물빠지듯 사라졌다. 이 소설<암퇘지>를 보며 지금은 세상에 없을 그 암퇘지를 생각했다.

사람이 다른 동물로 변한다는 소재는 그다지 새로운게 아니다.그리스 로마신화에도 신들이 툭하면 동물로 변해서 몹쓸짓을 한다.헐리웃의 영화들중에도 그런 소재에 대한 것은 부지기수다. 이 소설 <암퇘지>는 20대의 매력적인 여자가 부지불식간에 돼지로 변하면서 바라보는 세상을 그리고 있다.그리고 대부분이 그렇듯이 그녀의 눈으로 바라보고 경험하는 지긋지긋한 인간들과 그들이 만든 세상에 대한 풍자가 가득하다. 하지만 그러한 풍자가 독자에게 얼마나 설득력있게 행사되는가의 문제이다.그 점에서 이 작가의 힘이 조금 밀리는 듯 하다.

우선 작가가 그리고 있는 세상의 리얼리티가 초반부에는 살아있다. 직업을 얻기 위해 성을 매매한다거나 향수가게에서의 성공을 위해 나름대로 애를 쓴다거나..등등 . 그러나 소설의 주인공이 돼지로 변해가는 중반이후 뜬금 없이 종말론적인 세상이 그려지고 있다. 선거에 출마할 정치인이 뜬금없는 난교파티를 열고 아프리카 주술사가 등장하여 설득력없는 이야기를 펼친다.독재자가 된 정치인은 종교단체 대표에게 살해당하고..등등

종말론적 세상을 그리는 것이 전혀 문제가 될 것은 없다.하지만 그 종말론적 세상에 대한 묘사라든지 그렇게 밖에 될 수 없었던 상황등에 대한 설명은 전부 빠져있으니 독자로 당혹스럽다.고대소설의 특징인 '어느날 갑자기 하는 식'으로 등장하는 우연성을 현대의 독자에게 강요하려면 더 많은 작가의 노력이 필요하거나 아님 더 많은 독자의 상상력이 필요할 것이다.그러한 점에서 사실적인 환타지위에 서 있으면서도 종말론적인 위기감으로 끝까지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았던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와 비교해 볼 만하다. 아직 사라마구의 내공을 넘기에는 작가의 연륜이 한참 딸리는 듯 하다.

또 한가지 이 소설은 마조히즘적인 불쾌감을 가져온다. 굳이 성적인것만으로 치환할 필요는 없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상황에 절대 주체적으로 나서지 못한다. 물론 돼지로 변하고 있는 자신의 상황을 체크하는데도 정신 차리기 힘들었겠지만... 소설의 주인공은 처음부터 외모와 성이라 자본주의의 상징을 통해 부적절한 방법으로-써 놓고 보니 이상하다.요즘은 다들 그러지 않던가?-직장을 얻는다.그 이후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자각이라든지 하는 것은 없다.

변태적인 행위를 시키든 말든 어디로 끌려가든 말든...어떻게든 그 체제의 끝을 따라가려는 의지와 원래로 돌아가려는 의지만이 가득할 뿐 정신적인 각성이나 주체적인 대응이란 것은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외모가 돼지로 변하기 전부터 그녀는 돼지의 습성을 닮아가고 있었을런지 모른다.지독하게 수동적이던 그녀는 소설말미에 가서 드디어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기 시작한다.그것도 돼지가 됨을 인정한 후 가끔 인간으로 변하기 위한 정신의 집중일 뿐이다.

인간이 주체이기를 포기한 상태 아니 포기를 강요당하는 상태 흔히 말하는 인간소외이다.작가는 끝까지 인간됨의 자발적의지에대해 간과하며 넘어가고 만다.작가의 회의주의가 낭만적 그것의 발로가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선 조금더 깊은 현실에 대한 성찰과 독자에 대한 설득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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