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선옥, 마흔에 길을 나서다
공선옥 지음, 노익상·박여선 사진 / 월간말 / 2003년 7월
평점 :
품절


공선옥은 조금 특별한 작가이다.왜냐하면 동시대의 여성작가중 유난히 지지리궁상을 떨기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의 궁상맞음이 하이힐에 뽀얀 화장빨보다 아름다운 건 왜일까? 아마도 그녀의 삶과 그녀의 소설이 일관된 지향점을 가지고 있기때문일 것이다.물론 소설가의 삶과 소설이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소설가에게 꼭 칭찬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90년대 도회적 감성의 소설가들에게선 느낄 수 없는 짱돌(?)같은 힘을 그녀에게선 느낄 수 있다. 그녀의 글에선 '나의 30대를 이끌어 준 가장 소중한 것은 자동차였다.마음이 산란할땐 몇분간의 드라이브로 나를 어디든지 데려주니까.. '라는 투의 잡스럼을 만나지 않아서 좋다.

그녀답게 걸었다.나이 마흔에.물론 먼길이야 멀미냄새나는 시외버스를 탔겠지. <말>지에서 변변치 못한 노자돈을 주었다고 한다.아마 정말 변변치 못했을게다. 하지만 뚜벅뚜벅 걷는 노상에서 낯선 버스정류장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연들을 만나게 되는지...혼자 여행하길 즐기는 나로서는 그녀만큼은 아닐지라도 그 즐거움에 대해 공감한다.글을 읽으며 자꾸 영상이 그려지는건 아마도 개인적 기억들을 이리저리 조합하며 또 하나의 유사기억들을 만들고 있어서였을것이다. 즐거운 가짜 기억만들기 놀이..^^

그녀가 만난 사람들 흔히 말하는 진짜 토종민초들이다.물론 시골을 다니다 보니 나이많은 풀들이 많았을건 짐작이 간다.황혼녘의 깊은 골이 박힌 풀들...나는 옛날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기사를 보면 맘이 짠해진다. 우리의 현대사가 오죽 각박했는가. 알고도 죽고 모르고도 죽고 때리면 맞고 풀어주면 기어나오고 ...그 험난한 세월을 살아온 사람들의 투박한 손주름과 이마에 박힌 세월의 골짜기가 맘을 짠하게 한다.

공선옥은 그들을 만나며 그들로 부터 또 무언가를 얻어오고 있는 듯 하다. 걷다보면 길이 나오고 길이 나오면 언젠가 도착할 곳이 생긴다고 했던가. 무언가 나서길 두려워하던 우리에게 시골에 난 지방국도를 걷고 있을 키작은 노인은 그렇게 말한다. 머리에 하얀 수건을 묶고 그 위로 흔히 말하는 다라이-일본말인거 안다.하지만 다라이가 더 어울릴때도 있다.-를 이고 가는 할머니 사진.세월의 풍상을 견뎌낸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처연함. 그 모진 시간과 고난들을 어찌 내가 짐작할 수 있겠나.

공선옥은 도시 한 켠 그녀가 몸담았던 그 후미진 곳들도 애정을 갖고 찾는다.대표적 공단 지역인 가리봉동.과거 그녀가 상경하여 머물렀던 곳이라고 한다.이제는 외국인 노동자가 그녀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공선옥의 지지리궁상이 또 빛을 발하는 것은 이 지점이다.그녀는 피부색이 다른 그 외국인노동자들이 지금은 그곳을 떠난 중산층 사람들보다 더 동일시 된다는 것이다.( 만국의 노동자는 단결해야하기 때문일까? ^^) 사

실 우리는 그들보다 매일 술자리에서 노가리 씹듯 씹어대는 직장상사나 경영주들을 은근히 닮고 싶어하진 않는가? 언제나 그 자리 올라가나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사실 그 외국인 노동자들이 우리와 더 가깝지 않은가? 그들도 본국의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밤샘야근을 하고 먹을것 안먹고 피땀흘리며 일한다.우리같은 월급쟁이들도 술한잔 쏘려다가도 이거면 우리아이 기저귀가 몇개인데 하며 슬그머니 지갑을 돌려넣는다. 그런데 좀 산다는 자들은 어떠한가? 몇천만원짜리 밍크코트는 기본이고 값비싼 외제차에 초호화 아파트에... 도대체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그외에도 공선옥은 전방에서 군인도 만나고 미선이 효순이 가족도 만난다.자신이 살았던 여수근처의 숨은 곳도 찾아본다. 이 모든 여행이 실제로 많이 걷는 여행이었으리라 짐작된다.<걷기예찬>이란 책에 보면 걷는 다는 것은 자기 존재가 세상과 직접적으로 대면하는 것이라고 한다.공선옥은 이 여행을 통해 분명히 우리곁에 있지만 잊고 지내는 사람들과 대면하고 있다.그리고 그들의 생명력을 통해 우리에게 또 하나의 선물을 선사하고 있는 것이다. 삶이란 이렇게 살아있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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