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힘
성석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7월
평점 :
품절


기승을 부리던 무더위가 매미소리와 함께 사라지고 있다.계절의 순환은 인간의 간사함과 다른 것이라 기다려도 기다리지 않아도 그 도를 다함에 정직하다. 몇주전 바닷가가 마치 개미들의 천국인양 번잡할때 성석제의 소설을 만났다.유니크한 단편소설의 작가 '성석제'. 그는 80년대 후일담의 감성만을 퍼붓는 386세대(이 단어가 맘에 안들고 어폐 가 있지만 인구에 회자되는 관계로 사용한다.)여성작가들의 틈바구니에서 특히 빛나는 소설가였다.그는 소설읽는 재미가 무언지 알게 해주는 이 시대의 몇안되는 작가중에 하나이다. 그가 장편소설 한 권 독자에게 선사했다.

<인간의 힘> ..왠지 그가 그동안 다룬 단편소설의 제목과 비교해서 섬뜩한 무게감이 느껴졌다.그의 단편은 주로 반푼이 인생들을 다루었다.무언가 모자라고 무언가 기벽적인 사람들.그러면서도 그들의 삶을 통해 삶의 모순과 진실을 따뜻하게 보여주었다. 그의 해학적인 표현을 즐겁게 따라가다 보면 종장에 와서는 무언가 허해지는 느낌,고개를 끄덕이는 경험을 공유한 독자가 나 만은 아닐것이다. 그는 해학과 풍자,비꼼을 통해 독자가 삶을 관통하는 무언가에 대해 함께 웃기를 권했다.

그의 장편 <인간의 힘>은 조선 인조시대를 배경으로 한다.시골의 힘떨어진 양반 '채동구'가 우리의 주인공이다. 소설 전반부는 몰락한 양반으로 그럴싸한 대접 한 번 제대로 받아보지 못한 채동구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채동구의 세번의 상경.애써 분기탱천했으나 돌아오는 것은 하나도 없는 칠삭동이 짓. 그게 바로 채동구의 행색이며 또 의롭게 무언가를 했으나 개인적으론 아무것도 얻은게 없는 다수의 민중들의 모습이다.

지금 세상과 빗대어 보면 너무 지나친 과장일까? 2003년 몇몇 운동엘리트들은 국회에서 마치 진보세력의 적자인양 행세하며 함께 일했던 동지들은 비서관이니 참모니하며 하나둘 국회 언저리에 머물고 있다.그들과 뜻을 함께 했던 수많은 무명의 채동구들은 지금 어디서 무었을 하고 있을까? 그들의 뜻이나 의지,지혜가 운동엘리트들만 못했을까? ....(어쨋거나 운동엘리트 몇몇 국회 보낸다고 사회변혁이 이루어지진 않는 것이고 세상엔 아직도 무명의 채동구를 필요로 하는 곳이 많으니 청년이여 슬퍼하지말고 분기탱천하자.)

채동구의 어리버리 행각이 지루할때 쯤 이 소설은 드디어 힘을 내기 시작한다.성석제의 힘이 시작되는 것이다. 채동구의 마지막 상경... 그리고 자진한 청국행. 작가는 소설 후반에서 채동구의 힘이 무었이었는지 '인간의 힘'이 무었인지 넌지시 건네고 있다. 내 작은 생각엔 인간의 힘은 결국 '삶의 진정성'이 아닐까한다.사욕에 흔들리지 않는 우익을 진정한 보수라고 한다면 채동구는 현 시대에 사라졌다는 진정한 보수세력이다.당시 시대적 상황에 채동구의 척화가 역사적으로 옳다고 볼 수 는 없다.하지만 채동구의 '진정성'은 그의 삶의 힘이었고 또 평생을 걸만한 인간의 힘이었다.

도종환님의 시중에 어느 노교사에 관한 시가 있다.시인이 전교조활동하면서 쓴 것 같다.너무 오래되어 기억나진 않지만..대충 내용이 이랬던 것 같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난 힘도 약하고 겁도 많고...남앞에서서 멋진 말로 독려할 웅변술도 없고... 하지만 가장 나중에 까지 남아있을 순 있다.남들 다 됐다고 돌아가야 겠다고 할 때라도 끝까지 남아있을 수는 있다.' 뭐 그런 내용이었다. 가장 나중까지 남아있을 수 있는 힘.그게 인간의 힘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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