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포르투갈은 우리에게 낯섬, 그 자체이다.내 주변에 포루투갈로 이민간 사람이나 유학 간 사람이나 행여 포르투갈 대사관 근처에 사는 사람조차 하나 없다.내가 기껏 안다는 포르투갈에 대한 정보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는 피구.새 대표팀 감독 코욜라.... 그런데 우연히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다.. 주제 사라마구를 만났다.

물론 그의 이름은 익히 알고 있었다.(그래 봤자 퀴즈용 상식이다.)
----사회자: 포르쿠갈의 대표적 문호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이 사람은?
---- 나:(남보다 빠르게) 정답 !!! 주제 사라마구..

본다는 행위 자체는 의식 이전에 선행되는 행위이다.우리는 사물을 봄으로써 그 사물을 인식하고 또 그 사물에 이름을 짓는다. 그런데 작가는 선의식적인 봄이란 행위 자체가 가지는 우월성(?)에 제동을 건다. 그리고 '본다'라는 행위 자체가 거세된 사회에서 발생하는 폭력을 통해 우리 안에 잠제해 있는 하이드씨의 존재를 '보게하는' 것이다.

물론 제한된 사회적 공간을 통해 보편적인 인류의 폭력성에 대한 은유를 보여주었던 작품들은 한 둘이 아니다.그러나 이 작품이 더 섬뜩한 이유는 그 끝이 없을것같은 종말론적 분위기때문이다.마치 예전에 보았던 핵전쟁이후의 사회를 그린 '그날 이후'를 보고 났을때처럼 음습한 느낌.

특히 의사의 아내가 가졌던 불안감은 내게 근원적 질문이 가져오는 불쾌감을 던지고야 말았다.그녀의 불안감은 단지 눈이 먼다는 것만을 의미하진 않는다.그녀 역시 눈이 멀게 되면 점점 생존만이 최고의 가치가 되어 달려가는 몰의식적인 사람이 될 것이라는 불안감에 치를 떨었다.

질문을 던져본다.모두가 인간이기를 포기한 사회에서 인간으로 남는 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과연 의미가 있기나 한 걸까? 혹자는 쉽게 너무나 쉽게 당연하지 인간이라면 그래야지..라고 답할 것이다.또 아닌 사람도 있을것이다.(너무 쉽게 대답하는 사람은 신뢰하지 않지만..)

그런데 이미 세상은 점점 인간이 인간이기를 멀리하도록 돌아가고 있진 않은가? 그 행렬에 포함되어 하나라도 나의 몫을 빨리 챙기는 것이 현실적이고 현명한 길임을 세상은 가르친다.그럼 나는 먹이를 찾아 유령처럼 헤메이는 눈먼자들의 도시 사람들과 무었이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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