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비어천가>에는 이런 아름다운 표현이 나옵니다. 

"불휘 기픈 남간 바라매 아니 뮐쌔, 곶 됴코 여름 하나니.
 새미 기픈 므른 가마래 아니 그츨쌔, 내히 이러 바라래 가나니."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휘며, 꽃도 좋고 열매도 많이 열립니다.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마르지 않으며 내를 이루어 흘러 바다로 갑니다  

 저는 지속적으로 이 싸움이 '알라디너와 알라디너'의 싸움이 되는 것을 경계해 왔습니다. 찬성과 반대는 어디에나 있고 때로는 악의적이거나 왜곡된 비난에는 마땅히 대응해서 그 뜻이 어디에 있음을 밝혀내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큰 흐름에 있어서 작은 하나의 줄기일 뿐 그런 찬성과 반대의 성명전이 이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닐겝니다.  

사람들은 좋을 때, 누구나 다 좋은 사람입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한 사람의 가치는 그에게 위기가 닥쳤을 때, 삶의 고난이라는 운명적인 풍랑을 만났을 때 비로소 드러납니다. 존재론적으로 말하자면 '한계상황'일 수도 있겠지요. 서양 철학중에는 그 지점에 '죽음'을 상정해 놓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가 책을 읽고 인문학을 공부하는 것은 책 위에 적혀 있는 문자만을 이해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이마미치 도모노부의 뛰어난 책 <단테의 신곡 강의>에는 '고전'(즉 클래식)에 대한 의미있는 해석이 나옵니다. 이 말은 '클라시쿠스'라는 형용사에서 나온 말인데 이것은 '함대'를 의미하는 '클라시스'라는 명사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저자는 결론에서 '인생의 위기에 당면했을 때, 정신적인 힘을 주는 책이나 작품'을 '고전' 즉 클래식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 경계를 좀 더 해체해서 '독서'나 '책읽기'까지로 넓혀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것은 책이나 인문학이 가진 중요하지만, 또한 여러가지 기능 중 한 가지 역할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알라딘 불매참여자든 비참여자든 모두들 책을 사랑하는 분들이고 그 만큼의 깊은 생각과 뜻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서로를 향해 아무런 생명도 살지 못하는 그런 마른 강바닥을 드러내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천 권의 책이 모래 바람처럼 귀를 빠져나갈뿐입니다.  

다시금 읽어 봅니다. 

"불휘 기픈 남간 바라매 아니 뮐쌔, 곶 됴코 여름 하나니.
 새미 기픈 므른 가마래 아니 그츨쌔, 내히 이러 바라래 가나니."  

알라딘 불매운동이 어떤 분들에게 불편함을 드린다는 것은 맞는 이야기일겁니다. 그런 분위기를 만든 것은 일단 미안한 일입니다. 하지만 알라딘 불매운동에 참가하는 사람들 어느 누구도 '불매를 권유' 하거나 '구매를 비난'한 적은 단 한번도 없는 걸로 압니다. 실제로 불매를 선언해놓고 구매를 하더라도 이를 강제할 아무런 방법도 없습니다. 알라딘 불매운동은 알라딘 불매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선언이고 실천입니다. 그러므로 알라딘 불매운동에 어느 수위에서든 뜻을 같이 하지 않는다면 자유롭게 구매하고, 또 연말에 많아진 이벤트의 혜택을 누리셔도 아무도 비난하지 않을겝니다. 그렇다면 '그래도 너네들 속으로 비난할 거잖아' 라고 하실 수도 있겟지요. 그런데 발화되지 않는 '속마음'까지 어느 누가 감히 요구하고, 어느 누가 개선 시킬 수 있겠습니까. 그것까지 바라는 마음을 현실로 강제화하려고 할 때 그것은 매우 위험한 폭력이 될 겁니다.   

사마천의 <사기>에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치솟아 오른 용은 떨어지기 마련이며, 채워진 달은 기울기 마련이다." 무상한 권력에 대한 은근한 비판입니다만 세상 사의 모든 일이 그와 같습니다. 불매운동도 시작이 있었기 때문에 그 끝이 있을 겁니다. 그걸 모두 압니다.  농부가 봄에 씨를 뿌릴 때는 모든 싹들이 잘 자라주기를 바라는 신심을 갖고 정성을 다합니다. 하지만 그 결과를 언제나 만족스럽게거둘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마다 농부가 씨를 뿌리는 것을 멈추거나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걸 모두  압니다.

저는 알라딘에서 사태를 바라보는 많은 분들이 이 일로 인해 알라디너들 사이에 반목이 심해질 것을 우려하시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해결책을 찾아 보려는 마음 역시 이해합니다. 따뜻한 진정성 역시 고맙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마음은 조금 더 기다려주시는 인내의 그릇에 담아두셨으면 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모든 운동은 시작이 있고 그 끝이 있습니다. 그것들을 상황이 또는 국면이 또는 알라딘 불매자들의 전체적 의견이 결정할 것입니다. 행위를 참가한 것도 그들의 의지이며 행위를 중지하는 것도 그들 개인의 의지입니다.  

알라딘 불매운동을 어떤 수위에서 이해하고 어떤 수위에서 찬성 반대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대신 제가 -편의상 불참자라고 하겠습니다.- 바라는 점은  전체로 봤을 때 소수에 지나지 않는 불매운동자들에게 침을 뱉지 마시기 바란다는 겁니다. 누군가 거리에 앉아서 파업을 하고 있으면 그들에게 호의를 보내주지는 못하더라도 시각적인 약간의 불편함과 조금 피해가야하는 불편함 때문에 '뭐야 시끄럽게. 저기 딴데로 가서 하던지' 라고 침을 뱉어서야 되겟습니까. 그것이면 족합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알라딘에서 불매운동자들 보다 더 소수이지만 악의적인 방식으로 이 문제를 조롱하고, 비난하는 분들께 그래서 상처를 주며 또 상처를 받게 될 분들께, 아주 오래된 시 한편을 인용하며 글을 맺겠습니다. 을지문덕은 우중문에게 일곱 번을 져주었습니다. 3행의 '전승공기고'는 그런 뜻입니다.

 여수장우중문시(與隋將于仲文詩)
                           

                         을지문덕(乙支文德)

神策究天文(신책구천문)
妙算窮地理(묘산궁지리)
戰勝功旣高(전승공기고)
知足願云止(지족원운지)



그대의 신기(神奇)한 책략(策略)은 하늘의 이치(理致)를 다했고,
오묘(奧妙)한 계획(計劃)은 땅의 이치를 다했노라.
전쟁(戰爭)에 이겨서 그 공(功) 이미 높으니,
만족(滿足)함을 알고 그만두기를 바라노라   

**추신) 알라딘 불매 참가자분들은 테마카페에 김종호씨의 글이 올라왔으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물론 진위여부 부터 설왕설래가 이어지겠지만 '뿌리와 샘'을 생각하며 '평상심'을 유지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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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9-12-15 12:36   좋아요 0 | URL
마지막 한시는 제가 많이 좋아하는 한시입니다.
(여수장우중문시- 써먹을 때가 제법 많아서요..ㅋㅋ)

드팀전 2009-12-15 12:38   좋아요 0 | URL
한국의 명문 중에 하나이지요. 학교 다니며 다 배우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