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대략 48시간 정도의 냉각기를 가졌습니다.
바스타님의 반론을 불러 일으킨 제 글도 다시 한번 읽었습니다. 또한 바스타님의 첫 번째 반론 역시 다시 한번 거리를 두고- 아니 미심쩍은 마음은 있지만 반론을 지지하는 입장의 애정을 가진 시각으로- 읽었습니다.
결론 부터 말하자면 제가 건너뛰며 읽었던 부분도 있었고, 제가 반비판을 해야한다는 생각이 앞서 형식적 공감 밖에 드러내지 못한 부분 중에서 고개를 정말 끄덕이게 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처음 뵙는 분의 실명 비판에서 느껴지는 불유쾌함같은 것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제 알러지 반응을 불러 일으킬 만큼 예의에 어긋난 글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글 전체에 공감의 내용이 훨씬 많음에도 유독 마지막 두 문단에 대해 집중적으로 길게 대응한 것부터가 제 스스로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여기에는 세계관의 차이 같은 것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다름으로 충돌도 하고 적대도 하게 됩니다. 저와 바스타님 역시 어떤 부분에서 분명히 다른 이념이나 대응방식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중에는 어디까지는 함께 갈 수 있지만 어느 선에서는 헤어져야 하는 지점도 생기리라 봅니다. 제 세계관과 바스타님의 그것도 그런 운명의 도상에 있을 겁니다. 그런면에서 기본적으로 바스타님이 가진 세계관과 그에 따른 진정성이라는 부분을 제가 좀 더 긍정적으로 수용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쿨링오프과정에서 이야기 과정을 조망하면서 한편으로 들었던 생각은 바스타님의 진정성이란 것을 제가 토론과정에서 드러날 수 있는 몇 가지 취약점들을- 대개의 모든 이념형이나 주장들은 그런 것을 반드시 갖게 됩니다- 부각하고 언어적으로 포획해서 공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저는 바스타님이 전체적으로 취하시는 스탠스가 대중들의 운신을 폭을 좁힐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 점은 사실 이 사안을 둘러싼 '철학적' 입장이지 이번 사건에 대한 건은 아닙니다. 제가 바스타님이 '정의'의 문제를 거론하시면서 이 문제를 '철학적 함의'로 넘기셨다고 했는데 다시 재독해보니 '철학적 함의'에 하이라이트를 치고 그것을 더욱 확대한 것은 저 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의'라는 것에 대한 입장에 묘한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그것을 거론하고 그것에 의지하는 것이 잘못은 아니기 때문이지요. 제가 사건을 텍스트화하지 말라고한 것은 앞서 말했듯이 다른 분의 페이퍼에 제 글이 인용되는 것을 보고 경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스타님과의 이야기 과정 속에서는 제가 사건을 텍스트화하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음을 알게되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바스타님은 제게 좋은 경험을 일깨워 주신 셈입니다. 앞으로도 스스로 경계할 수 있을 경험으로 기억될 듯 합니다.
제가 '알라딘 불매운동'에 부정적이었던 것은 사실 그 결과에 대해 회의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최소한 개인적 반항이 아니라 조직적 운동이 된다는 것은 그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이- 고루하지만- 제 생각입니다. 예를 들어 촛불 과정에서 다중적 운동과 그 결과를 대하는 참여자들의 태도에 비판적이었던 것도 그런 것과 관련이 됩니다. 최소한 그 운동이 흐지부지 된 것에 대해 누군가 무릎을 끓는 사람이 하나쯤 나와야 하는데 '그래도 우리는 승리했다'라는 자찬연이 사실 씁슬했기 때문입니다. 행여 불매운동 역시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감 같은 것을 저는 지금도 여전히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 역시 궁극적으로는 '비관/낙관' 사이에서 운동의 낙천성을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 한결 같이 운동을 낙관하고 긍정하고 나를 따르라는 철인형 운동가는 아닙니다. -운동 초기에 생기는 비관적 전망은 개인적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람시가 말하는 '의지의 낙관주의' 에 대해 저는 믿는 편입니다. 물론 더 요구하는 분들은 '의지의 낙관이 아니라 의지 자체가 이미 과학이 되어야한다'라고 말하곤 하지만 말입니다.
상황을 좀 거리를 두고 보면서 의외로 제가 발견한 사실도 있습니다. 제가 스스로에게 요구해버린'도덕주의 딜레마'라는 겁니다. 어떤 일에 종사하시고 어떤 사업장에 계신지는 알지 못하겠습니다만 전 사기업에 있는 사람입니다. 저희 회사도 비정규직들이 꽤 있습니다. 주로 젊은 친구들입니다. 제가 그들에게 해 줄 수 있는건 '밥 잘 사주기' '퇴근 빨리 시켜주기' ' 시간 외 싸인 쉽게 해주기' 정도입니다. 가끔 경영팀에서 시간 외를 가지고 어필하는데 대충 '진짜로 애들 일 많아요' 하면 더 확인 못합니다. 하지만 비정규직이라는 존재에 대해 제가 저희 회사 전체에 어필하지는 못합니다. 전 정치라는 것에 '도덕'의개입에 대해 좀 부정적입니다. 물론 '도덕' 외에 무었이 있느냐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다지만 오히려 그 '도덕'이 한국사회에서 보수적 가치의 옹호로 악용되기 때문에 정치에 '도덕'의 이름을 사용하는데 조심스럽습니다. 그런데 저 역시 '도덕'의 이름에서 완전히 자유롭진 못하다는 겁니다. 즉 내가 다니는 회사의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별말 못하며서 다른 회사- 알라딘-에 대해 무슨 말을 해야 하나...하는 식의 '도덕주의 딜레마' 말입니다. 물론 공기업이나 사회단체, 비영리 기업들에 계시는 분은 이런 '도덕주의'에서 조금 더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습니다만 대개 회사원이거나 노동자들이라면 모두 한번 쯤은 부끄러워하게 됩니다. (제가 처음에 썼던 페이퍼에도 그런 내용이 나오더군요.) 이게 스스로의 발목을 잡는 도덕주의의 딜레마인데 거기에 걸쳐있던 거지요. 실제로 저는 노조에서 레닌이 펼쳤다는 '외입론'을 주장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 회사 노조와 노조원들이 눈치보기나 경직됨으로 인해 문제를 돌파할 수 없을때 외부의 유사 단체를 통해 압력을 넣고 노조를 추동하자는 방식 말입니다. 노조는 마지 못해 움직이는 척 하면서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고 활동 공간을 넓혀가는 거지요. 사실 제안은 여러번 하지만 사실 작동된적은 거의 없습니다. 어쨋거나 논쟁을 재독해 하는 과정에서 저를 잡고 있던 도덕주의딜레마를 보게 된 것 역시 발견일 수 있겠습니다. 논쟁 과정이 제 쪽의 흥분과 과장 속에 매끄럽지 못했지만 이런 것들을 추수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바스타님께 감사드립니다. 이야기 과정 속에 본질과 관련없이 상호 간에 찔러댄 서툰 창질에 대해서는 제가 먼저 사과드립니다.
마지막으로 바스타님의 여러가지 비판과 주장들 중 부차적이고 감정적인 것들을 삭제해 내고 행동의 측면에서,그리고 사건의 측면에서 보자면 이런 말이 남습니다. '당신은 어쨋거나 유보적인 태도를 취했다. 좋다. 거기까진..그렇다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느냐' 제가 rosa님께 남긴 댓글에도 '알라딘 반대'가 아니라'잠정적 유보상태' 임을 언급한 내용이 있습니다. 좋은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바스타님의 아드리아네의 실은 알라딘 전체에도 이 문제를 재점화하는데 일정 정도 성공을 거두었으며, 또한 유보라는 미적쩍한 상태로 그냥 잊고 지나가던 제 말과 기억에도 점화하신셈입니다.
시간이 많지 않을 것으로 압니다. 알라딘 불매운동이 운동의 한 방식이지만 최선책인지, 더 효과적인 방식은 없는지 고민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저는 이 땅에 함께 사는 노동자로서 비정규직 노동자분들에게 상처를 주고자 하는 마음은 조금도 없습니다. 제가 남긴 페이퍼의 글들이 그 분들께 어떤 서운함을 남겼다면 부족한 글의 헛점으로 여기며 사과드립니다.
이 시점 부터 알라딘 불매운동에 개입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