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네팔, 라오스, 산티아고 가는 길, 올레길, 걷기, 유기농식품, 사진, 전원 생활, 황토집, 한옥, 자연요법...            

 이런 것들은 '가치'를 팔고 있는 상품은 아닌가? 이것들은 전체적이고 획일적인 구조와 취향을 헤치고 나가려는 또하나의 획일화되는 트렌드 아닌가? 이 모든 것들을 좋아하는 것은 유별난 것 처럼, 또는 탈세계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도시인들이 대개 한번 쯤 꿈꾸는 자기 미래에서 불러들인 노스탤지아와 중첩 되는 것 아닌가?  그것은 회색 도시인들에게 여름철 내놓은 시루떡처럼 쉽게 부패하고 마는 그런 꿈들은 아닌가 ?  

 언젠가 본 잡지가 기억난다. 도발적인 제목때문에 읽게 된 기사가 있었다.짧은 기억력으로 복원해 보자면 "나이들 수 록 도시에 살아라. 그래야 늙지 않는다." 였다. 뉴욕에 사는 어떤 이국의 칼럼리스트가 쓴 글이었다. '나이들면 시골가서' 라고 먼 미래를 가상하는 사람-나도 그런 공허한 말을 자판기에서 커피 빼먹듯 뱉곤 하는 위인인데-의 입장에서 자못 도전적이고 설득력 있는 기사였다. 노자와 장자의 '자연주의'사상에 대해 그리스인들의 후예보다 친화적인 동양-그리고 한국-에서는 분명 먹힐 만한 기사는 아니었다. 특히 나이들 수 록 더욱 '동양 고전'에 친화적이어야 더 후숙되는 것 처럼 느끼는 많은 이들에게는 말이다.   

사람들은 현역에서 은퇴 후 명품 타운 하우스의 여유로운 삶은 아니어도, 양지 바른 작은 양옥집에서 새소리를 들으며 깨는 자신을 그린다. 화초도 키우고, 취미활동도 하고, 산책도 다니는 삶. 지인들이 가끔 찾아와서 뜸뿍새 소리와 함께 술잔을 기울이다 "아이구..이런데 살면 좋겠네." 라고 흥을 북돋아 줄 수 있는 그런 삶 말이다.  그런데 억새밭의 은빛을 연상시키는 머리칼을 가진 벽안의 칼럼리스트는 오히려 도시에 사는 노년을 추천하고 있었다. 사실 도시에 살아 봐야 좋을 것이 하나 없다는 생각을 가진 나였지만 '도시의 노년'에 대한 장점을 보고 싶긴 했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좋은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문화적 경험과 도시의 역동적인 관계를 중요시하는 것으로 기억된다.   

먼 미래에 자연에 파묻혀 사는 즐거움을 꿈꾸는 것도 좋지만, 또한 도시에서 잘 늙는 방법은 무엇인지도 생각해 보면 어떨까?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꿈꾸는 것 만큼 전원생활을 즐길 수는 없을 것이기때문이다.)   

 여행지로 인도도 좋고 네팔도 좋으리라 생각된다. (나는 몇 년전 티벳 출장의 기회가 날아간 것에 대해 무척 안타까와 하고 있다.) 그곳은 정말 영적 에너지가 오뚜기 배 모양만큼 충만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곳에 대한 붐은 우리들이 계발해낸 것은 아니다. 원통하고 야속하겠지만 서양인들의 오리엔탈리즘이 발견해낸 곳이라는 점은 이미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그렇다고 그곳이 가진 영성이 훼손되지는 않을 것이다. 영혼의 정화수를 뒤집어 쓴 감동받은 여행자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면 기분을 잡치게 하는 것일 게다. "니가 안가봐서 그래" 라는 대답을 쉽게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자기의 영적 쇄신이 오로지 내적 발현에 의한 것 만은 아니라는 점은 무언가 찝찝함을 남긴다. 그 찝찝함은 역으로 '여행자의 겸손'으로 바뀔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무언가 대단한 것을 얻은 척 하지 않는 여행자의 '겸손' 말이다. 그 곳에도 삶이 있고, 투쟁이 있고, 애욕이 있고, 모함이 있고, 협잡이 있고, 사랑이 있고, 아픔이 있을 것이기에...  전원 생활이든, 낯선 풍광으로의 여행이든 우리는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한 자기투사의 여행을 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산티아고를 다녀와서 인생이 달라졌다는 사람들은 나는 믿지 않는다. 산티아고의 할아버지가 크리스마스날 우리집을 방문하셔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홍보하는 책들도 다 홍보맨들 특유의 과장법이라고 밖에 생각하지 않는다.(어떤 출판사나 여행사가 이런 삐뚤어진 반응에 열 받아서 '내가 널 거기 보내 줄 테니 정말 바뀌는 지 안 바뀌는지 가봐. 얼마나 감동적인데' 라고 말하며 보내준다면 꿀떡받아 먹겠다. 산티아고가 아니라 제주도라도 말이다.) 그것은 군을 제대하고 나서 3개월쯤 지난 뒤에도 여전히 6시가 되면 자동기계처럼 기상한다는 말처럼 들릴 뿐이다. 

 이런 생각을 한 건 오랜 만에 서점에 갔기 때문이다.  

 서점에 가면 겨울철 버스 정류장 앞 오뎅 리어카 처럼 여행서 진열대가 분주하다. 그 옆에는 떡복이 속 흰 계란처럼 각종 '전원생활의 즐거움들' 이 탱글거린다. 이 곳도 꽤나 손을 탄다. 예전에 여행서는 주로 서유럽 일색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인도,네팔 그리고 이어서 북유럽, 남미...그리고 아시아의 오지들. 아프리카... 다음은 어디쯤일까?  아이슬란드나 마다가스카르...혹은 아프카니스탄.  

충북 진천 농다리 인근이 내가 나중에 들어가면 좋겠다고 생각한 곳이다. 옛말에 "생거 진천, 사거 용인" 이라 했다는데 사실 "생거 아파트, 사거 납골당" 이 될 가능성과 계속 실랑이 중이다. 그리고 이러다 말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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