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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평전 - 부치지 않은 편지
이윤옥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서른 셋에 죽은 김광석 보다 오래 살았다. 나보다 먼저 태어나서 더 일찍 죽은 이들을 추월하여 살고 있다. 김광석은 언제나 내게 '형'의 이미지였다. 그런 마음 속 이미지와 정지된 사진 속 이미지는 작은 충격을 만든다. 그가 죽음으로 자신의 시간을 멈춰세운 후에도 나의 시간은 떠밀려 가듯 흘러 왔기 때문이다. 젊은 김광석을 보면서 드는 낯섦은 그렇게 떠밀려온 시간이 만든 틈이다. 나무의 옹이를 쓰다듬는 심정으로 실로 오랜만에 김광석을 만난다.
나는 김광석을 좋아했다. 그렇다. 정말 좋아했었다. 하지만 나는 그동안 그에 대한 나의 마음을 드러낸 적이 거의 없었다. 왜였을까? <김광석 평전>을 읽으며 내가 왜 그동안 그에 대한 이야기를 아꼇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우선 '보이지 않는 특별함'을 선택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으리라. 내 세대 사람들 중에는 김광석을 좋아하는 이들, 그를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나름 팬이라면 팬일 수도 있는 층이 꽤 넓은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마디라도 그에 대해서라면 거들 수 있는 사람들도 많다. 나의 애정은 그런 '보편적 애정'을 거두어드리는 방식에 있다. 그를 내 마음 속에 더 특별하게 남겨 놓는 방식은 그에 대해 그런 보편적 애정을 수동적으로 퇴각시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김광석'에 대한 이야기도, 그의 노래도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그리고 거기에는 또다른 이유가 있다. 나는 지나온 20대를 김광석과 함께 봉인했다. 나의 20대는 김광석과 함께 흔들렸고 그와 함께 사멸했다. 여기서 사멸은 그의 육체적 죽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가 죽고 난 뒤 얼마지나지 않아. 나는 서른을 넘겼고 서른 어느 즈음부터 나는 김광석을 피했다. 장마가 시작되어도, 코 끝에 겨울 냄새가 흘러도, 아무 일도 하기 싫은 흐린 날에도, 돌이키고 싶은 추억들이 가슴을 치밀고 올라올 때도, 나는 애써 김광석을 피했다. 나는 내 20대를 그와 함께 묻어두고 싶었다. 가끔 서글픔이 밀려 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그것의 심연으로 다기 내려가고 싶진 않았다. 결국 이런 생각들임에도 김광석을 운운하는 것은 내 내밀한 공간을 들먹이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낳는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것이 사실은 대중음악의 보편성이고 거기에 삶의 노래와 사람의 노래를 들려준 김광석이 가진 가장 큰 강점이기도 하다.) 나는 그를 사랑했고 내 20대를 사랑했기에 섬세하게 그에 공명했으며 또 어느 시점에선 그것 조차 물 밑으로 가라앉힐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김광석을 처음 알게된 건 고등학교 자율학습 시절이다. 친구가 듣던 카세트를 빌려 들었는데 그게 <동물원 2집>이었다. 나는 그들의 순수한 노래에 빠져들었다.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를 필두로 <혜화동>까지. 어떤 노래 하나 버릴 곡이 없었다. 이 음반에서 나는 김광석, 김창기, 박기영의 목소리를 기억했다. 그 때는 김광석에 비해 김창기나 박기영의 설익은 목소리를 더 좋아했다. 2집에서 나는 특히 박기영이 부른 <이별을 할 때><별빛 가득한 밤에>같은 발라드를 좋아했다.(나는 아직도 이 노래를 부를 수 있다.) 그리고 동물원에 대한 관심은 1집을 듣게 만들었다. 김광석이 부른 <거리에서>와 함께 김창기가 부른 <잊혀지는 것>은 한동안 나의 18번이었다. (나는 김광석이 <다시부르기>에서 노래한 버전보다 김창기 버전을 더 좋아한다. 무기교로 덤덤하게 불러서 그렇다.)
대학을 들어가고 나서도 나의 '동물원'에 대한 애정은 가시지 않았다. 김광석이 탈퇴하고 난 이후에는 그의 솔로 앨범도 찾아 들었고, 박기영의 솔로 앨범도 들었다. (이 둘은 모두 카세트로 가지고 있었는데 내가 마지막으로 들었을 때 테잎의 상태는 웅웅 거릴 정도로 늘어나 있었다.) 김광석의 1집에서는-확실히 그의 이후 음반들에 비하면 범작일 수 밖에 없는데- <기다려줘>,<너에게>,<슬픈우연>등을 좋아했다. 1집만 비교해 볼 때는 비슷한 시기에 구한 박기영의 앨범이 사실 더 애정이 갔다. <백마에서>라는 곡이 수록되어 있었다. (이 곡은 동물원 5집에 재수록된다. 하지만 박기영 솔로앨범에 있는 곡이 훨씬 좋다. 눈이 내리는 날마다 이 곡을 얼마나 들었는지.) 다른 멤버들중 기타를 치던 이성우가 프로그레시브 장르로 음반을 내었는데 사실 크게 관심을 갖진 않았다.
김광석이 동물원 멤버들 중에서 눈에 확 들어오시 시작한 건 2집부터다. 나는 이 앨범을 대학 동기들에게 무척 많이 선물했다. 마땅히 줄만한 선물이 없으면 김광석의 음반이었다. 나는 동기들 사시에서 음악을 좀 안다는 축으로 평가 받았고 내가 고른 음반에 친구들의 반응은 '역시'였다. 더 신이나서 동네 방네 김광석 2집을 선물했다. 그리고 과방에서는 그의 첫번째 히트곡이라할 만한 '사랑했지만'을 기타를 치며 불러댔다. '사랑해에지..마....안. 그대를' 이 곡은 물론 내게 좌절을 안겨준 곡이기도 했다. 김광석 처럼 잘 안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잊혀지는 것'이 좋은 지도 모른다.더 문제는 우리 과에 지금은 연극 연출을 하는 한 선배가 있는데, 이 곡을 나보다 10배쯤은 잘 불렀다는 데 있다. 하여간 나는 나름 '김광석 전도사'로 맹렬히 활약했다. 하여간 조금 지나니까 모두들 김광석에 주목했다. (내가 열심히 뛰어서 그런건가? 아닐것이다. 그래서 내가 열심히 뛴 건 역사에 기록되지 못햇다.^^)
1000회를 넘긴 학전의 콘서트에도 나는 세 번쯤 갔었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으나 학전 위에는 작은 커피샵이 있었다. 당시로서는 인테리어가 꽤 괜찮았다. 거기서 공연을 앞두고 있는 김광석을 흘깃 흘깃 보기도 했다. 쑥스러워서 싸인 같은 것은 부탁조차 하지 못했다. 언젠가 그가 <이등병의 편지>를 부르고 있는데 제일 앞 보조석에 앉은 여자 하나가 노래 하는 내내 울었다. 무슨 사연이 있나보다 하면서 생각하고 있었는데 노래가 끝나자 김광석이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손수건....이거 라도 쓰세요. 괜찮아요. 좀 지저분하긴 해도...괜찮아요.자" 하며 사양하는 그녀에게 손수건을 건넸다. 그러면서 " 애인이 군대 가있나요. 하여간 전 좀 짧게 단기사병,6방으로 갔다 왔는데...요즘 30개월인가요.좀 줄었나요. 하여간 너무 길어요. 군대 간 사람도 그렇고, 기다리는 사람도 그렇고...그런 생이별이 없지요. 빨리 통일이되서 좀 ...." 이렇게 이야기했다.
대중가요는 원래가 동새대와 호흡한다. 그렇기 때문에 60먹은 사람도 젊은 시절 듣던 노래를 들으면 지난 추억이 떠오르고, 70먹은 사람도 그렇고...내게는 김광석이 또 그렇다. 아마 앞으로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는 나의 20대의 시련과 좌절, 사랑과 배신, 고민과 탈출 속에 있었다. 학교 다니며 이런 모든 고민들을 기다려주던 곳은 술집이었다. 나는 저녁이 되기도 전에 혼자 술마시러 내려가기도 했다. 가끔은 6시쯤 들어오는 같은 과 친구들이나 선배들을 만나서 머쓱해지기도 했다."야..왜 혼자 와있어" 하여간 이 술집에서는 늘상 김광석 노래만 또 틀어놨다. 술집 형과 친했기 때문에 아무 때나 혼자 가서 술 먹어도 눈치를 주지 않는 그런 곳이었다. 가끔 청소도 해주고 심부름도 해주고. 이 양반은 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이 나오면 '야...거 봐라. 광석이도 그러지 않냐.' 라며 위로가 되지도 않는 말을 해 주었다.(사실 진짜 위로는 그 형과 그 술집이 그 때 그 자리에 있었던거였다. 그 형은 내가 대학을 1-2년뒤 가게를 정리했다. 가끔은 그가 보고 싶기도 하다. 무척이나 반겨줄 텐데) 재미난건, 내가 아내와 처음 만난 날 아내를 데리고 간 곳도 그 술집이고 그날도 김광석을 주구 장창 틀어댔다. 그 술집은 의자 하나 제대로된 세트가 없을 만큼-여기저기서 주워와서 그렇다- 후졌는데 아내는 그런 분위기를 무척 좋아해주었다. 언젠가 내게 "그날 그 술집에 가지 않았으면 아마 나랑 흐지부지되었을 거야'라고 말해주었다. 인생 재밌는거는 그런거다. 사랑와 번민의 20대의 난망함을 소진하던 곳이 결국 희망의 싹도 키워준거..인생 참 재밌다.
나는 김광석 노래 중에 <기대어 앉은 오후>를 좋아한다. 한 낮의 컴컴한한 이국의 단칸방, 열리지 않는 창문, 바람에 펄럭이는 하얀 빨래, 멀리 지붕 뒤로 보이는 작은 바다한 조각,낯선 언어들 속의 고립...중고 오디오에서 <기대어앉은 오후>를 좋아하게 된 건 그 때 기억때문이다. 다른 모든 것들이 움직이는데 나와 내 공간만 차갑게 동면하고 있었다. 김광석의 앨범 중에는 박기영이 피아노 반주한 곡과 기타로 연주한 버전이 각각 있는데 모두 마음에 든다.
김광석이 죽던 날, 내 주변 사람들은 술을 마셨다. 김광석이 죽다니...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나는 그 때 어땟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술자리에 있었던 것 같은데....
그보다 더 많은 나이를 살고 있다는게 부끄럽지 않아야 할텐데...라는 생각을 해본다. 가끔은 그가 원망스럽다. 하지만 누가 그의 상처와 고민들을 알 수 있었겠는가. 만약 그가 살아있다면 나와 그는 분명히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그 인연의 촉수를 드리우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와의 작은 인연도 생겼을 것이다. 술잔을 기울이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기회마저 그의 이른 죽음이 앗아갔다. 그래서 살아생전 나는 그와 노래를 매개로 이야기를 나눌 수 밖에 없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내게는 고마운 일이다. 나의 20대는 그의 노래가 배경이 되지 않고 울린적이 단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삶을 깊은 우울로, 때로는 희망으로 채워주었던 광석이 형, 지난 힘든 시절, 형의 노래로 함께 그 시간을 견뎌올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합니다. 먼 곳에서도 60이 되면 해보고 싶다던 오토바이 여행을 하시며 아름답고 자유로운 노래를 울리고 다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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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리뷰에 <김광석 평전>에 대한 책이야기는 거의 없다. 김광석은 그렇게 동시대를 산 사람에게 항상 과거의 추억과 함께 오는 사람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김광석을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 부조된 시간을 그리워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노래는 늘 지난 시간 속에 고정된 풍경이다.
이 책은 연대기 순으로 김광석의 삶을 따라간다. 그러면서 각 앨범을 통해 그의 음악이 어떻게 성숙해나가는지를 그려낸다. 김광석 노래가 가진 힘'삶의 노래,소통의 노래'에 대해서도 구체화 해나간다. 무난한 평전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한가지 크게 아쉬운 점은 이 평전이 그다지 '발로 뛴' 평전이 아니던가 아니면 그 흔적을 스스로 지운 것이다. 대개 인용되는 인터뷰들은 이미 많이 알려진 내용들이거나 신문,PC통신의 자료들이다. 그의 죽음과 관련된 미묘한 문제,유가족에 대한 배려 등등으로 작가가 더 이상 쓰지 못한 부분이 있음은 작가도 암시한다. 하지만 그런 내용을 떠나서 김광석의 주변인물들이나 동료들의 증언 등등이 그다지 충실하지 못하다는 인상이 강하다. 예를 들어 김광석이 자기 음악 인생에 큰 선생님이라고 했다는 김민기의 인터뷰도 하나 정도 들어있으며, 김창기나 안치환,강산에 등등 동료들의 인터뷰도 거의 실려 있지 않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발로 뛴' 평전을 처음부터 기획하지 못했다면 좀 아쉬운 부분이다. 작가 역시 이것이 '김광석 평전'의 시작이되길 바란다는 소망처럼 더 충분한 자료와 인터뷰들으로 그의 이야기가 다시 쓰여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