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osa님의  1:1 게시판으로 올라온 알라딘의 해명입니다. 

안녕하세요?
알라딘 고객팀장 표종한입니다.

깊은 우려와 안타까움 속에서 기사를 대하셨을 것 같습니다.
어찌되었건,송구한 일로 글 드리게 되어, 저희 또한 마음이 한없이 무겁고 안타깝습니다.

질의하신 사항에 대하여 솔직하게 저희 상황과 입장을 회답드립니다.

알라딘은 연중 최대 성수기인 3월1일~3월31일, 9월1일~9월30일 두차례에 걸쳐 대대적인 단기근무인원을 모집합니다.
성수기에는 비수기보다 주문량이 30~50% 이상 증가하는데, 그 지속기간이 2~3주밖에 되지 않아 단기인력의 확보가 불가피합니다.

게다가 파주지역은 대규모 인력확보가 어려워 도급업체의 지원 없이는 정상운영을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기고하신 김종호님도 이 경우에 해당하여 8월 31일~9월30일간 도급업체를 통해 근무하셨습니다.

이런 단기근무에 대해서는 계약시에 특별히 주의하여 이 사실을 고지하도록 도급업체에 요청하고 있습니다만,계약과 관리에 문제가 있었는지, 이런 상황이 발생하였습니다. 앞으로 개선할 점이 없는지 확인하고 조치하겠습니다.

알라딘은 2년을 계속 근무한 비정규직원에 대해서는 별도의 절차를 거쳐 정규직화하는 정책을 법정의무기한 이전부터 시행해 오고 있습니다. 또한 도급업체를 통한 근무자에 대해서도 급여차등을 두지 않으며, 도급 근무규모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안정적인 인력채용이 가능할 수만 있다면 도급업체에 별도로 수수료를 지출할 필요가 없는 이점도 생기기 때문입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부족한 점을 다시 돌아보고, 서비스뿐 아니라 회사의 모든 면에서 신뢰를 얻을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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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문제는 궁극적으로 알라딘이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절대 아니다. 알라딘을 '정의의 담론 공동체'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알라딘은 인터넷을 통해 책을 판매하는 기업이다. 여기서 두 가지로 나누어 이야기해야 한다. 하나는 기업 경영이라는 기술적 측면과 기업 경영의 철학적인 면이다. 알라딘의 사장이 전직 운동권이었고 또 진보잡지 말의 기자 출신이었다는 것은 기업 경영의 철학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은 앞선 경영의 기술적인 측면과 충돌하는 경우가  발생할 것이다. 이런 간격, 이런 틈은 분명히 발생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이런 충돌의 공간이 있다는 점은 반드시 인정해야한다고 본다.  갈림길에서 알라딘이 우리 사회에 일반적인 사기업의 경영 방식과 달리 전향적인 자세를 보여주길 바라는 편이다. (내가 그렇지 못한 회사에 다녀서 더 그렇다.) 최소한 알라딘의 표팀장의 말을 그대로 믿는다는면-이건 잠정적인데- 알라딘이 다른 기업에 비해 노동착취적이라고 볼 수 있는 근거는 없어 보인다. 물론 원청업체로서 하청업체의 고지의무 관리에 소홀한 점은 지적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사실 근원적인 것이다. 근로자파견법의 가장 허술한 지점은 원청업체의 책임과 하청업체의 책임 소재를 분리한데 있다. 아마 그것이 많은 대기업들이 근로자파견업체를 선호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문제가 생기면 원청업체는 책임 소재를 하청업체에 넘기면 되기 때문이다. (알라딘이 최소한 원청업체로서 일련의 책임을 외면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먼저 알라딘이 사회정의에 부합하고,좌파적(?) 기업에 어울리게, 단기고용인원 마저 정규직화해서 쓰기는 어려워 보인다. 내가 좋아하는 알라딘이 그랬으면 좋겠다는 반응은 그냥 소망이다. 어떻게는 모르고 그냥 아름답기만을 바라는 막연한 소망. 그건 기업 경영의 기술적 측면에서 어불성설이다. (내가 가장 피하고 싶어하는 열혈 좌파는 '다 필요없다. 그건 정의가 아니다.' 라고 해버리는 속시원한 명쾌함이다. 얼마나 시원한가? 자기는 선명,명쾌한 정의의 사도가 될 수 있고..)   표팀장이 밝혔던 두 시즌 동안 인력공급이 단기적으로 많이 필요한 건 분명 사실일 듯 하다. 농촌을 예로 들어보면 쉽다. 과일 하우스를 한다고 쳐보자. 일년 내내 하우스에는 손이 많이 간다. 하지만 출하기 때는 정말 정신이 없다. 그냥 능력되는데까지 두 부부가 출하하면 될까?...물론 자급자족형 소규모 농사에서는 가능하다. 그런데 대부분은 서울 가락동이나 부산 반여동 농수산물 시장으로 보내야 한다. 과일을 따는 시점은 아주 한정적이다. 더 놔두면 낙과하거나 상품성이 떨어진다. 결국 웃돈을 주고라도 사람을 써야한다. 서부 경남 같은데 가보면 출하기때는 진주나 부산같은 도시에서 일당받고 일하러 오는 아주머니들도 꽤 많으시다. 왜 같은 지역에서 쓰면 될 텐데 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농촌에는 노인분들 외에 사람이 없다. 그래서 교통비를 더 얹져주고라도 도시에 있는 아주머니 아저씨들을 일당으로 쓴다.  앞서 말했듯이 알라딘이라는 원청업체의 하청관리 문제는 지적받아야 하지만 기업의 특수성에 따라 단기 고용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는 점을 말하기 위해 길게 농촌 이야기를 썼다.  

그 단기 고용이 필요한 시점이 끝났는데 그 기업이 더 어떻게 고용상태를 유지하겠는가?  농촌에서 사과,배 다 따고 서리 내리는데 더 이상 어떻게 하겠는가? 냉정하게 들리겠지만, 이걸 가지고 '정의'를 운운하고 '좌파'를 운운 할 수 없는 부분이다. 물론 인정상 보면 정말 안타깝다. 가장이 일자리를 잃어버리는데 그렇지 않겠는가. 알라딘이 귀책사유가 있어서 부당노동행위 소송을 걸 수 있는 것이라면 당연히 소를 통해서 알라딘에 승리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장기적으로 안정된 직장도 얻을 수 있길 진심으로 바란다.    

  나는 알라딘의 부당노동 행위여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그건 잠정적으로 두고 봐야겠다. 그 때까지 불매 운동이나 서재 폐지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 앞서 말한 기업경영의 기술적 측면과 철학적 측면의 공간에서 어떤 결과가 어떤 조정이 나오는지를 봐야지, 일단 무슨 일만 벌어지면 '정의'와 '선'의 이름으로 현실의 냉혹함과 사안의 미묘함을 장악하려는 것은 문제다. 우리들은 사실 모두 파견업체와 관련되어 있고, 그런 노동 구조 속에 있다. 그런게 구조의 힘이고 무서움이아닌가. 마트에 가면 파견업체 소속 직원들이 태반이다. 학교는 아니라고? 학교 경비원들도 과거에 감단직 노동자였다.아파트에도 그런 파견업체 소속 경비원들이 거의 다수다. 택배 회사는 아닌가?  이건 거시적인 문제이다. 

  파견업체를 쓰는 것 자체가 권장할만한 일은 결코 아니다. 아니 기업은 직접 고용비율을 높여야만 한다. 그렇지만 진보적(?) 성향의 알라딘이 그것을 썻다는 것이 더 부도덕한 일이라거나 더 이율배반이라고 생각하는 것, 또는 그런 틀로 문제를 보고 있는 것을 지적하고자 하는 바이다. 그건 자칫하면 도덕적 근본주의에 빠질 위험이 농후하다. '노동 유연성'의 문제는 당위론적 방식으로 해결하기에는 너무 거대한 흐름이 되어 버렸다. 이론적으로 노동 유연성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고 저항하는 것과 그런 현실의 흐름이 슬금슬금 세상을 장악하고 그에 대해 대책을 세우는 것은 다른 일이다. 전자의 방식이라면 결론은 한가지 밖에 없다. 파견업체를 불법화하고 모두 정규직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건 불가능하다. 파견업체의 부당성을 인식하고 수정해 나가돼  불법노동이나 부당노동 행위문제를 제기하고 사안별로 대응할 수 밖에 없다.   

 내가 있는 회사에서도 과거 파견근로자의 초과근로 수당문제가 파견업체 퇴직자들을 중심으로 제기되었다. 있을 때는 고용문제로 말하기 어려웠을 것이다.말 많으면 바꾸면 되니까...(이게 파견업체법의 악랄함이다.) 젊은 친구들이 서명을 부탁해서 나와 우리 팀 사람들은 아주 흔쾌히 싸인을 해주었다. 원청에 해당하는 우리 회사 경영진을 비난했고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아이디어들과 격려도 아끼지 않았다. 회사 노조에서는 거래가 있는 노무사를 소개해주기도 했다. 결국 원청인 우리 회사에서는 그 친구들과 어느정도 합의 의사가 있었기 때문에 더이상 가지 않고 절충안으로 소급해주었다.   내가 다니는 회사의 3분의 1이상이 비정규직 또는 아웃소싱이다. 나는 물론 이 회사와 동일한 정체성을 갖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해당 기업의 구성원으로서 이 상황이 부끄러운 것은 사실이다.  

 정의로운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직접 고용의 형태가 늘어나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아직 정규직 완전고용을 달성하지 못했더라도 그런 노력과 정규직화의 경향성을 보이고 있다면 그것은 분명 이 사회에서 좋은 기업이라 칭할만하다. 알라딘이 전향적으로 전직원의 정규직화를 내건다면 모범이 될 만한 일이다. (그렇지만 성수기 단기고용까지 그렇게 해내기는 힘들것이다.)내 블로그가 있는 알라딘이 좀 더 섬세하게 이 문제에 대처해 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점점 더 나은 기업이 되어주길 바란다. (내가 있는 회사는 거의 불가능하니 말이다.이 곳은 대놓고 말로 하진 않지만 장기적으로 현재 있는 부서들 중 몇 개의 분사까지도 심심파적으로 생각해 보는 것 같다. 위기를 계속 강조할 때 위협적으로 그런 말도 가끔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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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가 많아지니 나 역시 스스로 댓글 하나를 더 써여겠다. rosa님의 '연대론'은 내가 객관적인 것처럼 쓴 글에 대한 가장 좋은 돌파법이다. 그리고 오래도록 지켜봐온 분들은 알겠지만 나는 '객관주의'나 '사실판단'의 추종가가 아니다. 오히려 '권력은 모듯 곳에 있다'는 푸코식의 언명을 믿는 편이다. 물론 연대의 방법은 동일하거나 같은 강도일 필요는 없다. 꼭 읽어 보시길 바란다blog.aladin.co.kr/petite/3189244 

 잘 보면 알겠지만 내 글은 기본적으로 초월적 견지에서 객관의 이름을 가장하고 있다. 나같은 쁘띠 회색분자들의 특징은 핵심에 몸을 던지기 보단 외곽에서 말을 던진다는 것이다. 분열적인가? 맞다.  그런데 내가 왜 이런 분열적 자기 고백을 하느냐 하면 '객관' 의 이름으로 내 글이 작동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무슨 판단,무슨 판단 등등으로 바뀌는 과정은 결국 현실의 구체적인 땀과 피를 텍스트화하는 것이다. 그런 텍스트화는 철학하는 길이긴 하지만 현실과의 쟁투는 아니다. 그런 종류의 텍스트화는 자칫 주체를 현실에서 건져내며 분리시킨다. 즉 내가 분열적이라고 말한 것은 알라딘에 대해 유보적인 이런 생각임에도 궁극적으로 그 노동자와 연대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그런면에서 나는 결코 분열적이지 않다.  내가 말한 것은 '연대'비판이 아니라 '판단방법'의 비판이었기 때문이다. 도덕이나 정의의 이름으로 또는 통상적인 당위론의 이름으로 내리는 판단과정에 대한 것 말이다.   rosa님의 연대론은 실천적으로 매우 중요한 일이며 그 가치를 잊어서는 안된다. 연대는 100% 동일한 조건과 상황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것이 연대의 기본이다. 상황을 텍스트화하여 공중에 붕띄워 놓고 이런 저런 방향으로 실험하는 것은 연구실 실험자의 일이지 생의 중심에서 쟁투하는 사람들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신영복 선생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비를 맞고 있는 사람에게 가장 훌륭한 도움은 내 우산을 버리고 함께 비를 맞아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산을 함께 쓰는 것이 합리적이라고...그렇다.그런데 그 경우에는 나와 상대만을 구제만을 의미할 뿐 '연대'의 힘을 발휘하긴 힘들다. 비를 맞는 것은 비합리적이지만 그 비합리가 가장 큰 힘을 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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