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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크 독트린 - 자본주의 재앙의 도래
나오미 클라인 지음, 김소희 옮김 / 살림Biz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스파이크 리 감독의 <제방이 무너졌을때>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강습한 뉴올리온즈를 다룬 영화다. 스파이크 리는 재난에 대처하는 미국 사회 모습을 통해 세계 최강이라는 미국이 내부적으로 얼마나 허술한 지 여실히 보여준다. 피해자들의 인터뷰 내용 중에는 이런 내용도 있었다. "이곳은 이디오피아나 이라크가 아니라구요. 여기가 세계 최강이라는 미국맞습니까?" 그리고 다른 스파이크 리의 영화처럼 이 영화도 카트리나라는 재난 앞에 드러난 미국 사회의 흑백문제(그리고 이의 물적기반) 를 건드린다. 이미 오래전부터 침수가 예상되었다는 점들, 또는 음모론이긴 하지만 부유한 백인지구를 지키기 위해 제방을 붕괴시켰다는 소문 등등. 이런 음모론이 설득력이 있는 지는 모르겠으나 오래 전부터 이 지역에는 그런 소문들이 돌았다는 것은 흑백갈등과 이에 비롯되는 빈부의 문제가 오랫동안 이 지역의 쟁점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는 재난 앞에 사리진 '국가'를 보여준다. 부상당한 아이를 앉고 부실한 대응책에 어찌할 바를 몰라하는 어머니는 울부짖으며 이렇게 말한다. "이건 흑백의 문제가 아니에요. 나는 백인이고 내 아이는 지금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그렇다. 그는 재난 앞에서 '국가의 공백,국가의 무능,국가의 책임 방기'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리고 후안무치한 국가는 재난을 마치 바랬다는 듯이 발빠르게 움직인다.
재난의 예방과 복구에 수수 방관하던 이들이 갑자기 열기를 띄며 '재건'이라는 이름으로 '재즈의 고향' 뉴올리온스를 새로운 실험실로 여기기 시작한다. '재난 자본주의'라고 명명한 나오미 클라인의 <쇼크 독트린>과 스파이크 리의 <제방이 무너졌을 때>가 서로 얼굴을 맞대는 지점에 도달한 것이다.
<노 로고>로 반-신자유주의측의 여전사로 등장한 나오미 클라인의 <쇼크 독트린> 역시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그녀는 실제 뉴올리온스를 취재하며 20세기에 벌어진 전쟁이나 자연 재해등의 충격적인 사건들의 원인과 결과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기에 일련의 반복되는 패턴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녀는 허리케인이나 쓰나미등의 자연 재해와 미국의 신자유주의적 대외정책이 만들어낸 사회가 공통적으로 겪는 트라우마를 찾아낸다. 그리고 이것을 '쇼크독트린'이라고 명명한다. 사회적 '쇼크 요법'은 일부에게는 죽음에 가까운 치명적인 것이지만 일부에게는 새로운 기회이다. 나오미 클라인은 역사적으로, 지역적으로 이런 다양한 예들을 찾는다. 그녀는 다양하게 변주된 '쇼크'요법 속에서 이를 주도하는 한 세력들에 주목한다. '밀튼 프리드먼과 시카고 학파'가 그들이다. 나오미 클라인에 의하면 그들의 '자유방임적 시장주의, 민영화, 세금감축'같은 프로그램들은 케인즈의 실험이 끝나가는 70년대 부터 지구 방방 곳곳을 돌며 재난을 일으키거나 또는 재난을 통해 자신들의 복음을 설파해왔다. 그녀는 프리드먼의 실험을 '경제적 쇼크요법'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나오미 클라인이 말하는 '쇼크'라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 그녀는 단순히 인식상의 충격같은 가벼운 느낌의 통증을 쇼크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녀는 사회적인 쇼크 모델을 설명하기 위해 정신분열 치료법으로 연구되던 이웬 카메론의 실험을 은유적으로 예를 든다. 이 실험은 CIA의 지원을 받아 적국의 요원들의 자백을 받아내기 위한 목적으로 연구되기도 한 것이다. 일종의 '고문'인 셈인데, 그럴싸한 말로 '감각박탈법'이다. 시공간의 감각을 없애고, 폭력과 전기충격을 가한다. 자기 정체감을 완전히 소멸시키고, 다량의 정보를 무처별적으로 제공한다. 피고문자는 한마디로 넋을 놓아버린 상태가 된다. 이웬 카메론은 정신병의 치료를 위해 '백지상태'를 만들어야 한다는 가설로 부터 이 실험을 시작했다. 즉 완전히 새로운 인간형을 주입하겠다는 것이다. <시계 태엽장치 오렌지>의 알렉스처럼말이다. 나오미 클라인은 프리드먼과 시카고 학파가 남미를 비롯해서 신흥 자본주의 국가에 한 짓이 이와 유사하다고 말한다. 또한 소련이 붕괴된 후 러시아에서도 똑같은 방법이 동원되었다. 전쟁을 통해 폐허가 된 이라크나 쓰나미로 어촌 공동체가 붕괴된 동남아시아에서도 그들은 동일한 수법을 쓴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자유방임적 시장주의에 장애가 되는 요소들은 폭력적인 방식으로 제거하는 것이다. 경제가 붕괴되거나 독재정권의 폭력이 일상화되면 국민들은 공포에 시달린다. 일종의 쇼크 상태에 들어서게 된다. 모든 것을 깨끗하게 쓸어내고 난 다음 이들은 새로운 자신들만의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는 것이다.
나오미 클라인은 칠레의 아엔데 정권을 붕괴시킨 '시카고 보이즈'들의 이야기부터 이런 틀에 맞추어 설명한다. 미국이 자국의 정치적 이해와 대기업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남미에 독재정권을 지원했다는 이야기는 이제 상식적인 내용이다. 그리고 새로운 자본주의를 설파하기 위해서 공포정치가 필수적이었다는 것 역시 이제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칠레의 피노체트 정권하에서 3200명이 행방불명 되었고 8만명이 투옥되었다. 그리고 20만명이 정치적 망명을 했다. 그들은 노조나 좌파적 문화 인사들을 일거에 척결한다. 국민들은 공포에 휩싸여 온순해진다. 자유시장은 이런 공포를 동원해 이룩한 것이다. 그런데 '시카고 학파'만이 이런 요소들을 부차적인 것으로 설명할 뿐이다. 또는 아예 거론하지 않는다. 나오미 클라인은 이런 '공포정치'의 요소를 단순히 '인권유린'의 부차적인 것으로 말하지 않는다. 그녀는 유엔을 비롯한 각종 사회단체의 인권 보고서들이 이 공포정치와 경제 정책을 분리시키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브라지의 <네버어게인>보고서만이 이 둘 사이의 공모관계를 제대로 언급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 보고서에는 이런 말이 남아 있다. " 한 국가의 대다수 사람들이 반감을 가지는 경제정책의 경우엔 무력으로 집행하는 수 밖에 없다." 남미의 대다수 가난한 소작농들과 빈농,인디오들이 그들의 땅을 부자들에게 넘기거나 국유화된 자본을 민영화하는 것에 찬성했을리 만무하다. 그렇다면 남미의 독재정권들이 이를 강제할 수 있는 길은 딱 하나 밖에 없다. 잔혹학 폭력이다. 그것은 칠레나 남미에서 자유방임시장을 만들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였다. 나오미 클라인이 현재 기부 자본주의의 전도사로 변신한 제프리 삭스를 비난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그의 볼리비아 성공담에 가려진 그늘에 대해 그는 정말 모르거나 아니면 모르는 척 하는 것이라는게 클라인의 비판이다. 어쨋거나 시카고 학파에게 경제학은 수학이었고 그들의 처방은 그들이 요구하는 조건이 형성된 곳에서는 하나의 유일한 정답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공식은 '모든 것은 시장이 해결한다. 개입은 시장을 왜곡한다.'라는 원칙이다. 그래서 신자유주의자들은 한 나라의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은 시장 개방이나 자유화가 자신들의 실험실이 요구하는 만큼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라고 늘상 항변한다. 실제로 이들의 프로젝트가 실시된 곳에서는 몇가지 공통된 현상이 발생한다. 하나는 사회 불평등이 극도로 발생한다. 쉽게 말해서 다 죽는 건 아니다. 대신 잘 사는 자는 더 잘살게 되고 못 사는 자,또는 보통 사는 자들은 빈곤의 나락으로 추락하게 된다. 칠레,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이라크, 폴란드 등등에서 공히 발생한 것이다. 그러니 신자유주의를 부자들의, 부자들에 의한, 부자들을 위한 경제 정책이라고 해도 결코 틀린 말은 아니다. (쉽게 말해 돈 줄 좀 쥐고 있다면 신자유주의가 나쁠 이유가 하나 없다. 사업 기회는 늘어나고 기타 공공요금 등이 좀 올라도 그까짓거 원래 이용 잘 하던 것도 아니고, 돈 몇 푼 더 내면 구질구질한 꼴 안보고 다닐 수도 있는데 그 정도 기회비용이라면이야...)
그렇다면 미국입장에서 보면 외국에서만 이런 시카고 학파의 '자유시장주의'가 작동했을까? 그렇지 않다. 1970년대 미국 경제는 추락한다. 닉슨 대통령은 지금은 '케인즈 시대'라는 언명을 통해 프리드먼을 실망시켰다. 또한 남미에서 벌인 추악한 정책들이 속속드러나기 시작했다. 미국이 지원한 이란의 팔레비 정권은 회교혁명으로 쫓겨나고 니카라과의 소모사 정권 역시 물러나게 된다. 남미와 아시아를 통해 호기에 찼던 프리드먼의 자유주의는 궁지에 몰린다. 그런데 바로 그 때 1세계에 역대 가장 보수적인 정권이 들어서게 된다. 대처와 레이건의 시대가 된 것이다. 나오미 클라인은 대처의 성공을 포틀랜드에서의 애국주의와 연결시킨다. 떨어지는 지지율의 반전을 가한 대처는 이후 영국 최대 광산노조를 붕괴시키고 '주주자본주의'라는 이름으로 각종 민영화 정책을 취한다. 어떤 이들에게 이것은 '영국병의 치유'로 보이지만 한편에서는 가장 추운 겨울이 되기도 한다. 대처와 레이건 시기에 대해 클라인은 크게 다루지는 않지만 한가지 중요한 시시점을 건넨다. 나오미 클라인이 서있는 경제사적 위치와도 관련이 있다. 시장 붕괴에 대해 현실적이며 온건한 입장을 취한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좌파 계열에서 말하는 '공황-프롤레타리아 독재-공산주의'와 같은 방식에 동의하지 않는 것이다. 그녀는 시장 붕괴가 좌익혁명만이 아니라 우익 반혁명도 촉진한다는 이론에 관심을 갖는다. 그녀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지만 지지하는 방식은 케인즈주의적 온건한 시장 조정이다. 프리드먼이 전통 좌파보다 케인즈주의를 적으로 삼았다고 하는 것도 그런 취지에서 이해될 수 있다. 대처와 레이건 시대에 대해 나오미 클라인이 중심적으로 다루지 않은 것은 미국의 국내정책보다는 대외 정책과 경제정책사이의 관계에 촛점을 맞추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또한 미국의 대외정책문제를 다국적 기업의 경제적 이해 관계의 반영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고 보는 시각도 일면적이긴 하다. 여기에 설령 다국적 기업의 이해관계가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독자는 군사적,정치적 이유들 까지 동시에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911테러로 본토에 신자유주의적 가치를 실험하기 전부터도 신자유주의적 가치의 확산과 이데올로기적 강화작업에 대한 내부적 고찰역시 필요 하다고 보인다. 호미바바의 식민지-피식민지의 상호 양가성 문제라는 틀을 빌어보자면 미국이나 영국의 자국내에서의 신자유주의 영향력 문제도 결코 간과해서는 곤란한 부분이다. 특히 나오미클라인이 경제적 침탈 문제에 집중하느라 국내적으로 작동하는 이데올로기적 부분을 전혀 언급하지 않기 때문에 이 부분은 독자들이 스스로 한번쯤 생각해봐야 한다. 대처만 하더라도 경제적으로 신자유주의를 외치면서 사상적으로는 복고주의적 보수성을 보여준다. 그녀가 도덕적 승리를 위해 써먹던 구호가 '빅토리아시대로 돌아가자' 였다. 60-70년대 혁명의 시대가 보여준 급진적 문화변동에 대한 반혁명적 구호이지 퇴행적인 호소였던 셈이다. 그런데 '강한 영국'이라는 구호와 함께 대처의 보수주의 혁명은 국민에게 먹혀들어간다. 이는 대서양 건너편에 있던 레이건에게도 적용된다. 또한 부시정권의 '기독교세력'과의 연대에서도 다시 한번 반복되고 있다.
이 책 <쇼크독트린>에서 특히 눈에 들어온 내용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정권 이양과정과 재난수출국가 이스라엘의 부분이었다. 남아공 부분은 진보정권의 국제적 감각의 부재나 정치적 감각의 부재가 어떤 결과를 불러올 수 있는지 하나의 예가 된다. 남아프리카의 백인정권은 정권 이양을 앞두고 경제적 부의 집중과 영속성을 유지할 수 있는 방안들을 미리 만들어 놓는다. ANC 정권은 정치 협상의 중요성만을 생각하다가 그런 경제적 운용의 문제를 소홀히 한다. 결국 정권 이양이 되었는데 남은 것은 아파르헤이트 기간동안의 부채와 경제적 불평등이 만든 사회문제 밖에 없게 된다. "ANC는 명목상으로만 다스릴 뿐이고 실권은 국민당이 갖고 있었습니다. ANC 정부는 정치권력을 잡긴했짐나 허울상의 통치를 했을 뿐이죠. 실제 통치는 다른 곳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나오미 클라인의 비유를 인용하면 '달랑 집 열쇠만 주고 금고 비밀 번호는 알려주지 않은 셈'이다. 이런 문제는 독립국가나 신생정부의 역사를 가진 곳에서는 늘상 반복하는 일임에도 남아공의 정부는 그런 역사의 경험을 살려내지 못했다.
'국가의 아웃소싱'이라는 대목도 무척 흥미롭다. 흔히 '민영화'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국가의 공통된 부를 사영화하는 것이다. 데이비드 하비가 <신제국주의>에서 '강탈에 의한 축적'이라는 개념을 선보였다.
" 강탈에 의한 축적이 수행하는 것은 매우 낮은 비용으로 일단의 자산을 방출하는 것이다.과잉축적된 자본은 이러한 자산들을 취득하여 즉각적으로 이들을 이윤 창출이 가능한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다....감가된 자본 자산은 과잉축적된 자본에 의해 불티나는 가격으로 판매되어 이윤 창출이 가능하도록 자본순환과정에 재회전 될 수 있다."
쉽게 말하면 국가의 공적 자산을 다양한 작업을 통해 저평가된 상태로 만들고 민영화를 통해 매입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자본의 입장에서는 공적 자산으로 접근이 금지되었던 영역들이 새롭게 황금알을 낳는 시장으로 변하는 것이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안보시장'이다. 근대 국가의 기본기능이라는 '국토안보'가 '아웃소싱'의 영역으로 변하는 것이다. 언젠가 MB의 신자유주의 드라이브에 대하여 농담삼아 '휴전선도 외주주어서 캡스에서 지키게 하지' 라고 빈정거렸는데 우화적으로 보자면 틀린 비유는 아니었던 셈이다. 이런 '안보산업'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곳이 바로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은 '안보시스템'의 판매로 이미 악명이 높다. 전쟁과 테러 속에서도 이스라엘 경제가 꿈쩍하지 않는 것은 그들이 서구 선진국을 비롯해서 세계 각국에 '안보상품'을 판매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라는 국가 자체가 주변 아랍국가로부터 섬처럼 존재하는 국가다. 다른 말로 하면 이스라엘은 국가 전체에 실제적인 장벽이든 보안장벽이든 '국토안보'에 필요한 바리케이드가 설치되어 있다. 공산주의가 붕괴된 이후 테러리즘이 전세계적인 이슈로 부각되는 순간 이스라엘의 첨단 안보시스템은 성장하는 새로운 사업이 된 것이다.나오미클라인은 이스라엘과 관련된 다양한 보안정보회사들의 성장세를 보여줌으로써 세계 경찰 미국과 미국에 납품하는 이스라엘의 공존관계를 보여준다.
나오미 클라인은 결론에서 쇼크 효과가 점차 누그러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쇼크효과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했고 그것이 노리는 지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재난을 당한 사람들은 점점 자구적인 방법을 채택하고 있으며 여러국가들이 미국의 일방주의에 대항해 지역연대를 강화한다거나 자구적 대안들을 만들고 있다고 말한다. <르몽드 디플로마> 한국판 10월호에 보면 이스라엘 가자지구에 대한 정책에 반대하여 이스라엘 불매운동과 소송이 제기되고 있다는 기사를 볼 수 있다. 또한 오바마 정권 하에서 등장한-물론 오바바라고 별반 다를 수는 없지만- 진보적 유태인 그룹인 J 스트리트 기사도 볼 수 있다. 나오미 클라인은 남미에서 베네수엘라를 중심으로 한 '미주볼리바르'의 연대에서도 희망을 본다. 물론 남미의 현재 상황도 사실 만만치는 않아보인다. 미국은 언제나 중동과 남미에 각각 쓸 수 있는 카드를 들고 있다. 중동이라는 카드에는 '테러리즘'이라는 씌여있고, 남미에는 '마약' 이라는 글자가 씌여져 있다. 이 두 카드는 필요에 의해서 정의와 도덕의 이름으로 미국이 쓸 수 있는 카드다. <르몽드 디플로마>를 보면 미국의 반격 역시 준비되고 있기 때문이다. 콜롬비아,페루 등은 친미국적인 성향을 여전히 유지하면서 남미에서 세력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며칠 전 셀라야 대통령의 복귀 문제에 대해 합의를 끌어낸 온두라스의 경우는 향후 남미 정책에 있어서 하나의 상징적 사건이 될 듯 보인다. 전세계적 금융시장 붕괴와 오바마 정권 이후 신자유주의와 일방주의는 끝났다고 보는 것은 여전히 간절한 소망에서 나오는 환상에 가깝다. 물론 오바마의 미국이 부시의 소통부재의 미국보다는 유연한 것은 분명 사실이다. 그렇지만 오바마가 양떼를 모는 목자도 아니고 한 국가의 외교정책이나 방향을 대통령 한 사람이 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붕괴로 시작된 금융위기가 신자유주의의 일방적 득세에 경종을 울린 것은 사실이다. 대안적 자본주의들이 조금 기지개를 켤 수 있는 기회를 얻긴 했다. 하지만 자본의 근본적 속성들은 여전히 변하지 않는다. 어떤 종류의 자본주의가 될 것인지는 여전히 끊임없는 투쟁과 고민 속에서 자라날 수 있을 것이다.
아르헨티나의 농사꾼 세르미호 토마셀라의 말로 끝을 맺자. 그는 독재와 연합한 다국적 기업들의 거대한 착취 구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결국엔 진실과 정의가 승리를 거둘겁니다. 수세대가 걸릴지도 모르죠.저는 이러한 투쟁을 진행하다 죽음을 맞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히 언젠가는 우리가 승리할 겁니다. 저는 적이 누구인지 압니다. 마찬가지로 그들도 제가 누구인지 알고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