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왕을 모셨지
보흐밀 흐라발 지음, 김경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햇빛에 반짝이는 몽돌같은 소설이다.  

동글 동글한 자갈돌들이 서로 부딪히며 까르륵 거리듯 책장을 넘길 때 마다 손 끝에 웃음이 묻는다. 그런데 넘긴 손 끝에는 늘상 조그마한 그을음이 따라 붙는다. 까만색 그을음. 그렇다. <영국왕을 모셨지>는 몽돌처럼 '까맣게' 빛난다.  '블랙 코미디'라고 하던가. 그러나 차가운 금속성의 검은색은 아니다.  비로드의 검은 색이다.  판소리에서 좋은 광대는 사람을 웃기다가 울리다가 쥐락 펴락한다. 좋은 블랙 코미디 작가도 이와 같다. 쥐고 흔드는 면에서는 그 역시 광대이다. 그들의 일광설을 따라 들락 말락 하다보면 해는 어느 새 뉘엿 뉘엿 산너머로 떨어지는 법이다. 보후밀 흐라발 역시 좋은 작가답게 그렇게 시간가는 줄도 모르게 독자를 '쥐고 흔든다'. 웃음의 스타카토와 한숨의 리타르탄도로 말이다.    

 주인공 디테는 꼬마라는 뜻이다. 견습 웨이터다.  
"명심해라! 넌 아무것도 보지 않았고 아무것도 듣지 않았다 ! 하지만 또 명심해라. 넌 모든 걸 봐야하며 모든 걸 들어야 한다!"  
 마치 구중궁궐 내명부에 들어간 신출내기 궁녀에게 상궁마님이 건네는 말 같다. 초보 웨이터 디테의 처지 역시 그와 별반 다르지 않다. 차이가 있다면 전자는 전제 권력을 중심으로 탐욕과 음모가 넘실대는 궁중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후자는 돈을 중심으로 모여드는 권력과 부의 이면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이다. 시골출신의 웨이터 보조 디테는 부자들의 삶을 보며 세상을 움직이는 중심에 '돈'이 있다는 것을 깨우치게 된다. 그에게 삶의 목표가 생긴 것이다. 디테가 바라보는 부자들은 좀 오묘한 인물들이다. 멋진 옷을 입고 멋진 여인들과 함께 멋진 요리를 먹지만 무료한 삶의 무언가를 채우기 위해 부질없는 재미나 싸움, 토론을 즐긴다. 그 모든 것이 '부자들의 취향'일 뿐이다. 디테는 티호타 호텔, 파리 호텔 등 조금씩 성격이 다른 호텔을 거쳐 가며 그들을 겪는다. 거리의 여인들을 사서 관음의 쾌락만 즐기는 금융인들, 근엄함을 잊어버리고 아이로 돌아가버리는 장군, 대통령 등등. 디테를 그들을 관찰하고 그 이야기만을 그대로 전할 뿐 다른 어떤 도덕적 판단을 하지는 않는다. 그에게 비춰지는 인물들은 그냥 한편의 오페라부파의 주인공들처럼 소동을 벌이고 또 언제그랬냐는 듯 돈을 지불하고 사라지는 사람들이다. 디테가 그리는 인물들 면면은 그 모두 줄이 달린 목각인형들 처럼 희화되어 있다.  

 디테는 '영국왕을 모셨던' 지배인 스크르지바네크의 지도 아래 제법 한 사람 몫을 해내는 웨이터로 성장한다. 그리고 '아비시니아 황제'를 모신 웨이터가 되기에 이른다. '영국왕'을 모셨던지 '이비니시아황제'를 모셨던지 그닥 대단한 일은 아니다. 그들 사이에서는 일종의 자기 프라이드로 언급되는 일이지만 그건 오랜 경험의 축적에 대한 은유일 뿐이다. 디테의 경우도 실제 '아비시니아 황제'를 모신 경험적인 사건과 그가 '아비니시아 황제'를 모신 일의 경험적 가치,또는 의미론적인 가치에는 시차가 발생한다. 그런 면에서 디테는 더 많은 '아비니시아들'을 모시고 나서야 비로소 '황제를 모신 웨이터'로서의 '초라한 위용'이라는 역설적 위치에 다다르게 된다. 그건 오랜 풍파를 겪어온 사람이 가진 삶의 혜안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호텔 웨이터로서 세상의 부조리함과 부와 권력의 뒷모습들 바라봐오던 디테의 삶에도 이제 역사적 사건의 끼여들기 시작한다. 2차 세계대전의 암운이 체코에도 "드리운 것이다. 그 동안의 희비극은 소동극에 지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작가는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을 통과해야하는 힘없는 디테를 가학적인 상태로 던져놓는다. 디테는 우연히 민족주의적 체코 청년들에게 곤경을 겪는 리자라는 열성 나치당원을 돕다가 사랑에 빠진다. 그는 이제 친독 부역자가 된 셈이다. 작가는 이제 허구와 역사가 중첩되는 그로테스크한 희비극의 연출에 골몰하게 된다. 독일 신부 리자를 임신 시키기 위한 당국과의 합법적 교섭이 시작된다. 

"젊은 간호사 손이 어찌나 능숙한지 그녀는 몇 분 뒤에 정액 두 방울을 종이에 묻혀 들고 나갔다. 삼심분 뒤 내 정액은 아리안 여자의 질에 적합하며 수태를 시킬 수 있는 우수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 결과 독일 명예-혈통 보호청이 내가 독일 혈통의 아리안 여자와 결혼하는 것을 반대할 이유를 발견하지 못했다며 도장을 힘있게 찍어 결혼허가서를 건네주었다. 반면에 체코 애국자들은 같은 도장을 그렇게 꾹 눌러 사형에 처해졌다" 

 후에 디테가 공산 체코정부로 기소당한 주된 이유는 '독일 신부의 임신'과 관련이 있다. 디테 역시 자신의 죄가 직접적으로 나치에 부역했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역사적 상황을 이용하거나 외면한 죄였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신문기사는 여기 이 사람들과 또 다른 네명을 판결에 따라 총살한다는 내용을 전하고 있었다. 매일 죄 없는 새로운 많은 사람들이.... 그런데 나는 여기서 한 손에 성기를 잡고 다른 손으로 책상에 놓인 포르노 사진을 넘기고 있었다." 

 굳이 이런 인용을 한 것은 디테가 겪게 되는 불운을 이야기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이 책에는 처음부터 성적인 것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그런데 애로틱하다기 보다는 귀엽거나 혹은 위의 예처럼 아이러니하다. 

 누구나 다 알고 있듯이 독일은 패망한다. 그러면 리자와 디테는 이제 어떻게 될까? 그리고 그 사이에 유전적으로 우수하며 과학적으로 개량된 혈통의 아이는 어떻게 될까?  하여간 내게 이 희비극의 결말 부문이 주는 청각적 자극과 그로 인한 상상력은 나중에도 이 책 전체를 지배하게 되었다. 진격해 오는 탱크 소리 '쿵쿵쿵'과 끊임 없이 못 박는 소리 '쿵쿵쿵' 이라니... 솔직히 나는 그 청각적 효과가 너무도 강해서 이 책을 덮고 난 이후에도 책이 '쿵쿵쿵'거리는 것 같았다. 작가도 디테도 못질 이후에 대해서는 언급을 과감하게 삭제해 버렸기 때문에...그 침묵의 효과가 청각적 이미지를 더 긴 잔향으로 남긴다. 이정도 까지만...  

 물론 이 책에서 좀 어색한 부분도 있다. 인물 개인의 심경변화에 중요한 사건이 되는 부자들의 수용소 '비둘기' 장면-일종의 존재론적인 발견-이나 벌목하는 곳에서 만난 불문과 교수와의 만남-일종의 인문학적 발견- 같은 것들은 극적 전환 대목이 된다. 그런 두 번의 계기 후에 변하게 된 디테의 모습은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무언가 좀 급작스러운 것 같다. 또는 인생을 깨달은 자들이 닿게 되는 예의 '수도승'과도 같은 삶이 통상적인 느낌을 주기도 한다. 배경 마저 눈 덮인 인적 없는  산골이 되다 보니 더욱 그렇다. 호사스로운 호텔리어의 삶과 눈 덮인 수도자의 삶이 극적 대비를 이루게 되어 효과적이기는 하다만 말이다.  

 소설은 희극과 비극을 종횡무진하지만 작가는 결말부분에서 눈덮인 겨울 산속에 인동초를 하나 피운다. 설원을 뚫고 온 마을사람들말이다. 그들은 와서 별 일을 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그 장면이 없었다면 책장은 분명 쓸쓸히 덮여 졌을 것이다. 사람을 '겪어야','영접해야만' 만 했던 늙은 디테에게, '아비니시아황제'를 모셨던 바로 그 디테에게, 사람이 '찾아오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흰 눈 처럼 쓸쓸하지만 그렇게 해피앤딩인 셈이다. 

 그런데 혹시 사람들 떠난 바닷가에서 한가롭게 햇빛쬐는 몽돌들, 그 포옹 사이로 바닷물 빠지는 소리 들어 보셨나요? 이 소설에서는 그런 소리가 납니다. ^ ^ ;  

p.s) 제목에 나오는 '프레드릭'이 누구냐구요?  햇빛을 모으는 프레드릭이에요. 엄마들은 많이 아실껄요.그건 제가 제일 좋아하는 동화책 주인공이랍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