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나이트 (2disc)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 워너브라더스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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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친구가 배트맨이다.

부모를 잃은 트라우마 때문에 약간 현실감각을 잃어버린 친구다.

물론 잘생겼고 돈도 많도 믿음직한 친구들도 몇 명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가 약간 '과대망상증'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그의 '과대망상증'은 '악을 섬멸할 수 있다'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이다.

그는 '아이구...주인님 이제 그만 쫌' 이라고 말하는 늙은 하인에게

"배트맨이 넘을 수 없는 선은 없어요"

라고 마치 '돈이면 안되는 일이 없어요'라는 철부지 부자같은 말을 한다.

물론 배트맨도 '악'을 전부 소멸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치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매일 밤 마스크 쓰고 쇠가는 소리를 내면서 다니는 것도 힘든일이다. 그래서 배트맨은 살짝 '자경단'의 옷을 벗어던지고 다른 이에게 그의 임무를 건네려고 한다.

늘 상 입으로 이런 말을 달고 다닌다. "배트맨이 없는 세상이 오면 좋겠다.' 라고 말이다. 지쳐버린 영웅이거나 벽에 부딪힌 영웅의 모습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 중에 하나는 '영웅의 자기정체성 혼돈'을 잘 잡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일이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못한다. 배트맨의 고담시도 역시 그렇다. 가짜 배트맨도 나타나고 얼굴에 분칠 한 녀석이 나타나 오히려 '배트맨'덕분에 사람들이 피해를 본다는 이데올로기를 선전한다. 그리고 물론 대중들은 그에 동의한다. ....'배트맨을 잡아라' 

 빌헬름 라이히는 맑스의 역사유물론이(물론 여기서 라이히가 말하는 것은 속류 맑시즘을 말한다.그리고 이것이 또한 저변화되어 있기도 하다.)  대중심리를 이해하지 못한 무능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빌헬름 라이히는 가난한 이들이 도둑이 되는 것은  관심 대상이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이 '왜 도둑이 되지 않고 스스로를 억압하는 욕망을 스스로 즐기는가' 라는 지점에 칼을 들이댄다.

그러니까... 노동자들이 이명박을 찍었던 것에 분개하고 '계급의식이 없어' 라는 세살 먹은 아이들도 할 수 있는 개탄보다 '왜 스스로 알아서 이명박을 노동자들이 지지했는가'의 '대중심리'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빌헬름 라이히는 '성격상으로 계급은 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 말은 계급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심리학적으로 계급을 넘어서는 인간들의 심리적 한계이자 또 보편성이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흔히 모든 '독재'를 파쇼라고 칭하지만 실제 파시즘은 좀 다르다. 학자들마다 파시즘의 발생원인과 성격에 대해 좀 다르게 평가를 한다. 하지만 그 핵심에는 모든 파시스트 정당이 '대중동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비교적 제한된 파시즘론을 주장하는 로버트 팩스턴같은 경우에도 파시즘의 성장에 있어서 '대중동의'를 인정한다. 그는 파시즘이 초기에는 퇴역 군인같은 무리들이나 주변부 무리들에 의해 주도된다는 점을 말한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파시즘의 가장 큰 토양이 된 것은 - 특히 주목해야 하는데- 바로 '중간계급'이다. 즉 히틀러의 계급적 토대는 '중간층'이라는 거다. 요즘 말로 하면 '중산층'이다. 파시즘은 진행과정에서 국가별로 좀 차이가 있다. 몇 가지 공통된 점을 보면 '기존 우파들의 무능에 대한 반동, 사회주의, 공산주의에 대한 척결, 강력한 민족주의' 등의 특징이 있다. 그러니까...20세기 초에 나타난 일종의 '뉴라이트'인 셈이다. (이걸 지금의 한국의 '뉴라이트'와 매칭시켜서 '이명박은 파쇼다' 라는 공식으로 쉽게 도출하진 마시길...내가 대중진보에 가장 혐오감을 느낄때가 그럴때다. 그것도 '포퓰리즘'이다. )

건강한 시민사회의 토대가 되는 '중산층' 과 '대중동의'의 중간계급은 차표 한 장 차이다. 물론 그 한 장 차이가 넘을 수 없는 차이이긴 하다. 어쨋거나 그런 위치에서 자신을 너무 강하게 믿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불확실성의 토대를 인정하는 것이 '성찰'을 낳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서 있는 곳이 불안정한 위인데 그 안에서 무엇을 그리 강하게 확실할 수 있겟는가? 그러다보면 이것 저것 '불안정한 눈'으로 바라보게 되고, 그걸 멋들어진 말로 하면 '성찰'이다. 

어쨋거나 저쨋거나.. 세상물정 모르게 덥썩 믿다보면 하비 덴트를 믿게 된다. 어떤 영화 편집장은 미국 정치에 빗대어 하비덴트를 오바마에 비유했다.

우리나라에 빗대어 보면 아마 노무현이 될 듯하다. 지난 이야기 해서 무엇하리오만...'너네들 말이 다 맞아. 근데 그래도 노무현 밖에 없잖아' 를 기억한다. 대개는 영화 속 대중들처럼 나중에는 하비덴트를 몰아세운다. 배트맨 잡아오라고 말이다. 아니면 ' 진보니 뭐니 해봐야 별 볼일 없네'라고 '애라 모르겠다, 내 일 아니다.' 주의로 돌아간다.  배트맨도 밤 마다 옷갈아 입기 귀찮아서 하비 덴트를 후원한다. 부자들의 파티에 조커가 총질하면서 직접 등장하기 전까지 말이다. 
조커는 총질을 하는데 무차별 살해는 잘 하지 않는다. 그건 양아치나 하는 짓이라고 조커는 생각하는 듯하다. 자신의 웃음과 아버지,아내의 이야기를 꺼내는 조커...조커의 과거사? 그런데 조커의 말을 믿나?

 

'낮의 기사' 하비 덴트는 개인적 분노와 조커의 약발짓에 반쪽을 해가지고 팔팔거리며 뛰어다니기 시작한다. 이런 과거의 '낮의 기사'들 지금 국회가면 많다. 현재 뉴라이트의 리더들...21세기의 대중진보들이 엄두에도 못 낼만큼 날아다니던 사람들 많다. 다 열거하기도 힘들다. 뉴라이트의 현재 리더들이 과거에 '거리'에서 얼마나 날아다니던 사람들이었는지.  


내게 <다크 나이트>의 주인공은 바로 바로 이 친구 '조커' 다. 히스레저의 연기가 멋있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는 순수 악이다. 푸잇...언젠가 써먹었던 말인데 또 써보자.

"...그래서 결국 너는 누구란 말이냐? " "나는 영원히 악을 원하면서, 영원히 선을 행하는 힘의 일부입니다."

                           괴테의 <파우스트>

괴테가 하신 말씀이란다.

다들 자기가 선이라고 믿기를 좋아하는데 조커는 스스로 '악'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당당히 '너희들은 나의 자식이다' 라고 말하는 것같다.(나는 이런 캐릭터가 정말 좋다.) 괴테가 '악' 스스로 '영원히 선을 행하는 힘'이라고 말한 것이 그 이유때문이다. 배트맨이 멍청한 것은 이런 것 자체뿐만이 아니라 '영원히'라는 말 자체도 이해하고 있지 못하기때문이다. '선/악'은 영원한 수레바퀴이다.

 선은 악에 의해 만들어진다. '선'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말이다. 즉 악이 있지 않으면 선이 생기지 않는다. 쉽게 말해서 알라딘에서 그냥 조용 조용 글쓰고 음풍농월과 비분강개, 농담따먹기로 소일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선'이 되었다. 이명박이라는 '악'이 등장하면서 부터 말이다. 다른말로 하면 '이명박'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아마 저기 멀리 있는 '신자유주의'에 강 건너 돌던지면서 무던히 살았을 것을 말이다. 인하대의 김진석 교수는 이런 '선'들이 발끈할지도 모를 말인데 "'신자유주의에 모든 돌을 던지지 말라." 라고 일침을 가한다. 맥락을 이해하고 보면 이해될 일이지만 세상의 배트맨들에게 '악'이 필요하다. 존재의 토대가 없어지는 것 아닌가 말이다. 나는 김진석 교수의 메시지를 슬쩍 '진보'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해 성찰을 요구해보라고 읽는다. 뭐 더 나쁘게 읽어도 할 수 없다. 

조커에게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메시지다. 이미 틀 밖에 있다. 배트맨이 린치로 조커의 입을 열려고 하지만 조커는 '그런 걸로 통하지 않는다' 라고 웃는다. 열나게 얻어터지면서도 말이다. 배트맨도 그걸 알아버렸다. 결국 조커는 모든 판을 짜고 체스판의 말을 움직이듯 배트맨을 움직인다. 자기가 입을 열고 싶을때 열고, 또 일이 적당히 꼬이게끔 만든다. 본인에게도 시간을 벌고 말이다.

두 개의 배 씬은 좀 작위적이긴 했다. 일종의 게임이론이다. 버튼 눌러라 안 누르면 제들이 누른다. 둘 다 안누르면 둘 다 죽는다. 한쪽은 일반 시민, 다른 한쪽은 간수를 비롯한 제소자. 건강한 시민들은 학습한데로 자유민주주의의 이념의 위대성을 입증하기 위해 '1인 1표 보통투표'를 한다. 제소자들은 뭐 웅성거리기나 할 뿐, 간수들의 총앞에 부재자 투표란 없다.

결과가 아주 재미있다. '대의민주주의제.. 엿먹어라.' 라는 결과다. 건강한 일반 시민의 투표결과는 거의 두배 차이로 상대방 배를 터뜨리는 것으로 나왔다. 문제는 소심한 시민들중 누가 마지막 버튼을 누를 것인가 이다. 죄수들 중에서도 그건 마찬가지다. 죽기 싫으면 눌러야한다. 간수가 기폭장치를 들고 벌벌 떨고 있을때, 덩치 큰 죄수가 스스로 그 역을 맡겠다고 나선다. 그리고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버튼을 바닷가에 버린다. 그러니까...뭔 고하니 예전에 내가 언급했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주인공의 아내가 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이다. '네가 만든 게임의 룰을 따르지 않겠다.' 라는 일종의 '탈주'방식이다. 물론 비슷한 일이 평범한 시민들 사이에서도 나온다.

대롱대롱 빌딩에 매달려 있던 배트맨은 기세등등하다. 세상에는 너처럼 나쁜 놈만 있지 않다..라고 말이다.  그런데 나는 이 장면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감독이 약한 마음이 들었던지 아니면 착한 이들에게 실망을 주고 싶지 않았던 듯 하다. 몇 몇 개인의 양심적 선택. 물론 이것이 세상을 나아지게 해준다. 그런데 이거 완전히 운에 기대거나, 칼날 위를 걷는 것처럼 위태 위태한거다.

내가 영화를 만들었다면 나는 제소자들의 배를 터뜨렸을 것이다. 물론 게중에는 ' 우리처럼 양심적으로 살아온 사람들이 죽는 것보다 , 어차피 중죄를 지은 저들이 죽는것이 더 낫다.'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어야만 한다. 게 중에는 '이 아이를 위해서라도 버튼을 누르세요' 라고 말하는 이도 있어야 한다. 엄마 품에 안긴 아이의 모습도 있어야하고 '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버튼을 누르시오.' 라는 이도 있어야 한다.  거두절미하고 나는 조커를 위해서라도 '제소자'들 배를 터뜨리고 싶었다. 아니면 시민들이 토론을 다 끝내고 버튼을 누르려는 찰나, 제소자들이 먼저 버튼을 눌러서 모든 토론을 허공으로 날려보래던가...배트맨에게도 '네가 막지못하는 것이 있다' 는 메시지 정도는 하나쯤 남겨주었어야 하는데....안타깝다. 다음 기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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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다 쓰고 난 다음 날.....지금 막. 나는 <거장과 마르가리타>의 마지막 부분을 다 읽었다. 판타스틱!! 마태와 악마의 대화가 나오는 멋진 장면이 등장한다. 결국 내가 하려던 배트맨/조커의 이야기나 다름없다. 나는 주절거리고 거장은 역시 더 짧고 강한 이펙트를 남기는 문장을 구사한다. 나는 루비콘 강은 넘어도 저건 못 넘을 듯 하다.  클래식 만세!!

" 넌 이곳에 나타나자마자 바보같은 짓을 했어. 그게 뭔지 말해줄까? 문제는 너의 말투야. 너는 마치 그림자들을, 그리고 악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투로 말했어. 그렇다면 이런 문제를 한번 생각해보는 건 어떤가. 만일 악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너의 선은 무슨 일을 하게 될까? 또 만약 이 지상에서 모든 그림자들이 사라진다면, 그때 지상의 모습은 어떻게 될 것 같나? 그림자는 사물과 인간들로부터 만들어지지. 여기 내 검의 그림자처럼. 그림자가 존재하는 것은 나무와 살아 있는 존재들이 있기 때문이야. 그런데 너는 지구 전체를 벗겨버리며고 하고 있어! 벌거벗은 빛을 즐기려는 너의 환상으로 이 지상의 모든 나무와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을 벗겨내버리고 싶은 건가? 너는 어리석어."

 "늙은 소피스트, 나는 너와 논쟁할 생각이 없다." 레위 마태오가 대답했다.

                                                                             미하일 불가코프 <거장과 마르가리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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