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불속에서 잃어버린 것들
베니치오 델 토로 감독, 할리 베리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과거 페이퍼에 올린 걸 리뷰란으로 옮깁니다.





영화의 원제목은 'Things we lost in the fire' 이다. 우리 말로 바꾸어도 달라 질게 거의 없는 착한 번역이다.

이 영화는 국내 극장에서 개봉하지 않았다. 지난 달인가 곧장 DVD로 출시되었다. 그러나 동네 비디오가게에 가서 시를 읊듯이 낭낭한 목소리로

'우리가 불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 주세요.라고 하면

주인이 '그게 뭔데요?' 라고 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영화의 두 주인공은 흑진주 할 베리와 사령관 '체' 의 베니치오 델 토로이다.

워낙 알려지지 않은 영화여서 간략하게 줄거리를 좀 이야기해야겠다.

영화의 첫 장면에는 'X-파일'의 히로인 데이비드 듀코브니가 나온다. 그의 극 중 이름은 브라이언이다. 그는 굉장히 착실하고 가정적이며 사려깊은 가장이다. 오드리(할 베리) 와의 사이에 10살 먹은 여자 아이와 물에 머리 담그기를 두려워 하는 6살의 남자 아이를 두고 있다.

그에게는 초등학교 2학년때부터 절친한 친구가 있다. 마약 중독자 제리(베네치오 델 토로)이다. 브라이언은 제리에게 유일한 친구이다. 모든 사람이 제리를 포기했을 때 조차 브라이언은 그에 대한 우정을 져버리지 않는다. 오드리는 그런 남편이 못마땅하다. 

제리의 생일날,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브라이언은 제리에게 간다. 싸구려 모텔에서 마약에 쩔어 있는 제리를 만나고 브라이언은 집으로 돌아온다. 아이들에게 줄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말이다. 그런데 공원에서 한 여자를 두드려 패는 남자를 본다. 그를 저지하려는 브라이언. 남자는 갑자기 총을 꺼내든다.

영화는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장례식장을 찾아온 제리. 오드리와 제리는 이것이 첫 만남이다. 오드리는 제리에게 당신을 싫어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조금만 더 있어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며칠 후 오드리는 제리의 모텔을 찾아가서 창고로 들어와 살라고 말한다.

과부와 죽은 남편 친구의 로맨스일까? ...아니다.

이 영화는 '상실'을 다루는 영화이다. 여성감독 수잔 비에르는 잔잔한 삶에 파멸시키는 충격적인 사건을 대하는 개인들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그녀는 감각적인 클로즈업을 사용하고 바디캠이나 핸드핼드 카메라를 이용해서 조용하지만 상처로 흔들린 주인공들의 심리상태를 묘사한다. 특히 눈이나 손같은 부위에 대한 세심한 클로즈업이 빈번히 사용된다. 반면에 집이라는 한정된 공간내에서 상실감을 극대화시킬수 있는 롱샷등을 통해 할 베리의 처연한 마음을 그려낸다.

영화에서 오드리와 제리는 둘 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이다. 오드리는 소중한 남편을 제리는 세상의 유일한 친구를 잃었다. 오드리는 불면증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제리를 침실로 불러들인다. 통속적인 상황인가? 그렇지 않다. 오드리는 정말 잠을 자고 싶었을 뿐이다. 남편이 잠들기 전에 귓볼을 만져주었듯이 제리에게 그렇게 해달라고 요구한다. 제리는 그렇게 한다. 물론 성적인 긴장감이 도는 장면들이 몇 군데 있다. 그러나 감독은 그 지점에서 살짝 씩 현명하게 비켜나간다. 

오드리의 딸이 제리에게 '아빠가 되면 안되겠냐?' 고 묻는다. 제리는 그렇게는 할 수 없다고 말한다. 마치 브라이언이 없었던 것 처럼 만들어서는 안되지않겠냐고 말이다. 영화 내내 감독은 이 약속을 지킨다. 그렇지만 의리의 돌쇠같은 스트레오타입화 된 방식은 아니다.

오드리는 제리가 점점 브라이언의 영역으로 침범하는 것에 분노한다. 당연히 그렇지 않겠는가? 감독은 오드리의 이중적인 감정을 잘 잡아낸다. 한편으로는 제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면서도 또 제리가 브라이언의 영토를 침범하게 될 까봐 두려워하는 그런 것 말이다.

이 둘은 '상실'이라는 커다란 트라우마 앞에서 '서로'를 필요로 하고 '서로'를 돕니다. 이것이 눈에 보이는 어떤 것으로 뚜렷이 들어나지 않는 것이 이 영화의 장점이다. 마치 시간을 찍어내듯이 그렇게 상처와 싸우고 상처와 화해해 가는 과정을 그린다. 감독의 섬세한 연출의 미덕이 그곳에 있다.

영화의 제목은 브라이언 네 집에 있었던 화재와 관련이 있다.

<단테 신곡 강의>를 쓴 이마미치 도모노부의 책에는 유명한 가브리엘 마르셀과의 개인적 일화가 잠깐 소개된다.  신곡에서 단테는 베아트리체의 입을 빌어 '신이 인간에 준 가장 큰 선물이 자유의지'라고  말한다. 마르셀은 작별 인사를 하러간 도모노부에게 묻는다 "그런데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선사할 수 있는 최대의 선물이 있지.그게 뭔지 알려나?".....도모노부가 머뭇거리고 있자 마르셀은 이렇게 말한다. " 수많은 것들이 사라져 버린다. 인간이 인간에게 주는 모든 물건들은 사라져 버린다. 그러나 아름다운 추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라고 말이다.

 영화 <우리가 불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은 가브리엘 마르셀과 이마미치 도모노부의 짧은 에피소드를 영화로 만든 것 같다. 영화는 그런 가르침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절망' 앞에선 인간들의 모습을 잔잔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 더 주목받아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삶과 희망'을 찾아가는 과정도 함께 말이다. 영화는 말미에 브라이언이 말한 '좋은 것은 받아들여' 라는 글귀로 끝맺는다. 현실이 지옥같아도 결국 그것을 헤쳐나올 수 없는 '지옥'으로 만드는 것은 진정 '좋은 것'을 잃었을 때이다. 그 좋은 것이 이름이 '믿음'이든 '사랑'이든 '희망'이든....정할 나름이다.

잔잔하지만 아름다운 영화다. 언젠가 '상실'을 경험했던 사람들에게라면 더더욱. 할 베리와 델 토르의 연기는 훌륭하다. 특히 델 토르의 마약과 담배로 뇌의 절반 쯤 빈공간으로 만들어 버린 듯한 연기와 눈빛은 인상적이다.

 나는 이 영화를 와이프와 꼭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와이프가 좋아할 만한 영화다.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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