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명창 임방울 - 고독한 광대의 생애 이상의 도서관 20
천이두 지음 / 한길사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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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궁시렁 궁시렁"쑤욱..대에...머리" 를 흥얼거리니 모두 <개그 콘서트>에 나온거라고 폴짝 거린다. 그 프로그램은 예전에 서너 번 본 적이 있었는데 당최 재미가 없어서 이후 절연하고 있다. 그런 반응을 보고 개그 소재로 "쑥대머리"를 이용했었나 보다하고 추측했다.  쑥대머리는 개콘, 개콘 은 쑥대머리...더질더질. 짖궃게도 질문을 하나 던진다. "쑥대머리가 무슨 뜻인지?"..조금 전까지 총기어렸던 눈빛과 전광석화같던 추임새는 백열등 전구 터지듯 펑하고 사라진다. 교실 앞에 나가 수학 문제를 풀라는 것도 아닌데 다들 머뭇 머뭇 멀뚱 멀뚱.. 천장에 만원짜리 붙었는가. 그래도 다행히 '쑥대머리' 가 판소리인 줄은 안다. 그래서 다음 질문을 하니 또 저 멀리 잔별도 많은 하늘에 오늘은 오버로드가 떳나보다. 오버로드 정찰 보낸 질문은 이거다. '쑥대머리는 판소리 어디 나오는 노래인지?' 
에이..때는 바야흐로 "오버로드 정찰 갔다 돌아온다 황급히 들어와서 정확히 두 시 방향 프로토스 발견했소" 하는 시대이니(한 때 유명했던 또랑광대의 판소리 스타크 사설이다.) 뉘를 탓하랴. 마침 2시 방향에서 저그들이 러쉬하니 지상병력을 모으러 다들 흩어진다. 더질더질

우리 시대의 판소리의 위상이 그렇다. 이건 현실이다. '우리 소리를 무시하지 마라.' 라고 각성의 소리를 외치는 것은 기실 아무 소용도 없다. 차라리 맥도날드가서 파전을 주시오라고 외치는게 더 빠를 지도 모른다. 결국 이건 계몽적 의지로 응혈되어 남아 도는 피를 쏟는-차라리 헌혈을 해라- 자기 만족에 지나지 않는다. 자기가 좋아하는 이 좋은 것을 몰라주는게 서럽다는 투정은 10대 후반쯤에 종료해야 한다. 예술에서도 그렇고 정치에서도 그렇다. 간혹 통속적인 예술 매니아,정치 애호가(?) 중에는 "진정을 몰라주는 대중"에 대한 원망을 여기 저기 섞곤한다. 그런 말을 오래 듣고 있다보면 진짜 지겹다.  한다는 소리를 단적으로 정리하면 '이 좋은 걸 몰라주는..', '그 정도 밖에 안되는 수준의..' 이기 때문이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그런 푸념을 통해서 낮추는 건 '대중'이요 높이는 건 '자기'임을 자신은 모른다. 여기에는 은근한 엘리트 의식-각성된 자의-이 숨겨져 있다.  

  판소리 대목중 '쑥대머리'는 일제시대 명창 임방울의 트레이드 마크다. '쑥대머리는 개콘이 아니라 임방울'의 전매특허다. (판소리 용어로 '더늠'이라고 하면 될 성 싶다)   

쑥대머리 귀신형용(鬼神形容) 적막옥방(寂寞獄房) 찬 자리에 생각난 것이 임뿐이라.
보고지고 보고지고, 한양낭군(漢陽郞君) 보고지고.
오리정(五里亭) 정별후(情別後)로 일장서(一張書)를 내가 못봤으니
부모봉양(父母奉養) 글공부에 저를이 없어서 이러난가.  

 <춘향가>의 옥장한탄 장면에 나오는 대목이다. 요즘은 따로 떼어 부르기도 하지만 완창 <춘향가>에 있는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다. 다른 더늠을 넣는 넣는 것인데 그것은 판소리 창자의 특권이다. (<쑥대머리>의 내용분석은 정양 시인 <판소리 더늠의 시학>에 비교적 자세히 나와있다. 참고하면 좋을 듯 하다.) 하여간 임방울은 이 곡 하나로 1930년대 일약 판소리계의 스타가 되었다. 당대 SP음반사들이 서로 임방울을 불러서 녹음했다고 한다. 내가 가진 천이두 선생의 책 <천하명창 임방울>에는 '쑥대머리' 녹음이 3번으로 적혀 있다. 하지만 최근 자료를 보면 총 4회 각기 다른 레이블에서 녹음한 걸로 나온다. 판소리의 고음반자료들과 명창들의 흔적들이 재발굴되면서 이런 자료들은 수정되기 때문에 그리 흠잡을 필요는 없을 성 싶다. 

  임방울 선생과 사연 깊은 곡이 지난해 한 번 크게 울린적이 있다고 한다.(나는 현장에 가보지는 못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노제때 안숙선 명창이 임방울 작사 작곡의 <추억>을 불렀다는 것이다. <추억>과 관련된 에피소드는 임방울의 여성 편력과 그의 따뜻한 마음, 그리고 음악적 표현력을 이야기할 때 꼭 언급되는 내용이다. 기생 산호주의 죽음을 애통하는 일종의 단가이다. 산호주는 임방울 선생의 소리에 반한 기생이다. 둘이 눈이 맞아 살다가 어느날 임선생 목소리가 망가진 걸 알고 독공하러 훌쩍 떠나버린다. 산호주는 임방울을 찾으러 가지만 냉정하게 거절당한다. 이후 젊은 나이에 산호주가 죽자 선생이 그녀를 애도하며 만든 곡이다. 가사의 내용이 망자에 대한 애통한 심정을 담고 있으니 추모곡이라 할 말 하다.  

내가 가진 책은 <천하명창 임방울>이다. 저자는 동일인이고 책의 소제목도 거의 대동소이하다. 천이두 선생은 이 책에서 임방울 선생의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하이브라이드한 글쓰기를 선보이고 있다. 스스로도 일종의 에세이라고 칭하는것이 좋겠다고 말한다. 주가 되는 것은 일종의 평전 형식이다. 임방울 선생의 지인들로 부터 들은 이야기와 전설같은 이야기를 중심으로 그의 삶을 한 편 한 편씩 소설형식으로 풀어나간다. 책의 첫 대목에 임방울의 국장과 광주 각설이들의 조문이야기도 일련의 에피소드에 소설적 상상력을 가미해서 서술한 대목이다. 그 외에도 공창식 명창으로 추정되는 스승으로부터의 수련 과정, 칼칼한 스승 유성준 명창으로부터의 배움과정 등은 모든 소설 형식으로 꾸려진다. <전설의 명창 임방울>을 알라딘의 미리보기로 읽어 보니 첫 장면에서 소설적 부분이 좀 더 보강된 듯하다. <천하명창 임방울>에 실린 에세이류의 글들이 <전설의 명창 임방울>에도 실려 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어쨋든 내가 가진 책에는 소설류의 글 다음에는 판소리 에세이라고 할 만한 글들이 주로 실린다. 중심에는 임방울 선생의 소리와 관련된 것이지만 판소리 특성이나 전승과 관련된 글들이 주로 실려 있다. 그런 면에서 천이두 선생이 소설과 에세이를 결합한 방식은 임방울 선생의 일대기를 따라가면서 판소리를 둘러싼 전체적인 그림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다. 예를 들어 임방울 선생이 동편의 소리와 서편의 소리를 동시에 배워 자신만의 독창적인 창법을 만들어 낸 것을 저자는 높이 평가한다. 이런 장면에서 동편과 서편의 전승계보 그리고 또 고제 판소리와 신제 판소리의 차이등을 송만갑,정정렬 명창들이 에피소드를 통해 비교한다. 또한 당대의 라이벌이라고 할 말한 명창 김연수와의 대립구도를 통해 임방울의 장단점을 엿볼 수 있게도 한다. 니체식으로 말하자면 김연수는 아폴론적이고 임방울은 디오니소스적이다. 김연수는 판소리 오마당을 정리하여 자신만의 동초제를 만든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많은 제자들을 양성한다. 판소리의 현대화라고 할 만한-저자는 좀 부정적이지만-창극 운동에서도 정정렬 명창의 뒤를 잇는다. 임방울은 이와는 완전히 반대다. 창극을 싫어했고, 제자를 남기지도 못했다. 소리만큼은 당대 최고였지만 김연수처럼 완벽한 발음을 전달하지도 못한다. 김연수 명창의 음반을 들을때 무언가 명쾌한 느낌이 드는 것은 그의 발음에 대한 강조때문이기도 하고 합리적인 이면론에 기인하기도 한다. 하여간 이 둘은 여러모로 달랐으나 판소리계에서 각각 존경을 받을 위업을 성취한 사람들이다. 

 임방울 명창의 소리는 왜 그렇게 인기가 있었을까? 요즘들어 봐도 임방울의 목소리는 매력적이다. 다만 음반취입을 꺼린 그이기에 녹음도 별로 없고 있다한들 음질이 열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방울의 소리는 다른 명창들이 갖지 못한 그만의 독특한 개성이 있다. 명창 강도근 선생은 임방울선생의 청을 '찬물 날아가는 소리'라고 했다. 마음에 드는 비유다. 특유의 청구성에 수리성을 얹은 소리로 당대 대중들의 폐부를 찌른 것이다. 여기에는 임방울이 대중과 직접 소통할 수 밖에 없었던 사회적 상황이 있다. 임방울 선생의 따님이 했다는 말에 핵심이 있다. 요약하자면 '선배들이 누린 통정이니 대부니 하는 이름도, 정부의 비호 아래 겨우 숨이라도 쉴수 있게된 인간문화재라는 칭호도 얻지 못한 가객' 이라는 것이다. 임방울 명창은 '일제시대부터 한국전쟁 전후'까지 한국현대사의 가장 어두운 비극 시대를 민중과 함께 겪어온 사람이었다. 그가 기댈 수 있는 청중이란 것은 선배들처럼 '양반들'도 아니었고,또 후배들처럼 '정부'나 '일부 애호가들'도 아니었다. 전근대와 근대의 이행기 속에서 그는 망국의 한을 가진 민중들을 토대로 그들과 함께 울고 노래할 수 밖에 없었다. 판소리 사회사에서는  이 시대와 관련하여 '판소리 계면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점을 비판적으로 지적한다. 아무래도 앞서 말한 역사적 한이 청중들의 기호와 소리에 반영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거기에 임방울이 큰 몫을 차지했다는 것도 그릇된 말은 아니다. 하지만 천이두 선생은 그것을 '민중성'과의 결합이라는 판소리 본연의 정신과 연결시킨다. 또한 임방울의 소리는 통속적 계면화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면의 예술성을 극대화시켜 판소리에서 저어하는 노랑목의 위험성을 건너고 있다고 말한다.     

 거친 시대,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다간 명창 임방울.  엉뚱한 상상을 한다. 온갖 부귀와 미녀들이 있는 옥황상제의 궁전 '광한천허부'에서 탈출하려고 눈을 쫑끗 뜨고 있는 임방울 말이다. 그의 소리를 사랑한 옥황상제가 그를 계속 옆에 두려고 하고, 그는 자기 소리를 사랑하는 민초들과 여염집의 자유로움으로 달아나려 실강이하고...더질더질

** 내가 리뷰를 쓴 책은 정확히 말하자면 현대문학에서 나온 천이두의 <천하명창 임방울>이다.그러나 현재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은 이 책<전설의 명창,임방울>이며 앞선 책의 개정,증보판 인 듯 하다.

**임방울 명창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이 사이트를 이용하면 된다.www.imbangul.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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