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춘이 엄마 

          -윤제림 

재춘이 엄마가 이 바닷가에 조개구이 집을 낼 때
생각이 모자라서, 그보다 더 멋진 이름이 없어서
그냥 `재춘이네`라는 간판을 단 것은 아니다.
재춘이 엄마뿐이 아니다
보아라, 저
갑수네, 병섭이네, 상규네, 병호네.

재춘이 엄마가 저 看月庵(간월암) 같은 절에 가서
기왓장에 이름을 쓸 때
생각나는 이름이 재춘이 밖에 없어서
`김재춘`이라고만 써놓고 오는 것은 아니다
재춘이 엄마만 그러는 게 아니다
가서 보아라. 갑수 엄마가 쓴 최갑수, 병섭이 엄마가 쓴 서병섭,
상규 엄마가 쓴 김상규, 병호 엄마가가 쓴 엄병호.

재춘아. 공부 잘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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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에서 TV를 거의 보지 않는다. 잠시 뉴스를 보려고 채널을 돌리다 SK 기업광고를 보았다. '재춘이네 집' 위로 자막이 떳다.   

자막. 어?

저 카피...눈에 익은데. 

윤제림!! (그는 시인이자 카피라이터라고 한다.) 

시집에서 어렵게 찾을 필요도 없다. <그는 걸어서 온다>의 첫번째 시가 '재춘이 엄마' 이기 때문이다.  

아내가 "저 CF 좋네." 라고 한다. 

지난 주에 상가집을 세번 갔다. 

모두 지병이 있으셔서 유족들에게 갑작스런 죽음은 아니었다. 한편에서는 위로차 '호상'이라고는 하지만 유족들의 입장에서 다시는 고인의 모습을 볼 수 없음은 늘 크나큰 슬픔이다. 아무리 영혼의 생존, 기억들의 잔존을 이야기해도 살갗을 만질 수 있는 그 육체성을 영원히 빼앗겨 버린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큰 슬픔을 만든다. 

나이가 40줄에 드니 이제 부모 세대들의 부음 소식을 종종 듣게 된다. 20대나 30대 초반에는 결혼소식을 듣게 되다가 조금 더 지나면 부음 소식을 듣게 되는게 사람살이다. 그리고 이게 인간의 시간이다. 

장례식장을 빠져 나오며 가을바람이 마음이 스산했다. 언젠가는 나도 내 생의 마지막 손님들을 이 곳에서 맞게 될 것이라는 것. 두려움 때문은 아니다.  거역할 수 없는 인생의 통과의례라는 엄정한 서늘함 때문이다. 

집으로 오는 길에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다.  

"요즘 눈 앞에 거미줄 같은게 왔다 갔다하고....비문증이라고 하데. 기계도 오래되면 녹스는 것 처럼 이제 하나 둘 고장이 나는 때가 됐나보다." 라고 하신다. 

남의 부모만 늙고 병드는게 아니라 내 부모 역시 세월의 흐름을 거역할 수는 없다. 뻔히 아는 이야기지만 '그래...그렇구나. 그렇게 되는 거구나...' 라 생각하며 마음 한 구석이 스르륵 녹아내렸다. 

나는 남들보다 좀 늦된다.  

 태어나기를 어리석게 태어났으니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그저 어리석음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기는하지만 그건 언젠가 모두 표가 나기 마련이다. 이제는 어리석음과의 동거에도 익숙해져서 그런 늦됨을 탓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도종환 시인의 말처럼 늦되어서 남들 다 떠나간 자리라도 끝까지 지켜 앉을 수 있다면 그것도 한 삶의 모습으로 나쁘진 않을 성 싶을 뿐이다.  

나는 남들 10대때 한다는 가출을 20대나 되어서야 했다. 10대에는 매달 모의고사때문에 가출할 수 없었다. 나를 삐뚤어지지 않게 해준 건 입시지옥이었다. 이 역설적 위대함이려니... 20대에 가출했을 때도 고작 열흘. 친구 집에 얹혀있었다. 친구의 눈칫밥도 그렇고 해서 열흘만에 쪼르르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하여간 그 와중에 부모님과 좀 다투기도 했었다. 그 때 이런 말씀을 하셨다. "부모한테 그렇게 이야기하는거 아니다. 너도 자식 나아서 키워봐라" 

20대의 성마른 나는 그 때에도 '뭐...내가 못할 말 했나. 결국 그런 거 아니야....자식...핏...자식 나을 생각 없거든요. 뻔한 소리...'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통속적인. 그래서 단 한번도 인정하지 않았던, 궁지에 몰린 부모들의 외떨어진 항변, "자식 나아 봐야 부모심정 안다" 는 말...나이 40줄에 두 아이의 아빠가 되어보니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이렇게 늦된다.

... .. .

오늘은 아기 재원이가 태어난지 100일 되는 날이다.  

아기가 건강하게 잘 커줘서 고맙고, 어른들이 그래도 건강하시니 고맙고, 내가 건강해서 어른들과 아이에게 상심을 주지 않아서 고맙다.  
 

재원아...공부 잘해라.

(행여..알라딘에 꼭 헛발질하는 분들이 계셔서 첨언한다. 시인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공부 잘해라'라를 '학력 지상주의'를 독려하는 말로 쓰고 있는게 아니다. ... 거기서 '공부'는 포괄적인, 잘사는 삶의 전체적인 상징이다. 글만 읽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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