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여름 

            -김광규 

 착륙을 앞두고 고도를 낮추는 여객기의 동체가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모처럼 구름 한 점 없이 활짝 갠 여름날, 자기의 영공을 점검하려는 듯, 솔개 한 마리 하늘 높이 떠돌고 있다. 

 뒷마당 대추나무에서 매미와 여치가 주명곡처럼 동시에 또는 번갈아 울어댄다.(노래한다고 말해야 옳을까.) 참새, 까치, 비둘기, 뻐구기, 그리고 꾀꼬리 소리도 가끔 끼어든다. 

 방학을 맞은 동네 아이들이 골목에서 농구를 하거나,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느라고 떠들어대는 소리도 시끄럽게 한몫을 거든다. 

 그래도 창문을 닫을 수는 없다, 

 무더위 때문이 아니다. 

 이 모든 세상의 소리를 듣지 않고 창문을 닫아버린다면, 그리고 냉방기를 틀고 TV를 보거나 CD음악을 듣는 다면, 아무래도 한 생애의 늦여름을 놓칠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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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낮 아이가 어린이 집에서 조퇴를 했다. 열이 갑자기 높아져서 부랴 부랴 돌려보낸 것이다.  

불과 서너 주 전에 어린이 집에서 놀다가 잠시 힘들다며 누워있었는데 경련과 함께 흰자위가 휙 돌아가 버린 적이 있다. 아무리 경험이 많은 어린이집 선생님들이라지만 갑자기 그런 일을 당하면 놀라고 조심스러운 법이다. 그날 밤에도 열이 39도를 왔다갔다 하더니 동일한 경련이 왔다. 실제로 옆에서 보고 있으니까 두려운 마음이 들긴 하더라. 의학책에서는 오래지속되지 않으면 큰 문제가 아니니 부모가 먼저 당황하지 말고 침착을 유지하라고 씌여있다. 그 말을 되뇌이며 침착을 유지하긴 했으나 자식의 열경련을 보고 있으면 불안감과 안쓰러움이 양눈가를 어지럽힌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때문인지 최근 이 지역을 강타하고 있는 신종플루에 대한 우려 때문인지 어린이집에서는 열감기 기운이 있으니 바로 집으로 보냈다.  

일찍 아이와 잠들었다.  

자정을 넘기며 아이가 힘들어해서 열을 재어보니 39도다. 수건으로 몸을 닦아주고 다리를 주물러 주고 물도 조금 먹였다.  

아이에게 아빠가 너를 얼마나 자랑스러워하는지를 한참 이야기해주고, 아빠가 지켜줄 거라고 부드럽게 이야기해주고, 열이 왜 생겼는지 이야기해주고...두런 두런  

아이가 힘겹지만 위축되지 않은 목소리로 이런다. " 예찬이가 몸에 있는 바이러스랑 싸우고 있는거지." 나는  "그래 맞아. 예찬이는 씩씩하니까 바이러스한테 이길꺼야. 지난 번에도 이겼지. 더 튼튼해질꺼야" 라고 맞장구친다. 

아이는 다시 잠들고 나는 똘망똘망해졌다. 오른쪽 바닥에서는 작은 열덩이 하나가 모로 누워 잠들어 있고 나는 등화관재때 혼자 불 켜놓은 집처럼 민망하게 모니터 앞에 숨죽이고 있다. 

"이 모든 세상의 소리를 듣지 않고 창문을 닫아버린다면, 그리고 냉방기를 틀고 TV를 보거나 CD음악을 듣는 다면, 아무래도 한 생애의 늦여름을 놓칠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한 생애의 늦여름'이다. 지금 내게 흘러가고 있는 시간의 계절이 그렇다. 또 지금 우리 주변에서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숭고와 추함의 변주곡들'이 모두 '늦여름'의 시간들이다. 

열에 상기된 아이의 끙끙거림을 들으며 나는 내게 묻는다. 

 과연 나는 '늦여름'의 살 속으로 들어가 그 뜨거운 기억의 정점에 촉수를 밀착하고 있는가? 뺨을 부비고 있는가? '늦여름'의 한 복판을 가르는 얼음처럼 차가운 생의 현현을 목격하고 있는가? 열길 낭떠러지 위에서 외줄타는 광대의 터질 것 같은 집중력과 예민함으로  생의 '외줄' 위를 처연하게 걷고 있는가?  

나는 들어가기를 주저하는 압정을 모질게 부여 박는 마음으로 내게 다시 꼭꼭 눌러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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